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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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회

생각해보니 나에겐 나의 집이 없었다. 아주 잠시 동안 나를 스쳐 지나간 집만 있을 뿐이었다. “꿈꾸는 집이 있으신가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떠오르는 건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로 욕조가 있는 집, 두 번째로 굴뚝과 벽난로가 있는 집, 세 번째로 넓은 창이 있는 집이다.

 

1. 욕조

욕조가 있는 집에 살고 싶었다.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오래 생각할 수 있는 곳, 어딘가 다치더라도 다 씻어서 흘려보낼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등을 기댈 수 있고, 두 발이 바닥에 붙어 있는 곳, 무릎을 구부려 얼굴을 묻고 몰래 울 수 있는 곳, 내겐 그런 곳이 욕조였다. 욕조가 있는 집에 산 적이 있었다. 아주 어릴 때였다. 보고 싶지 않은 마음 같은 건 물속에 집어넣어놓고 오랫동안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자꾸만 떠다니는 마음 같은 게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마음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신기했다.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마음들은 목욕을 하고 나면 조금 나아지기도 했다.

영화 인셉션에선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이 있다고 했다. 그중 하나는 잠든 사람을 의자에 묶은 후 때가 되면 물이 가득한 욕조에 빠트리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기 위해 욕조에 빠지다니. 욕조에 들어가 꿈을 꾼 적은 있었다. 생각해보니 꿈에서 깨고 싶었던 적이 많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늘 죽음을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굴뚝과 벽난로

벽난로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굴뚝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굴뚝은 환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배웠다. 산타클로스가 지나다니는 길이었다. 나는 굴뚝이 없어서 선물을 받지 못하면 어쩌지 하고 자주 생각했다. 굴뚝은 산타클로스뿐만 아니라 작은 요정들이 지나다니는 곳이었다. 내가 잠을 자고 있을 때 조용히 내려와 도움을 주기도 하고, 장난도 치며 마법을 사용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환상적인 이야기가 좋았다. 언젠가 호그와트에서 연락이 오지 않을까. 그렇다면 해그리드가 굴뚝을 통해 입학통지서를 보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자주 밤을 견뎠다.

안락한 의자에 앉아 모닥불 맡에서 따듯한 차를 마시는 그런 집을 꿈꾸었다. 등을 기댈 수 있는 곳이 많은 집. 어느 바닥에 발을 내려놓더라도, 어느 벽에 가서 몸을 기대더라도 따듯해서 외롭지 않은 그런 집을 꿈꾸었다.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타오르는 불을 보며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고 싶었다. 불씨가 꺼지지 않게 자꾸만 들여다볼 곳이 있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3. 넓은 창

하늘이 잘 보였으면 좋겠다. 가끔 비행기가 보이고, 구름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잘 보이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창이 넓어서 햇빛이 잘 들고, 어둠이 오면 어둠이 잘 드는 집에 살고 싶었다. 이웃집에서 카레 냄새가 흘러 들어오고,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 넓은 창 너머로 비와 눈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 나뭇잎이 떨어져가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집. 새가 어디로 날아가는지 볼 수 있는 넓은 창을 가지고 싶었다. 창 너머로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보고 싶었다.

넓은 창 아래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삶을 가지고 싶어 했다. 창밖으로 사계절이 뚜렷하게 보이고, 그 풍경 아래에서 책을 읽다 잠드는 삶을 가지고 싶어 했다. 겨울엔 눈송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고, 여름엔 매미가 끈질기게 붙어 있는, 무언가가 창밖으로 흔적을 남기고 가는 곳에서 그 흔적을 유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 너무 많이 외롭지 않고,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욕조와 굴뚝과 벽난로가 있는, 넓은 창을 가진 그런 집을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웃고 있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고,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깨고 나서도 그곳을 한참 동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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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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