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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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회

2022년 어느 여름, 첫 시집이 나오자마자 편집자 선생님께서 세 권을 퀵으로 보내주셨다. 나는 너무 떨리는 마음에 앞 장만 살펴보고 바로 가방 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조금 무거워진 가방을 애써 무시한 채 아직 책이 나오지 않은 것처럼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할 일은 많은데 첫 시집이 나왔다고 괜히 들떠서 해야 할 일들을 못 마치게 될까봐, 다 읽고 나면 나만 내 시집이 재밌었다고 생각하게 될까봐 혼자 지레 겁을 먹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름대로 마인드 컨트롤을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웃기는 행동이지만 그때는 정말 진지했다. 괜히 불안한 마음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저 그게 말이야, 내가 시집이 나왔는데 무서워서 그냥 가방 속에 넣어놨어.”

그게 무슨 소리야? 세상 사람들 여기 제 시집 좀 보세요, 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뭐라고?”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무섭다고 했더니 친구는 내가 나의 시집을 자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그 시집을 들여다보겠냐고 말해주었다. 나는 친구가 해준 말이 어쩐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 말은 나에게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널 사랑하겠어와 같은 말처럼 들렸다. 나는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시집을 꺼내 천천히 살펴보았다. 혼자서 시집을 펼쳐보았던 나는 어느새 어린 시절의 나와 함께 시집을 보고 있었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2023년 어느 봄날, 나는 또다시 두 번째 시집의 출간을 앞두고 있었다(연재 기준으로 이미 출간되었을지도……). 325일 출간 일정에 맞춰 2월 중순 쯤 원고를 보냈는데, 송고하고 난 뒤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인 마츠모토 레이지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두 번째 시집에는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인물 중 한명인 모리키씨에 관한 시편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나는 누워서 은하철도 999에 관한 최초의 기억을 떠올렸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주 어렸을 때 본 은하철도 999는 한마디로 무서웠다. 쉽게 말해 등장인물들이 모두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당시 우울이라는 단어를 모를 만큼 어렸지만 우울이라는 감정을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었던 것 같다. 어둠을 무서워하던 어린 시절 나에게 어둠 속을 달리는 만화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만화의 분위기도, 대사의 깊이도 온전히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스물 중반이 되던 어느 해에 나는 우연히 은하철도 999의 한 편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는 그 만화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어린 시절보다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던 열차에 전기가 통하는 버섯이 박히게 되고, 그 열차에 탑승하고 있던 나무인간 모리키씨는 자신이 해결해보겠다고 말한다. 강력하게 흐르는 전기 앞에서 더 강력한 어떤 믿음이 존재했던 것일까? 모리키 씨는 전기버섯을 만지자마자 죽는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은하철도 999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열차였다. 나는 어린 시절보다 죽음을 더 잘 아는 나이가 되었고, 그때보단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는 더 모르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출간을 앞두고 내게 소감이 어떤지 종종 물을 때가 있었다. 글쎄 뭐랄까. 나의 마음을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모리키 씨의 마음 또한 그랬겠지. 나는 모리키 씨가 보여준 행동에 대해 뭐라고 내 마음을 정의할 수 없었다. 다만 이번 시집의 출간을 앞두고 소감을 말해보자면 모리키 씨가 보여준 행동처럼 뒤로 가고 싶지 않다는 것.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것. 내가 아무리 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다고 할지라도 시집 앞에서는 숨지 않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좋은 시를 쓰고 싶다.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는 어쭙잖은 처지에 놓인다 하더라도 시에 있어서만은 그런 모든 어쭙잖음을 보상하고도 남을 처지에 놓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김춘수 선생님의 신념처럼 말이다. 출간을 바로 코앞에 둔 순간 나는 이번 시집에서 모리키 씨에 대한 구절 하나가 떠올랐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종착역에 도착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리키 씨와 나는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마냐나) 시의 구절처럼 한 인간으로서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종착역에 도착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시집들은 무사히 독자 분들 앞에 잘 도착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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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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