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야만 한다고 믿는 가족이 말 못할 아픔이 될 때,
외로운 당신의 등을 토닥여주는 작가 공지영의 손길
사랑을 한다는 것은 머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산 사람의 몫이니까. 산 사람은 키와 머리칼이 자라고 주름이 깊어지며 하루에 천 개의 세포를 죽여 몸 밖으로 쏟아내고 쉴 새 없이 새 피를 만들어 혈관을 적신다. 집 안을 떠도는 먼지의 칠십 퍼센트는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온 죽은 세포라는 기사를 인터넷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집 안의 먼지 하나도 예사로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어제의 나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제의 나는 분명 오늘의 나와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또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인 것이다. 이 이상한 논리의 뫼비우스 띠가 삶일까? (51~52쪽)
“공부도 행복하게 해야 하는 거야. 어떤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거 그거 좋은 거 아니야. 네가 그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오늘을 견딘다면, 그 희망 때문에 견디는 게 행복해야 행복한 거야. 오늘도 너의 인생이거든.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영영 행복은 없어.” (53쪽)
이상하게도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이 왜 불행한지. 그건 대개 엄마가 불행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부가 불화하는 집 아이들이 왜 불행한지도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그건 엄마가 불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아, 이 세상에서 엄마라는 종족의 힘은 얼마나 센지. 그리고 그렇게 힘이 센 종족이 얼마나 오래도록 제힘이 얼마나 센지도 모른 채로 슬펐는지. (64쪽)
“내 말…… 그냥 하는 말 아니야. 엄마를 보며 생각한 건데, 엄마는 엄마 자동차의 열쇠를 언제나 호주머니 속에 넣고 있었어……. 나, 친구 엄마들 많이 보았는데 강물 속으로 열쇠를 던져버린 사람들 참 많더라. 그래서 누가 밀어주기 전에는 다시는 시동을 걸 수가 없더라. 엄마는 가끔씩 엄마를 버리고 시동을 꺼버리긴 했지만 열쇠를 간직하고 있었으니까 엄마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다시 행복을 향해 떠날 수가 있었잖아. 엄마가 내게 가르쳐준 건 그거야……. 그러니까 엄마는 엄마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었던 거야……. 엄마,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힘들어하지 마, 후회하지도 말고…….” (102쪽)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엄마는 그걸 운명이라고 불러……. 위녕, 그걸 극복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걸 받아들이는 거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거야. 큰 파도가 일 때 배가 그 파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듯이, 마주 서서 가는 거야. 슬퍼해야지. 더 이상 슬퍼할 수 없을 때까지 슬퍼해야지. 원망해야지, 하늘에다 대고,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가 있어요! 하고 소리 질러야지. 목이 쉬어 터질 때까지 소리 질러야지. 하지만 그러고 나서, 더 할 수 없을 때까지 실컷 그러고 나서……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말해야 해. 자, 이제 네 차례야, 하고.” (205쪽)
“친구가 이상하면 안 만나면 그만이야, 다른 친구들이랑 사귀면 되니까. 하지만 가족은 달라. 엄마랑 딸은 죽어도, 정말 문자 그대로 죽어도, 죽고 나서도 엄마랑 딸이야. 아빠도 동생도 다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더불어 살기 위해 자신을 조금씩 바꾸고 그래야 해……. 관계를 다시 설정할 수가 없으니까……. 이런 것들을 감내해야 하는 거야.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친구도 이해할 수 있는 연습을 하게 되고, 사람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게 되는 거야. 가족은 한번 정해지면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어쩔 수가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래.” (341쪽)
“위녕, 넌 참 이쁘고 좋은 아이야. 언제든 그걸 잊으면 안 된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엄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엄마가 내게 준 사랑의 열쇠는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준 것 말이다. 엄마는 내게 그 열쇠로 세상의 문을 열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고 싶었다.
아저씨의 차에 타고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가 두 동생들과 함께 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비로소 내가 온전히 혼자라는 것을, 그리고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392쪽)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급속하게 정신적·문화적 지형이 변모해온 한국 사회에서 26년 동안 최고 인기 작가로 자리매김하며, 전집이나 시리즈가 아닌 단행본만으로 통권 1000만 부 판매를 기록한 힘을 지닌 작가.
1988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동트는 새벽」으로 등단해 후일담 문학으로 주목받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로 페미니즘 작가의 명성을 얻었다. 1994년 『고등어』『인간에 대한 예의』『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 권이 동시에 베스트셀러 10위권에 들어 대한민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으며 ‘공지영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봉순이 언니』『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가니』는 사회가 민주화되고 경제가 성장해도 여전히 열악한 상황에서 고통 받는 이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안온한 일상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무딘 감성을 날카롭게 후벼 팠고, 르포르타주 『의자놀이』는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의 현실을 정면으로 풀어냈다.
소설뿐만 아니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등 개인적 삶을 솔직하게 드러낸 산문집들 역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2012년에는 등단 이후의 작가 인생을 돌아보며 그간의 작품에서 모은 글귀들로 앤솔로지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도 펴냈다.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이 폴라북스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2007년 11월 20일 열렸던 출판 기자 간담회에서 작가가 “자신의 가족이 남들과 달라서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줬으면 해요”라고 이야기한 이후 6년, 이혼 가정은 그야말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가족의 형태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는 기러기 아빠와 기러기 엄마, 주말부부를 비롯하여 다문화가족이나 한부모가족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가족 해체로 인해 삶의 베이스캠프로서 든든히 자리를 지켜야 할 가정과 가족 관계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제는 남들과 ‘달라서’가 아니라 남들과 형태는 ‘같지만’ 힘겨운, 사랑해야만 한다고 믿는 가족이 말 못할 아픔이 되고 “함께 있어도 결별이 되는 그런 사이”(18쪽)로 변한 집의 서글픈 현실을 우리는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끼리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같이 식사하는 모습은 도통 찾아볼 수 없거니와, 어쩌다 마주하는 순간에는 부정적인 말로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전쟁터 같은 가정이 얼마나 많은가. 등단 이후 한결같이 시대의 서사를 껴안아온 작가 공지영의 위로와 격려가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는 다시 한 번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가족이라는 것은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견고한 울타리 같은 거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적으로 사적인 영역이니까.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고 침범당해서는 안 돼. 그런데 그런 폐쇄된 영역에서 힘이 센 한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에게 폭력을 쓰자고 들면 힘이 약한 사람은 당하게 마련인 거야. 타인들이 볼 수 없는 장막 저쪽의 세계니까. 그게 부인이든 남편이든 혹은 아이든 노인이든…… 그 사람이 페미니스트든 사회정의의 화신이든 힘이 센 사람이 폭력을 쓰면 약한 사람은 당하는 거……. 그게 가족의 딜레마일 거야. 낯선 사람이 가하는 폭력은 피하면 되지. 친구가 그러면 안 만나면 되지. 그러나 사랑해야만 한다고 믿는 가족이 그런 일을 저지를 때 거기서 모든 비극이 시작되는 거야.”(100~101쪽)
『즐거운 나의 집』은 열여덟 살 주인공 위녕이, 고 삼이 되기 전 십 대의 마지막을 자신을 낳아준 엄마와 함께 보내겠다며 “나로 말하자면 마음속으로 아빠를 떠나는 연습을 매일 하고 있었다”(5쪽)라는 독백과 함께 아버지와 새엄마의 집에서 떠나 B 시로 거처를 옮기면서 시작된다. 위녕은 새로 자리 잡은 엄마의 집에서 계절이 여섯 번 변하는 동안 성이 다른 두 동생, 둥빈·제제와 부대끼며 고양이 코코와 만났다 이별하고 동생 둥빈 아빠의 죽음을 겪으면서, 스스로의 상처를 돌아보고 치유하며 엄마의 부재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자신의 정체성과 더불어 가족의 의미를 되찾는 이야기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위녕의 성장을 그린 성장소설이자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 가족소설이면서 동시에 상처와 그 치유를 통해 삶을 성찰하는 소설이다. 자칫 어둡고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들이지만, 『즐거운 나의 집』은 시종일관 유쾌한 필치로 전개되어 보편적인 감동을 이끌어낸다.
“어떤 순간에도 너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어서는 안 돼. 너도 모자라고 엄마도 모자라고 아빠도 모자라…….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자람 때문에 누구를 멸시하거나 미워할 권리는 없어. 괜찮은 거야. 그담에 또 잘하면 되는 거야. 잘못하면 또 고치면 되는 거야. 그담에 잘못하면 또 고치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가 있는 거야. 엄마는…… 엄마 자신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어.”(96쪽)
작가는 각각의 어긋남을 외면하지 않고 오랫동안 대면하면서 결국 서로를 감싸 안는 특별한 해법인 ‘이해’와 ‘사랑’을 터득한 한 가족의 모습을 그리면서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래, 상처와 치유가 별개냐? 내가 내가 아닐 때, 그것은 상처이고 내가 다시 나를 찾을 때, 누구에게도 먼저 내 잘못이 아니라구요, 변명하지 않을 때 그게 바로 치유가 아니겠냐고……”(145~146쪽)라고 이야기하는 엄마와 “나로 말하자면, 엄마를 만난 후 비로소 그냥 나일 수 있었다”(57쪽)라고 이야기하는 딸 위녕의 모습은 행복한 가정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어떤 책에서 ‘아이들은 엄마가 잘해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때 행복을 느낀다’는 글을 읽었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집이 행복한 집인 것 같다. 존중해야 할 영역, 내버려둬야 할 영역, 개입해야 할 영역을 서로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답한 작가의 말과 이어진다.
아울러 공지영은 우리 시대 가족의 새로운 의미를 이렇게 풀어놓는다.
“혹시, 아무 생각도 없는 거, 그게 좋은 가정이라는 게 아닐까, 그냥 밥 먹고, 자고, 가끔 외식하고 가끔 같이 텔레비 보고, 가끔 싸우고, 더러 지긋지긋해하다가 또 화해하고, 그런 거……. 누가 그러더라구, 집은 산악인으로 말하자면 베이스캠프라고 말이야. 튼튼하게 잘 있어야 하지만, 그게 목적일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게 흔들거리면 산 정상에 올라갈 수도 없고, 날씨가 나쁘면 도로 내려와서 잠시 피해 있다가 다시 떠나는 곳, 그게 집이라고. 하지만 목적 그 자체는 아니라고,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서 결코 튼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 삶은 충분히 비바람 치니까, 그럴 때 돌아와 쉴 만큼은 튼튼해야 한다고…….”(311~3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