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회
기억은 끊임없이 다시 창조된다. 기억을 놓아버려서도 안 되며, 기억을 독점해서도 안 된다. 기억은 우리 존재의 핵심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가 껴안고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문제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런 문제를 환기시킨다. 홀로코스트라는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에 대해 영화는 여러 방식으로 접근했다. 극영화, 다큐멘터리, 혹은 인터뷰 등 각각은 나름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홀로코스트 문제만이 아니라 더 일반적으로 영화는 과거 역사 사실에 대해 증거를 모으고 해석하고 서술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영화를 통한 역사학은 문자 세계 속의 역사학과는 분명히 다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제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색하고 우리 나름의 창의적인 방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기대는 할 수 있으리라. 지금까지 역사학과 역사의식은 소수 엘리트에 의해 독점되어왔다. 일반 대중과 바로 직면할 수 있는 영화는 그런 역사의식의 독점을 깨고 그것을 다시 일반 대중에게 돌려주는 기능을 맡아야 한다. 영화는 기록을 남기기 힘든 평범한 사람들의 증언을 담을 수도 있고, 한 시대와 사회의 구석구석을 직접 영상에 담음으로써 가장 구체적인 사료로 활용할 수도 있다. 또 주류 담론을 깨고 폭로하는 제3의 해석을 사회에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영화 초창기부터 의식 있는 영화인들 스스로 영화가 가진 위험을 지적해왔다. 영화는 인민의 아편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눈을 뜨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캄캄한 절벽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영화들이 전 세계 사람들의 꿈을 조작하고 있지 않은가.
마르크 페로가 말하듯 “에너지의 덩어리”요 “길들여야 할 야생동물”과 같은 이미지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다. 영화가 단지 꿈같은 이야기를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해석하고 발언하려면, 역사가의 엄밀성과 영화인의 창의성이 더해지고 동시에 사회와 역사에 대한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