총소리

페이스북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블로그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링크 복사하기

61 회

철커덕, . 철커덕, .

노리쇠 후퇴 전진 소리가 들렸다. 쇳소리에 등골이 오싹하고 머리가 쭈뼛 섰다.

손들어.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우리 주민들인데요.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손들어.

저 위 사택에 사는 주민들인데요.

손들어.

우리들은 어정쩡하게 무릎을 꿇으며 손을 들었다.

무릎 꿇고 쏴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던 두 명의 병사 중 한 병사가 총을 겨누고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손든 채 일어서.

왜 이러세요. 우리는 주민인데.

입 다물고 앞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느닷없는 상황에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마 전까지 우리 근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마을 원주민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사위는 어둡고 철썩이는 바닷물만 하얗게 부서졌다. 한 병사가 뒤에서 총을 겨누고 한 병사는 우리들 좌측에서 사주경계 자세를 취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우리는 서로 눈빛만 나눌 뿐,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삼백여 미터를 이동하자 해변가에 자동차 타이어와 모래를 쌓아 만들어놓은 초소가 나타났다. 한 병사가 우리를 겨누고 있는 총구를 좌우로 흔들며 일렬로 서라고 했다.

 

너희들은 일단 운이 좋았다. 우리가 갈겼으면 희들은 이미 죽었다. 우리는 벌써 포상 휴가 갈 준비하며 군복이나 다리고 있었을 것이고.

수고 많은 것은 아는데, 우린 이곳 주민들이에요.

간첩이 간첩이라고 하는 것 봤냐. 다 주민이라고 하지. 손깍지 끼고 엎드려뻗쳐!

쟤들은 내 동생하고 동생 친구인데 그냥 보내주세요.

동생 좋아하네. 깔치(여자친구)들이구만.

고등학생들인데 방학이라 놀러 온 거라니까요.

정말이에요. 아직 학생…….

말을 거들던 차에 한 병사가 총 개머리판으로 친구의 어깨를 내리찍었고 한 병사는 우리들에게 다가와 정강이뼈를 워커발로 걷어찼다.

병사들 몸에서 술 냄새가 났다. 정강이뼈를 차인 통증보다도 술 냄새가 먼저 느껴진 것은 술에 취해 말이 잘 통하지 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서였다.

어제 우리 부대원이 마을에 외출 나갔다가 민간인들한테 나게 맞았다. 이게 뭔지 아나? ×지 안면 긁기다. 시원하지. 크흐흑.

손가락을 벌려 이마에서부터 얼굴 전체를 내리훑으며 병사들이 징그럽게 웃었다. 한 병사가 철모 두 개와 탄약 박스를 가져와 그 위에 손깍지 끼고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여동생들에게는 뒤로 물러서 앉아 있으라고 소리쳤다. 병사들은 엎드려뻗쳐 하고 있는 우리들을 옆에서 걷어찼다. 우리들은 우르르 쓰러졌다. 병사들은 그게 재미있는지 교대로 우리를 걷어찼다.

그러다가 한 병사가 총에서 탄창을 제거하더니 친구 중 한 명에게 일어서라고 했다. 병사는 그 친구에게 고등학교는 나왔냐고 묻고 나서 교련 시간에 배운 M1총 십육 개 동작을 해보라며 총을 건넸다. 병이 손에서 총을 놓다니. 술이 취해도 많이 취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친구가 동작을 끝내자 다음 친구가 지목되고 이어 내 차례가 왔다. 친구들과 나는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 우리 학교는 교련 시범학교고, 학교를 졸업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아 몸이 자연스럽게 동작을 기억했다. 내가 절도 있게 십육 개 동작을 마치자 고개를 끄덕끄덕 대더니, 다 일어서라고 했다.

 

친구가 여동생들만이라도 보내달라고 다시 말했다. 그러자 한 병사가 또 개머리판으로 친구의 어깨를 내리찍으려 했다. 친구가 잽싸게 개머리판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친구는 여동생들 앞에서 더 이상 수모를 당할 수 없다고 결심한 듯했다.

나도 군대 갔다 왔는데 형씨들 너무하는 것 아니오.

병사들은 정말 군대 갔다 왔나 확인하게 주민등록증을 보자고 했다. 친구가 주민등록증을 안 가지고 왔다고 했다. 그러자 한 병사가 나에게 가서 가져오라고 했다. 주민등록증을 가지러 사택으로 가는 길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친구는 나이가 꽤 들어 보이지만 우리보다 겨우 한 살 더 먹었을 뿐이었다. 허겁지겁 달려가 친구의 주민등록증을 찾았다. 주민등록증을 위조할 수도 없는 일이고 난감했다. 병사들과 같은 부대를 나온 직장 상사를 찾아 같이 갈까. 설사 군대는 안 갔다 온 게 들통이 나더라도 주민인 것을 알고 나면 해코지야 하겠는가.

해안가 초소가 가까워지자 도움이 될 만한 사람과 동행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신분증을 확인한 병사들이 친구를 구타했다. 여동생들이 소리 내어 울었다. 우리도 신분증을 확인했으니까 이제 그만 보내달라고 했다. 병사들은 여동생들만 가라고 했다. 여동생들은 자기들만 가지 않겠다며 주저앉아 울었다.

병사의 발길이 내 명치끝을 향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일어서지 않았다. 숨 막히는 소리로 가슴이 아프다고 하며 몇 바퀴 뒹굴었다. 그러자 친구 한 명이 저 친구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안 좋다고 했다. 병사들이 놀랐는지 여동생들에게 빨리 부축하고 데려가라고 했다. 여동생들이 멈칫거리자 친구가 빨리 데려가라고 했다. 나는 부축을 받는 것처럼 엄살을 떨며 여동생들과 모래사장을 벗어났다.

모래사장에서 멀지 않은 언덕에 올라 여동생들을 안심시키고 잠시 기다려보자고 했다. 너희들이 여자니까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는데 왜 가라고 할 때 가지 않았냐고 낮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들만 가냐고 친구 여동생이 짧게 대답했다. 우리들을 풀어준 이상 별일은 없을 거라고 여동생들을 안심시키며 기다렸다.

친구들이 돌아왔다. 음료수를 사다 주고 왔다고 했다. 원주민들은 언제 자리를 뜬 거지. 산골 촌놈들이라 해안선에 야간 통행금지가 있다는 것을 누가 알았나. 너 무슨 용기로 군대 갔다가 왔다고 거짓말을 했냐. , 누가 먼저 별 보러 가자고 했어. 좌우지당간 하늘에 뜬 별에다가 철모로 머리 맞으며 본 별까지 별은 실컷 봤다. 멋쩍어하며 수다스럽게 말을 주고받는 우리들에게 친구 여동생이 다가와 아픈 데는 없냐고 물었다. 그러고 나서 자기 오빠에게 오빠가 총검술 제일 못하더라고 해 우리는 깔깔깔 크게 웃었다.

다음 날 우리는, 신원을 확인하고도 폭력을 행사한 병사들을 신고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해안에서의 일이 있은 후 바닷가에서 밤에 들리는 총소리가 신경을 건드리며 귀에 들어왔다. 총소리가 오랫동안 들린 날은 바닷가에서 군대 생활을 한 직장 상사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야간 사격 훈련할 때도 있지만 사격 훈련 시 못다 쏜 총알을 파도 높은 날 다 소모하느라고 총을 쏘기도 한다고 했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총소리가 단발로 두세 발 나더니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다른 때와 달라 무슨 사고가 일어난 것 같았다. 헬기가 내려앉고 뜨는 소리도 들렸다.

직장에 출근해 같은 부서에 별정직으로 다니고 있는 동네 원주민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았다.

동네에 어린 손녀딸과 둘이 사는 할머니가 있는데 새벽에 미역을 주우러 나갔대요. 요새 바람이 일어 파도가 높았잖아요. 떠밀려오는 미역을 주워다가 팔아 어제 손녀딸 옷을 한 벌 샀대나. 오늘은 자기 옷을 한 벌 산다고 했었대요. 군인들이 할머니가 초소 쪽으로 다가오니까 서라고 명령했는데 서지 않고 자꾸 다가와 총을 쐈대요. 그 할머니 귀가 어두운데 뭐, 들리나. 생일날이라고 미역 팔아 옷 한 벌 사 입으려다가, 참내.

 

이 육칠 년 전 새벽 나는 한 생명을 향해 날아가는 총소리를 들었다. 그때는 군사정권 시대였다.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