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들 사이에선 완전히 외향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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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회

어떤 질문은 너무 어려워서 한참을 생각해보게 한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나의 마음에 관해 묻는 질문 또한 종종 대답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가끔은 나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일 텐데 내가 답을 내리지 못하니 상대방이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사랑 받고 자란 것 같아요. 그렇죠?”라는 말에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약간 고민이 되었다. 내가 사랑 받았나? 사랑 받은 것 같긴 한데……. 맞아, 사랑 받았지! 라고 생각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쉽게 반응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질문은 깊게 고민해보게 하지만 어떤 질문은 머릿속에 도착하기도 전에 답이 먼저 튀어나오기도 한다. 나는 친척들 사이에서 질문과 대답 왕이다. 그러니까 친척들 사이에선 완전히 외향인이 된다. 나는 외가, 친가 너나할 것 없이 그들에게 사랑 받으며 자랐다.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이모와 삼촌들이 나를 봐주었고, 근처에 살던 외할머니가 나를 거의 업어 키웠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들에게 사랑 받으며 자랐다고 할 수 있다. 주말이 되면 근교로 나가 산과 바다를 함께 보았고, 제철 음식을 함께 나눠 먹었으며, 계절 축제를 함께 즐겼다. 덕분에 꽃이란 꽃은 다 보았으며, 모르는 산이 없을 정도로 산 이름을 줄줄 외우고 다녔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내가 노래를 부르다 음 이탈이 나도, 춤을 추다 멈추어도, 영어를 모르지만 영어를 안다고 막 내뱉었어도 우리 집에 드디어 천재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며 그들은 아낌없이 내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렇다면 친가는 어떠한가. 짧게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에게는 세 명의 고모가 있다. 큰 고모, 둘째 고모, 막내 고모. 각자 사는 곳도 다르고, 성격도 다를뿐더러 나에게 사랑을 주는 방식 또한 다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막내 고모와 나는 스무 살 정도 나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사실상 고모들 중에서 가장 대화가 잘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막내 고모가 지니고 있는 태도를 좋아한다. 막내 고모는 늘 차분하게 상대방의 이야기를 먼저 들은 다음 자신의 의견을 이어나간다. 기다린다는 것, 경청한다는 것, 차분하게 말한다는 것, 이 세 가지가 쉬워 보일지라도 막상하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살면서 더욱 느끼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는 막내 고모가 지니고 있는 태도를 배우고 싶다. 내가 어리게 느껴질지라도,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더라도 막내 고모는 참고 기다려주었다.

둘째 고모와 나는 전화를 자주하는 편은 아니나 한번 하게 되면 두 시간은 기본으로 하는 것 같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부터 시작해서 다음에 서울에서 보자고 마무리하기까지 그사이에 많은 말들이 서로 오고 간다. 둘째 고모는 세 고모 중에서 가장 요리 솜씨가 뛰어나기도 하다. 고모는 매번 먹고 싶은 것이 없느냐, 서울 가면 무엇을 해다 줄까? 물어보곤 한다. 나는 손수 밥을 차려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어리광을 부리듯이 고모에게 먹고 싶은 것을 말한다. 나는 늘 하나를 말하는데 고모는 늘 다섯 가지가 넘는 음식을 가지고 온다. 다 못 먹는다고 해도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집밥을 먹겠느냐며 많이 먹으라고 한다.

큰 고모는 세 고모 중 가장 따듯한 사람이다. 뭐랄까. 낭만을 아는 사람이랄까? 큰 고모는 글 쓴다고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좀 나가라고 한다. 그래야 글감이 나온다고, 나의 원고까지 걱정해주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이번 4월에는 나가서 꽃도 좀 보고 오라고 야단을 치기도 했다. 행여 서른이 다 된 조카가 꽃도 못 보고 이 봄을 그대로 보낼까봐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큰 고모만 생각하면 아직도 잊지 못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내게 책가방을 선물해주던 순간이다. 이런 순간은 왜 영원히 잊히지 않는 것일까?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카가 학교를 잘 다녔으면 하는 마음에 큰마음을 먹고 책가방을 선물해주었다고 한다. 이십 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나는 앞으로도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고모들은 나의 건강과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매번 전화를 할 때마다 잘 지낸다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도 고모들은 믿지 않는다.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안다. 반대로 내가 고모 잘 지내냐고 질문하면 잘 못 지낸다고 장난을 치며 말하지만 이내 잘 지낸다고 다시 정정한다. 나는 고모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서로의 거짓말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최근 막내 고모 집에 놀러 갔을 때 꽃을 사갔는데 꽃집 주인께서 고모에게 선물하는 조카가 있느냐고 정말로 좋을 것 같다고 말해주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그대로 막내 고모에게 전해주었다. 그러자 막내고모는 우리 집을 되게 화목한 가정으로 봤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농담 삼아 맞다고 우리 집 하나도 화목하지 않은데 그렇지? 라고 되물었다. 이런 장난을 칠 수 있는 사이라는 게 약간은 화목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 고모를 떠올렸다. 고모들이 주는 사랑을 잘 받을 수 있기를,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떠올려볼 수 있기를, 이 사랑이 조금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고 또 바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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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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