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어머니」를 만든 사정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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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회

애초에 나는 자유사니 뭐니 하는 기만적인 단어가 지독히 싫었다. 그것은 수명에 따른 자연사에 비해 말하자면 무조건의 안락사이자 합법적인 자살일 뿐이었다. 그런 단어를 하필이면 어머니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이야.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일이야. 나도 그런 나이가 됐으니까.”

그런 나이라니, 아직 일흔도 안 됐잖아.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이제 충분해. 그만 됐어.”

아무튼 지금 바로 집에 갈게. 그다음에 찬찬히 얘기하자. 이건 이상하잖아, 갑작스럽게. 어쨌든 성급하게 결정하면 안 돼. 내가 집에 갈 때까지 기다려.”

 

어째서인가. 대체 왜…….

하지만 그날 밤늦도록 이어졌던 어머니와의 대화를 나는 와카마쓰 씨와의 업무가 끝날 때까지 다시 떠올리지 않았다. 뇌리에 어른거리는 그 광경을 틀어막고, 곧 오타루 역에 도착하는 열차 창문의 풍경이 밀고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였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관광객에서 시선이 멈췄다. 플랫폼의 기둥이 그 장면을 잘라내고 다시 다른 관광객 일행으로 이어갔다가 또다시 잘라냈다. 자동판매기며 광고 같은 시답잖은 풍경들이 한바탕 시야를 스쳐갔다. 그런 평범함이 추상追想에서 달아나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던 것이다.

 

와카마쓰 씨의 고향집은 역 뒤편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도미오카 성당이라는 작은 교회에서 좀 더 들어간 곳인데, 지도로 본 것보다 급경사의 언덕길이 우리 집 앞 도로의 몇 배는 될 만큼 길게 이어졌다.

나는 역에서부터 와카마쓰 씨와 일체화했지만, 병상의 그 노인도 젊은 시절에는 날마다 이곳을 가뿐하게 오르내렸을 것이라고 약간 숨을 헉헉거리면서 생각했다.

평일의 환한 대낮은 낯선 이방인의 틈입闖入에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내가 실은 와카마쓰 씨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 풍경들은 한순간에 변해버릴 만큼 화들짝 놀라지 않을까.

그 노체老體에 넘쳐흐르던 유소년기의 기억이 이제는 내 몸으로 밀려들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통해 잠시나마 그리운 과거에로 달려가는 것이다.

 

교회는 아담해서 유럽 고딕건축의 정면 입구를 한 부분만 뚝 떼어 가져온 듯한 풍정이었다.

시내는 이미 발아래로 아득하고, 와카마쓰 씨의 고향집은 거기서 걸어서 5분 정도였다.

큼직한 2층짜리 서양식 건물로 지붕은 피아노 건반 뚜껑을 열려다가 그대로 멈춘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적설에 대비한 건축인 모양이었다.

하얀 외벽의 한 귀퉁이에 진한 갈색의 장식도 들어갔고, 처음 지어졌을 때는 번듯하고 세련된 집이라는 평판을 들었을 게 틀림없다.

정원의 커다란 향나무는 손질이 잘 되었고, 현관 앞에는 어린이용 자전거 두 대가 서 있었다.

와카마쓰 씨는 내 귓전에 쉴 새 없이 아아, 하고 그리움에 잠긴 듯한, 미처 말이 되지 못한 소리를 흘렸다. 나는 현재 살고 있는 사람에게 집 안을 좀 보여달라고 협상해볼까요, 라고 제안하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니, 괜찮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주변을 잠시 산책하면서 오타루 공원까지 돌아본 뒤에 빈 택시를 잡아타고 바닷가 절벽 위의 호텔로 이동했다. 내 시야의 영상을 와카마쓰 씨의 아들 부부도 공유하고 있는지 이따금 아버지, 잘됐네요, 집을 둘러봐서. 그렇지요?”라고 말을 건네는 소리가 들렸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바닷가로 내려갔다. 선착장이 있고, 청어구이 정식이며 연어알 덮밥을 내주는 식당이 처마를 맞대고 이어졌다.

아스팔트 주차장을 건너가자 내 발보다 조금 큰 정도의 둥근 돌들이 겹겹이 깔려서 가끔씩 몸이 기우뚱할 때마다 그 돌들이 맞비벼지는 게 발바닥에 느껴졌다.

그리고 온몸을 울리는 거대한 파도 소리…….

파도가 들이치는 바닷가에는 이라는 글자를 조합한 듯한 다리 네 개의 테트라포드가 촘촘히 이어졌다.

수영 가능 구역이 아닌데도 아동용 파란 튜브 하나가 발치에 떨어져 있었다. 그보다 조금 더 앞쪽에 있는 해수욕장에서 흘러온 것이리라.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내내 땀을 흘렸던 나에게는 상쾌했다.

파란 하늘에는 옅은 구름이 금세라도 조금씩 조금씩 소리 없이 뜯겨나갈 것처럼 가로로 길게 뻗쳐 있었다. 그 찢겨져서 뒤집힌 가장자리는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수평선은 부옇게 이내를 피워서 애매하기만 했다.

나는 구름 틈새로 쏟아지는 무수한 빛이 해원海原 전체에 휘황하게 반짝거리며 파도와 함께 밀려오고 밀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와카마쓰 씨에게 그 규모를 전달해주고 싶어서 이따금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그 호흡만은 귀에 들어왔다.

병실에 있는 그에게로 밀려가는 파도는 아마도 과거에서부터 차곡차곡 접히듯이 층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방금 사 온 색종이를 개봉하고 그 속에서 좋아하는 색깔 한 장만 빼내려고 하면 다른 색깔까지 함께 따라 나오는 것처럼 와카마쓰 씨의 기억 속의 파도는 지금 몇 년 간격의 동떨어진 풍경을 연달아 보여주고 있을 게 틀림없다.

파도는 모래사장 바로 앞까지 은밀히 다가와 느닷없이 고개를 쳐들고 덮치듯이 테트라포드에 부딪쳤다가 높직이 깨어지면서 흩어졌다.

분수처럼 튀어오른 비말이 차례차례 파도 속으로 떨어졌다. 그중 몇 개쯤은 장난이라도 치듯이 내 얼굴에까지 날아왔다. 눈이 부셔서 나는 무의식중에 아랫눈꺼풀을 바짝 당기고 있었다.

 

호텔로 가는 외줄기 길은 경사가 급했다. 와카마쓰 씨가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

힘들지? 겨울에는 그 일대가 죄다 하얗게 변해버려. 차도 사륜구동이 아니면 안 된다니까.”

이럴 때는 대화에 응해주는 게 좋다.

저는 괜찮습니다. , 이 근처 사람들은 그렇겠네요. 도시 사람들은 그런 건 생각도 못하지만요.”

가는 길에 오래된 수족관이 있었는데 그 주차장에 서 있는 차량도 사륜구동이 대부분이었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지만 조금 전까지 바라본 바다가 발아래로 쭉쭉 멀어져서 식당 지붕도 내가 서 있던 해변도 이미 세밀화의 일부가 되었다.

내 몸 자체가 커진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호텔은 하얀색의 소쇄한 건물로, 와카마쓰 씨가 가보기를 원했던 곳은 전망 테라스가 딸린, 잔디와 타일 징검돌의 넓은 정원이었다.

평일 오후라서 인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와카마쓰 씨에게 확인한 뒤에 전망이 좋을 만한 자리의 난간 앞에 섰다.

바람은 산기슭에 있을 때보다 더 세차게 불었다. 바닷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저 멀리 조그맣게 등대가 보였다.

난간 너머는 초목으로 뒤덮였고 그 앞은 느닷없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실제로 풀을 밟아 눕히며 나아가면 도도록한 풀덤불 중간쯤부터는 깎아지른 절벽일 터였다. 헤드셋의 AR을 켜서 확인해보았다. 얼룩조릿대, 불가리스 쑥, 꽈리, 돼지풀, 구릿대……라고 다양한 풀의 이름이 표시되었다.

몸을 한껏 내밀어 아래쪽을 들여다보자 까마득히 멀리에서 바위를 덮치는 파도가 보였다.

, 이봐, 조심해!”

와카마쓰 씨가 주의를 줬는데 그 한마디가 기묘하게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시야는 바다와 하늘로 힘차게 양분되었다.

머리 위는 깊고 짙은 파란색이지만 수평선을 향해 그 색깔이 옅어져갔다.

물결이 광대한 해면海面에 자잘한 무늬를 그려냈지만 오히려 바람의 손이 훑고 가면서 생긴 주름 같기도 했다.

사방으로 하얀 파도 끝이 언뜻언뜻 보이고, 어떤 작디작은 물결의 기복에도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와카마쓰 씨는 다시 아아, 하는 탄식을 흘렸을 뿐 더욱더 말이 없어졌다. 그 정적 너머에서 나는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모니터의 작은 창을 애써 쳐다보지 않았다.

짭조름한 바닷물에 눅눅해진 내 이마를 바람이 시원하게 쓰다듬으면서 앞머리를 밀어올렸다. 아마도 내 몸은 와카마쓰 씨의 죽은 아내 옆에 서 있을 터였다.

인생의 마지막에 추억 깊은 장소의 풍경을 응시하는 눈. 이 하늘과 바다가 와카마쓰 씨라는 한 인간의 눈동자에 상으로 맺히는 일은 이제 영원히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내 눈은 다른 또 한 사람의 눈을 싫든 좋든 끌어오고 말았다.

어머니의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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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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