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들에게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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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

쥐는 살아 있었다. 
우리에 갇혀 불안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있었다. 
쥐는 자신이 잠시 후 사지가 벌려진 채 배가 갈라져 죽게 되리라는 것을 이미 눈치챈 듯도 했다. 클로로포름을 흠뻑 적신 탈지면을 촉촉한 코끝에 갖다 대자, 쥐는 바로 잠들었다.

 

모두들 쥐 앞에서 주춤댔다. 작은 몸집이긴 해도 살아 있는 것의 배를 가위로 자르는 일은 잔인하게 느껴졌으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결국 내가 쥐를 실험대 위에 눕혔다. 분홍빛이 도는 작은 발을 사방으로 벌려 핀으로 고정했다. 때로 실험 중에 쥐가 깨어나기도 한다고 조교가 알려줬기에, 더욱 정성껏 꼼꼼히 고정했다. 그런 사태는 쥐에게나 실험하는 우리에게나 굉장히 끔찍한 일일 것이었다. 클로로포름에 마취됐다 깨어난 쥐는, 자신의 배가 열려 있고 내장이 마구 쏟아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 터였다. 우리는 내장을 줄줄 흘리며 도망치는 쥐를 잡기 위해 실험실 안을 뛰어다녀야 하겠지. 아무리 상상해봐도 그건 피차 좋지 않은 상황일 게 확실했다. 
가위를 들고 목에서 배 아래까지 잘랐다. 생각해보니 메스로 그었던가.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가죽을 잘라내서 벌린 다음 다시 핀으로 고정했다. 가죽 밑엔 얇은 막이 있는데, 그걸 핀셋으로 들어 올려 또 잘랐다. 얇은 막까지 벌리자, 드디어 내장이 드러나며 비린내가 훅 끼쳤다. 그 안에서 쥐의 조그만 심장이 애처롭게 뛰고 있었다.
내장을 하나씩 들춰보며 조교의 설명을 들었다. 간과 콩팥과 허파와 심장과 위와 창자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첫 실험 시간에 쥐를 해부한다는 것은 앞으로 그만큼 쥐와 가까워져야 함을 의미했다. 약학을 배우며 행할 온갖 실험에는 이 작은 털북숭이 녀석들이 아주 많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마침내 해부가 끝났다. 
중간에 다른 조의 쥐가 깨어나 꿈틀대는 소동이 있었지만, 그놈에겐 자신을 고정해놓은 핀까지 들어 올릴 힘은 없었다.  
우리는 쥐를 잘 치웠다. 그런 걸 버리는 곳은 따로 있었다. 쥐들은 가죽과 내장이 분리된 채 버려졌다. 나는 쓰레기더미 속에서 쥐가 깨어나 눈을 뜰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어쨌거나 그들은 죽지 않았으니까. 심장은 미약하게나마 계속 뛰었고 클로로포름에 취한 뇌는 꿈속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뿐이었다. 사체와 쓰레기가 뒤섞인 그곳에서, 쥐들은 눈을 뜨고도 뭐가 잘못된 건지 몰라 의아해하며 사방을 둘러보겠지. 

 

나중에 우리는 위령제를 지냈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의식 중 하나인 동물 위령제는, 동물 실험을 하는 학교와 연구소에서 1년에 한 번 치러진다(고 한다). 영혼이라는 게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런 의식을 생각해냈을 것이다. 영혼이 다시 태어날 땐 더 좋은 곳에 태어나리라 믿고 싶은 사람들이 그런 기묘한 의식을 고안해냈을 것이다. 영혼이 있고 ‘지금 여기’와는 다른 세상이 있어서 이곳에선 섧던 존재도 거기선 섧지 않으리라 믿는 사람들이, 지구 위의 수많은 의식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 살아 있는 생명이 오직 단 한 번만의 삶을 누릴 뿐, 그 이전도 그 이후도 없다면, 아무도 그 누구도, 개미 한 마리조차 함부로 밟지 못할 것이다. 그 개미는 온 우주를 통틀어 태곳적부터 먼 미래에 이르기까지 유일무이한 ‘개미’일 테니까. 
그러나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을 순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러니까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나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 약물의 효능과 안전성을 완벽히 테스트하게 될 어느 가까운 미래까지는.  

 

그날 나는 위령제를 올리는 곳에 서 있었다. 
그런데 그 후로도 나는 여전히 위령비 앞에 서 있다. 
아니, 우리는 모두 위령비 앞에 서 있다. 
세상의 모든 동물들의 위령비는 크고 높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 위령비는, 동물들이 그것으로 위안을 얻으리란 거대한 착각 속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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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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