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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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회

반려견 밤이는 내 무릎을 턱을 괴는 데 쓴다. 주변에 푹신한 베개나 소파의 팔걸이, 기대기 좋은 구조물이 있을 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영락없이 나의 무릎은 가장 훌륭한 첫 번째 선택지가 된다. 동그랗게 솟은 무릎과 쭉 이어지는 뼈를 만져본다. 생각보다 단단해서 도무지 편할 것 같지 않은데 눈을 지긋하게 감고 곤하게 코를 고는 밤이를 보면, 나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힘이 내 무릎에 있는 건 아닌가 상상하게 된다. 이뿐인가. 바깥의 풍경을 보고 싶을 때 더욱더 귀 기울이고 싶은 흥미로운 소리가 들려올 때 밤이는 재빨리 나를 딛고 오른다. 앞발을 창가 쪽에 두고 넘어지지 않도록 온몸의 균형을 잡으면서 용감하게 세상을 응시한다. 그때 내 무릎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하나뿐인 계단이 된다. 한 존재의 높이와 세상의 높이가 맞도록 약간의 도움을 주는.

 

나는 일상에서 물 주름처럼 튀어 오르는 이런 순간을 무척 좋아한다. 혼자였다면 내가 내 무릎을 베개로, 계단으로 쓸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밤이가 있었기 때문에 때때로 비가 오는 날 외투 입은 나의 몸은 우산이 되기도 하고 더운 날 작은 그늘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랑은 한 존재의 몸을 창의적으로 뒤바꾸고, 기꺼이 사용하게 만들며, 그로 말미암아 세상과 새롭게 만나게 한다. 무릎에 오른 밤이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며 혹여나 균형을 잃고 쓰러지지는 않을까 몸을 잡아주던 일. 손가락 끝에 동그랗게 맺히던 힘과 반대로 활짝 핀 손이 만들어내던 부드러운 차양. 그 오목한 감촉들은 평평한 일상을 지탱하는 밤이와 나만 알고 있는 잔잔한 무늬일 테다.

그리고 그 무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의 기억과 닿게 된다.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아빠를 무척 따랐다. 외출하는 법 없이 주말을 조용히 보내고 싶어 하는 엄마와 달리 아빠는 늘 바깥을 향했던 사람이다. 지금도 아빠는 내가 사는 집에 놀러 와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딘가로 사라진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걸면 우리 동네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목욕탕에 가 있다든가, 다른 동네의 빵집에서 달달한 단팥빵을 사서 이리로 오는 중이라고 답한다. 세상에 대해 지칠 줄 모르는 궁금증이 내 안에 있던 시절 어쩌면 누구보다도 활기로 가득 차 바깥을 탐색하는 아빠를 따랐던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빠와 했던 수많은 일 중 가장 좋았던 한 가지는 산에 가는 일이었다. 우리는 새벽같이 일어나 오이나 당근, 사과 같은 간단한 요깃거리에 따뜻한 보리차를 챙겨 등산에 나섰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던 칠보산, 북한산부터 강원도에 있는 설악산까지 가보고 싶은 산이 있다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함께 떠났다.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칠보산이다. 칠보산은 동네에 있어 부담 없이 언제든 갈 수 있었다. 소나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청량한 수림과 완만하게 펼쳐지던 능선. 곳곳에 형성된 자연습지는 도시에 살던 내가 유일하게 마음 편히 뛰어다닐 수 있는 곳이자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동물과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마운 장소였다. 머리 위로 날아가던 곤줄박이와 박새, 다람쥐와 청설모들. 민첩하게 공중과 땅을 부지런히 오고 가던 그들을 관찰하며 아빠와 산에 오르던 그 수많은 계절은 내 안을 살찌워 몸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번은 칠보산으로 겨울 산행을 나선 적이 있었다. 한파주의보가 있던 날이었고 전날 밤 줄곧 눈이 내린 것을 알았기에 아이젠을 챙기고 두툼한 옷을 껴입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그러나 눈 덮인 산길은 예상보다 훨씬 거칠고 험했다. 새하얗게 덮인 눈으로 인해 등산로와 샛길을 구분하기 어려웠고 푹푹 발밑이 꺼져 땀과 눈으로 신발 안쪽이 젖기 시작했다. 서둘러 발길을 틀었으나 이미 양말까지 젖어 뼛속까지 발이 시렸다. 얼마간 통증이 밀려오더니 마침내 감각을 잃었을 때 아빠가 황급히 나를 등에 업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따끔씩 발길을 멈춰 껴입은 옷의 지퍼를 내려 꽁꽁 언 발을 겨드랑이 안쪽에 넣어 녹이면서. 따뜻한 피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그 온도는 아빠의 몸이 낼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온도였을 거라고, 지금까지도 나는 생각한다. 그때 아빠의 몸은 추위로부터 어린 딸을 지키는 작은 움막이자 살얼음 낀 잎을 녹이는 볕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엄마는 내 상태를 보고 한겨울에 나를 산으로 데려간 아빠를 무척 나무랐다. 아빠는 별다른 대꾸도 하지 못한 채로 몇 번이고 나의 발가락이 괜찮은지 확인했다. 손으로 쓰다듬고 미안해하면서 두툼한 이불을 덮고 노곤해진 내가 잠들 때까지 오래 곁을 지켰다.

때때로 동물도 등산객도 보이지 않던 그 춥고 고요한 겨울 산이 떠오른다. 거칠게 호흡하는 아빠의 숨소리와 발소리, 그 아래서 눈 바스러지는 소리만이 어렴풋이 들려오던 그 겨울 산. 추위가 추위를 갱신하던 그해 아빠는 내게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몸을 내어주는 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해지는 것인지, 그 온기는 한 존재를 따스하게 덥고도 남을 만큼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었다. 그 기억을 스웨터처럼 입고 오늘도 여지없이 무릎에 기댄 밤이의 털을 쓰다듬는다. 부드럽고 고요하다. 눈을 맞추면 밤이는 혀로 내 입술을 조심스레 핥아준다. 때로는 눈가를, 때로는 뺨을. 이 온기를 느끼며 혹독한 겨울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내 몸이 어떻게 변모할 수 있을지 궁리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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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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