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제53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2006년 12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문예지에 발표된 신작시를 대상으로 그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 수록하였다. 수상작인 이성복의 작품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나무인간 강판권>을 비롯한 자선작을 실었다. 감정의 진정성이 범상치 않은 이미지와 언어 구사를 통해 드러나 있는 15여 편의 작품을 담았다. 또한, 김행숙, 박형준, 송찬호 등 6인의 수상 후보자들의 작품과 역대 수상시인의 근작시,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이성복의 수상소감 등을 함께 수록했다.
수상작 이성복……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나무인간 강판권 外 수상작가 자선작 이성복……정선 外 수상후보작 김행숙……숲 속의 키스 外 박형준……소묘 外 송찬호……겨울의 여왕 外 이장욱……동사무소에 가자 外 이정록……꽃살문 外 장옥관……꽃을 찢고 열매 나오듯 外 역대 수상작가 최근작 황동규……어느 초밤 화성시 궁평항 外 김명인……천지간 外 나희덕……꽃바구니 外 심사평 예심 이혜원,김소연|개성이 빛나는 시의 스펙트럼 본심 유종호|저연한 심정적 리얼리티 정현종|벽에 부딪친 마음의 시 수상소감 이성복……문학, 불가능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
이성복 1952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대 불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77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남해 금산』『그 여름의 끝』『호랑가시나무의 기억』『아, 입이 없는 것들』『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심사평 중에서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나무인간 강판권」에서는 “자신이 있는 것을 내색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는 나무인간 강판권을 기리고 있는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오늘날 그러한 식물적 미덕은 시와 시인의 존재 이유가 될는지도 모른다. 나무의 온갖 적극적인 미덕들을 상기하면서……. ―정현종(시인) ▶ 수상 소감 먼저 분에 넘는 상을 주신 현대문학사와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수상 소식을 접하고 한동안 들었던 생각은 쑥스러움과 고마움이었습니다. 스스로 낄 자리가 아닌데 덥석 상을 받는 것도 멋쩍을 뿐더러 무슨 훈장처럼 상을 자꾸 챙기는 것도 눈치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근근이 살아계신 노모와 가족들에게 깜짝 기쁨을 안길 수 있어 기뻤고 제대로 글 쓰고 살라는 경책을 따뜻한 타이름으로 돌려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면 근래 저는 그리 문학적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다. 문학은 저에게 전부를 요구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에게 문학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감각적 신체적 즐거움에는 거품이 빠지지 않는데도 문학에 대한 열정은 끈끈이에 붙은 날개처럼 무력하기만 하고, 벗어나려는 몸짓이 오히려 더 깊이 빠지게 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문학은 ‘문학에 대한 사랑’일 뿐이고, ‘문학 아닌 것과의 싸움’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 인류 최고의 고안은 ‘부재’의 발명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그 고안은 최대 불운이며 저주이기도 합니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알아버린 그 불가능의 입구는 생-사-성-식의 불길한 화환과 불후의 먹이사슬로 둘러싸여 있고, 그 속에 한번 떨어지면 다시는 못 나오는 심연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오직 인간과 가까이 한 죄로 자손대대로 천형 받은 짐승들처럼, 우리 또한 불가능이 애지중지 기르는 가축들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비록 천형을 피하지 못하더라도 천형 받은 줄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학이 소중한 것은 검은 보자기 속 어둠으로 들어가 스위치를 누르는 옛날 사진사처럼 한순간, 한순간 불가능을 기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어두워야 불가능이 나타나고, 내가 죽어야 문학이 삽니다. 비록 제가 지금 문학적으로 살지 못해도 저는 문학을 믿습니다. 제가 비록 불가능을 잊는다 하더라도, 불가능이 저를 기억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