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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이영광 -
978-89-7275-158-8 04
2020년 03월 30일
80쪽 | 104*182 | 4*6변형
9,000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026 이영광 시집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VOL. Ⅴ 출간!


문학을 잇고 문학을 조명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한국 시 문학의 넓고 깊은 진폭을 확인시켜줄 다섯 번째 컬렉션!

 

현대문학의 새로운 한국 문학 시리즈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이 다섯 번째 컬렉션 『현대문학 핀 시리즈 VOL.Ⅴ』를 출간한다. 작품을 통해 작가를 충분히 조명한다는 취지로 월간 『현대문학』 2019년 7월호부터 12월호까지 작가 특집란을 통해 수록된 바 있는 여섯 시인―김언희, 이영광, 신영배, 서윤후, 임솔아, 안미옥―의 시와 에세이를 여섯 권 소시집으로 묶었다.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 특색을 갖춰 이목을 집중시키는 핀 시리즈 시인선의 이번 시집의 표지 작품은 지난 30여 년간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해온 김지원 작가의 ‘비행’을 주제로 한 드로잉 작품들로 채워졌다. 대표적 정물 연작‘맨드라미’시리즈로 ‘회화가 가지는 매력을 극대화시켰다’는 평단의 찬사를 받은 바 있는 작가는 캔버스 사이를 자유롭게 비행하는 행위와도 같다는 자신의 작업관을 표현한 ‘비행’ 시리즈를 통해 보다 확장된 작가의 미적 탐구의 여정을 보여준다.

 

이영광 시집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6인 작가의 친필 사인이 담긴 한정판 박스 세트 동시 발매

 

『현대문학 핀 시리즈 VOL.Ⅴ』의 시인들은 김언희, 이영광, 신영배, 서윤후, 임솔아, 안미옥 6인이다. 지난 『현대문학 핀 시리즈 VOL. Ⅳ』(황인숙, 박정대, 김이듬, 박연준, 문보영, 정다연)가 한국 시 문학의 다양한 감수성을 선보이는 데 주력했다면 이번 다섯 번째 컬렉션은 그 저변을 더욱 넓혀 한국 시 문학의 전위와 도약까지 담아내고자 기획되었다.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는 1998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해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유려한 리듬과 명징한 언어로 단단한 시적 사유를 펼쳐온 이영광 시인의 신작 소시집이다. 곤궁한 일상 속으로 파고들어오는 떨칠 수 없는 존재의 고통과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들에 주목하면서, 참혹한 현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느끼는 절망과 분노 그리고 희망의 압축된 정조를 보여주는 23편의 시편들을 엮었다.

돈을 빌려달라는 친구에게 “빌려주지 않을 방도를 궁리하”다가 카드를 꺼내 “유리로 손목을 긋듯”(「편의점」) 술과 담배를 계산하는 자신, 죽고 싶다 되뇌는 중에도 “죽지 않는 것이/제일 편”(「시체 중」)하다는 자신을 향한 자조와 비탄을 특유의 유머와 쓸쓸한 정서로 묘사한 시편들은 “갈 데까지 가본 마음”(신동옥 시인)을 드러내며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도무지 맨정신으로 살아지지 않는 세상을 향해 조용하게 읊조리는 그의 반성적 독백은 슬픔이었다가 분노였다가 용서였다가 결국 사랑이 되어, 우리에게 삶의 활로를 모색케 한다. 고통을 감내하며 세상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소중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내는 것이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이 가진 특색 중 하나인 6인 시인의 공통 테마 에세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시집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하고, 시인의 목소리를 보다 친밀하게 들을 수 있게 해준다. ‘VOL. Ⅴ’의 시인들은 각자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기호嗜好’혹은 ‘기호품嗜好品’을 주제로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대취의 기억들이 열거된 「명정酩酊 수첩」은 이영광 시인이 술을 마시는,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유의 기록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사실 술기운을 빌어 부르는 절절한 그리움의 노래다. 마음 붙일 데 없어 무엇이든 그만두어버리는 식으로 상처를 견뎌온 시인은 아들의 단잠을 깨울까 밤늦어서야 생일 안부 전화를 걸어오는 어머니, 투병 중에 인사할 시간도 없이 떠나버린 동료, 얕은 꿈속으로 찾아온 저세상의 아버지, 침묵으로 소통하는 술상대 등에 대한 기억을 다정하게 호명하듯 부려놓고, 한잔의 술과 함께 천천히 곱씹는다. 살아내기 위해서, 시를 쓰기 위해서 술을 곁에 둘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는 시인의 운명을 가진 자만이 부릴 수 있는 호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술은 시이자 사람이자 삶이자 자기 자신이란 것을 기어코 설득시킨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VOL.Ⅴ』는 300질 한정으로 작가 친필 사인본 박스 세트(전 6권)와 낱권 시집(양장)이 동시에 발매된다. 한정판 박스 세트의 경우, 핀 시리즈 시인선만의 특색이자 시인들의 친필 사인과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어 소장의 가치를 높인다.



현대문학 × 아티스트 김지원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구성된 독창적인 시인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시편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시와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 작가의 말

 

유력의 골짜기들을 어렴풋이 안다. 돈, 명예, 권위, 권력은 물론 온갖 물질성을 놓고 벌이는 각축의 장들. 이것들엔 피가 흐른다, 헛된 피가, 강물처럼. 깊은 밤 먹자골목의 음식물 쓰레기봉투에서 새어 나오는 국물 같은.

어떤 무력의 골짜기에 사슬에 묶이듯 묶여 있다. 가스 같고 구름 같고 빈 자루 같고 거품 같은, 아무것도 아닌 것과의 투쟁. 아무것도 아닌 것과 싸우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과 싸운단 말인가. 이 싸움에는 한 방울의 피도 안 난다. 그러나 모든 것이 걸려 있다.

오늘 밤 나는 내가 술 먹고 게워놓은 나 같구나.

*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시와 여기 없는 여자이고, 제일 잘하는 건 그만두는 거다. 그런데도 술은 아직 나를 마셔준다. 나는 술의 기호품이다.

―에세이 「명정酩酊 수첩」 중에서

 

 

▲ 본문 중에서

 

희망과 도전이 없다

번식도 해탈도 없다 도무지

한잔 술을 모른다 그래서

꿈꾸게 된다 이 생의 모든

힘과 투지로, 부조금으로,

불현듯 영정 뒤에 가 누웠다

돌아오는 한 사람,

살 줄 모르는 살 줄 모르는

고인급 생존 인물을

―「고인급」 부분

 

미움 없는 사람

에겐 하나도 배울 게 없다 배울 힘이 없다 밉게 선해진다 선하게 미워지지 않는다 깨끗한 사람 보면 욕심 난다 달려들고 싶어진다 그 깨끗함을 몽땅 빼앗아 내 몸에 칠하고 싶어진다 깨끗함에 온통 더럽혀지고 싶다 깨끗한 사람에겐 배울 수가 없다 배우려고 애쓸 수가 없다 더럽게 깨끗해진다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부분

 

 

사랑해도 죽지 않았다

술을 마셨다

30년 전에

 

(……)

 

30년은 아귀처럼

배고프다

사랑을 참는 사랑을

참는 사랑을

참는

 

사랑은 죽지를 않는다

―「시체 중」 부분

 

 

닷새 장 기우는 늦여름 정류장에 기댄 마른 아지

매, 때 절은 저고리 낡은 치마에 손등이 까맣게 그

을려서는, 무얼 먹어요? 누가 물으면 화들짝 놀라,

암껏도 아이시더, 입에 숨기며 보퉁이에 숨기며 그

을음처럼 웃는, 마흔 해 저편, 먼 어머니

―「보퉁이—시 창작 교실 2」 부분

 

 

이 친구도 누구에게 빚을 주었겠지

나는 또 누군가에게 빚을 얻어야겠지

돈이 뭔지도 모르면서 돈에 시달리다간 드디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악착이

유리에 베인 뙤약볕이 쿡쿡 눈을 찌르는

편의점 창가에서 어느새,

나는 빌려주지 않을 방도를 궁리하고 있다

 

빌려주지 않을 무슨 수가 없을까 하는 고민은

돌려받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의 버릇,

생각하면 이미 늦다는 걸 알면서도

내 정성엔 벌써 이렇게 무수한 실금이 간다, 가지만,

너무 늦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이르진 않게

카드를 꺼내

유리로 손목을 긋듯이 주욱

 

당황은 기껏 깨진 뙤약볕 같은 것이다

내일 따위는 생각도 말고 일단은

살자고, 문자를 하며,

정성의 실패는 정성일까

애정의 실패는 애정일까

나는 라면과 소주를 사 들고

햇반과 레종을 사 들고

―「편의점」 부분

 

돈 별로 없는 내가

청년들과 한잔하고

지갑을 꺼낼 때는

눈 내리는 나에게 왠지

술값밖에 없을 때다

캐럴이 울려 퍼지는

난 돈이 한 개도 없어

술값은 많아

함박눈처럼

이봐, 난 돈을 꺼낸다

이 지갑은 심장에서

나온 거야 이건 내

심장이야 재벌의 심장

돈은 없어

눈도 삐뚤 코도 삐뚤

술값은 이렇게나 많아

―「눈사람」 전문

 

 

시를 업고 내려와서는

산 아래 산채비빔밥집 석양에 등산화 벗고 앉아

승산이 없어지는 것

소주잔에 내려온 봉우리를 보며

연연을 문초하는 것

허기가 모자라고 모자라서

자꾸 배가 고픈 것

승부가 없어지는 것

하산 길이 더 멀다는 것

발아래 휘황한 불빛 어디에도 끝까지

패할 곳이 안 보이는 것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가도

다 내려가지 못하리라는 것

―「하산」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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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 Author: Juan Lee (Seung 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