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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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

처음 윤주를 만났을 때 우리는 별다른 접점 없이 헤어졌다. 두 번째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뒤풀이 장소에서 말없이 밥을 먹은 후 인사 나누고 헤어진 것이 전부였다. 마땅히 겹치는 경로도 취미도, 그렇다고 선뜻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성격도 아닌 윤주와 내가 조금씩 가까워지게 된 것은 우연한 사건 때문이었다.

 

몇 달 전 서울이 아닌 곳에서 윤주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그림이 큼직하게 걸려 있는 카페 테이블에 마주 앉아 처음으로 속 얘기를 털어놓았다. 뻣뻣한 냅킨에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하나씩 적고 펼쳐 보면서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나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일, 요즘 많이 하는 고민이나 자신을 적절히 설명한다고 판단되는 몇 개의 단어를 공유했다. 나는 윤주에게 물었다.

 

너는 어떤 사람이야?”

윤주는 대답했다.

나는 타인에게 중력을 내어주는 사람이야.”

 

그 말을 들었을 때 윤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이 틀리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윤주와 나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와의 관계에서만큼은 윤주가 중력을 내어주지 않았으면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보다는 타인이 좋아하는 일을 함께해주었던 윤주가 자신을 주장하고 드러내며 자유로워지길 바랐다.

다른 무엇보다도 나는 윤주가 궁금했다. 살아가는 데 큰 욕심이 없다고 말하는 윤주가 그럼에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는지, 한 번쯤 가벼운 마음으로 가보고 싶은 장소는 있는지 알고 싶었다. 만약 윤주가 나에게 중력을 내어주고 전적으로 맞춰준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영영 알지 못할 터였다.

 

시간이 꽤 많이 흐른 지금, 나는 그때 했던 생각을 다른 쪽으로 옮겨야 했음을 안다. 윤주가 타인에게 중력을 내어줄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윤주가 타인에게 중력을 잠시 건네주어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한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또 그만큼 타인을 깊이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을. 그때의 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만 카페에서 나와 놀랍도록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함께 걸으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이 맑은 순간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여름에는 잘 익은 수박을 갈라 먹고, 가을에는 늦은 밤 극장에서 만나 영화 한 편을 보고 헤어지는 식으로 우리는 몇 개의 계절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윤주에 대한 아주 자그마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윤주는 한 사람 곁에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 한 번 더 타인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라는 것. 나는 이것이 얼마나 커다란 용기인 줄 안다. 무언가를 먼저 내어주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손쉽게 말하는 세상에서 누름돌처럼 흔들리지 않고, 한 사람이 가진 불완전함을 이해해보고자 노력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이 불확실해졌지만 여전히 내가 믿고 있는 하나의 진실이 있다. 한 사람의 불완전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세상의 불완전함도 사랑해줄 수 있다는 것.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매몰찬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윤주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명쾌해지지 않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다가 어느 누군가는 해답을 줬으면 하는 심정으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너는 내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어?”

내가 묻자 윤주는 이렇게 답했다.

어떻게 살고 싶은데?”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되물음이었겠지만 내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향해 왔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윤주이지만 그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살고 싶은 미래가 있다면 얼마든지 응원해줄 거라는 단단한 믿음이 목소리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어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냐는 되물음. 간직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그 질문을 윤주는 나에게 다시 되돌려줬다.

 

주말에 만나면 뭐 먹을까? 김치찜 어때?”

내가 물으면 윤주는 답한다.

김치찜은 싫은데.”

그럼 파스타는?”

되물으면 윤주는 다시 답한다.

그건 너무 느끼할 것 같은데.”

그럼 약속 전까지 잘 생각해봐. 뭐가 먹고 싶은지.”

 

내가 말하면 윤주는 생각해본다고 말한다. 나는 이번 주말에 윤주가 어떤 음식을 먹자고 할지 궁금하다. 맑고 시원한 콩나물국밥을 먹고 싶어 할까? 아니면 고수가 송송 들어간 쌀국수를 먹고 싶어 할까. 어떤 음식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가 그것을 함께 나눠 먹으리라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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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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