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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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회

 

조금 걱정이 되네요. 제가 실수를 할까봐요.”

탱고는 실수할 게 없어요. 인생과는 달리 단순하죠. 탱고는 정말 멋진 거예요.

만약 실수를 해서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죠.” 

 

―영화 「여인의 향기」 중에서

 

 

 

갑자기 무슨 탱고 이야기인가 싶지만…….

스텝이 엉키면 엉키는 대로 탱고라니. 실수를 하면 실수하는 대로 멋진 것이라니. 정말 낭만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다른 운동에서 스텝이 엉키면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다. 저 대사의 요지는 실수를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하지만 테니스는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배운 바로는 그렇다. 살면서 스텝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테니스를 통해 깨달았다. 많은 이들이 테니스는 흔히 상체만을 사용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테니스는 상체 못지않게 하체도 매우 중요한 운동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스텝이다. 그리고 잔발이다. 여기서 잔발이란 발을 계속해서 조금씩 움직여주는 것이다. 잔발이 중요한 이유는 공이 어디서 날아오든 공이 오고 있는 위치로 재빠르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동작의 스텝이 엉키지 않도록 해준다. 정확한 동작으로 스텝을 밟으면 상체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었다.

 

최근 새로운 자세를 배우면서 새로운 스텝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 이 자세를 배우는 이유는 어디서든 공이 날아오면 막기 위함이라고 말해주셨다. 나는 그 말이 왠지 인생의 일부분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간혹 집중력이 떨어진 나에게 공이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니 집중하라며 왼쪽으로 공을 보낼 것처럼 하고는 오른쪽으로 공을 보내시기도 하셨다. 어떤 공은 아무리 달려도 놓치기 일쑤였고, 어떤 공은 간신히 받아내기도, 어떤 공은 손 쉽게 잘 받아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매회 내 앞에 떨어진 공을 어떻게 받아낼 것인가는 인생에서 어떤 문제를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어떤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었고, 어떤 일은 겨우 마무리하는 정도였고, 어떤 일은 힘을 쓰지 않아도 술술 잘 풀리기도 했다. 잠시나마 나는 테니스를 통해 인생을 다시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모든 운동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태어나서 처음 배운 스텝은 아마도 걸음마일 것이다. 잘 기억나진 않겠지만 첫 걸음마를 떼었을 때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아마도) 영문도 모른 채 칭찬과 박수 세례를 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걷기만 해도 칭찬받았던 순간을 지나 지금은 아무도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지만 여전히 잘 걷는 것은 살면서 너무나도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나는 최근에 배운 테니스 스텝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살짝 점프를 하고 발을 계속 굴려주는 것. 공을 잘 받아내기 어렵더라도 계속 달려보는 것. 공을 놓치더라도 스텝이 엉키지 않는다면 금방 다시 일어나서 새 공을 칠 수 있다는 것. 상담을 받았을 때도 중요한 건 산책이라고 했는데, 잘 걸어야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고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스텝은 어딜 가나 중요하구나. 테니스가 탱고처럼 낭만적인 운동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한테는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운동인 건 확실하다. 테니스를 통해 당당함을 배우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테니스를 언제까지 배울지는 모르겠지만 스텝이 엉켜도 탱고인 것처럼 스텝이 엉켜도 금방 다시 일어나 새로운 공을 맞받아칠 수 있다면 테니스는 나에게 꽤 낭만적인 운동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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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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