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어머니」를 만든 사정 (5)

페이스북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블로그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링크 복사하기

6 회

하네다에서 오타루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오늘의 업무를 확인했다.

이른바 리얼 아바타로서 일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5…… 아니, 6년 가까이 지났다.

개인 사업자 자격의 계약이고, 그동안 등록 회사는 두 번 바뀌었지만 나는 이 업계에서는 예외일 만큼 오래 붙어 있는 편이다.

요즘 같은 때도 사람을 원하고, 그러면서도 특별한 기능이 필요치 않은 직업 중에서는 최저 수준보다 그나마 보수가 괜찮은 편이다. 사회적으로는 경멸을 당할 때도 있지만, 의뢰자들이 고맙다고 해주는 경우가 많아서 일하는 보람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대부분 금세 그만두고 떠나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버텨내기가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이 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머니가 뒷받침을 해준 덕분이었다.

 

 이번 의뢰자는 86세의 남자로, 수속을 해준 것은 그 아들 부부였다. ‘마지막 효도라고 주문서에 적혀 있었는데 실제로 면담을 해보고 그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병상에 앉아 나를 맞이해준 와카마쓰 씨라는 노인은 광대뼈만 두드러질 만큼 바짝 여위었지만 눈빛에는 아직 힘이 있고 의사도 명료했다. 다만 내 업무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나는 설명을 해주었다.

간단히 말하면 제 몸을 통째로 빌려드리는 일입니다. 제가 장착한 카메라 달린 고글의 영상을 와카마쓰 씨는 이 헤드셋을 쓰고 보시게 될 거예요. 마치 와카마쓰 씨의 몸이 된 것처럼 제 눈을 통해 바라보고 제 귀를 통해 소리를 듣고 제 발을 통해 어디든 돌아다니실 수 있습니다.”

자전거나 지하철로 물건을 배달해주기도 하고, 의뢰자가 갈 수 없는 먼 곳이나 위험한 곳에 다녀오기도 한다. 전염병이 유행하면서 일이 부쩍 많이 들어왔다. 뭔가의 리서치를 의뢰하거나 대신 여행을 해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다녀온 듯한 기분이나마 내고 싶은 사람, 가고 싶은데 병든 몸이라서 갈 수 없는 사람와카마쓰 씨처럼이 적지 않은 것이다. 내가 여행지에서 촬영한 사진을 자신이 찍어 온 것처럼 인터넷에 올린다거나 하는 건 의뢰자의 자유다. 그런 점에 대해서는 내 쪽에 비밀 준수 의무가 있다.

인간 드론인가?”

와카마쓰 씨가 웃으면서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그렇죠, 날지는 못하지만요. 기본적으로는 의뢰자의 지시대로 움직여드리고, 원격으로 조종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 몸과 일체가 되어 돌아다니고 싶다, 현지를 체험하고 싶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외국에서 의뢰해주시는 분도 있고요.”

업무 중에는 완벽하게 의뢰자의 몸이 되어야 하지만, 진기하고 재미있는 체험도 하고 가본 적이 없는 곳에 갔을 때는 현지에서 조금이나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그것도 내가 이 일을 싫어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와카마쓰 씨는 오랜 세월 홋카이도의 오타루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내가 찾아간 오다와라의 노인요양시설에서 지내고 있었다.

죽기 전에라고 그 자신이 분명하게 밝혔다예전에 살던 오타루의 고향집을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그리고 가족끼리 자주 갔던 시내 변두리 절벽 위의 호텔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싶다, 라는 것이었다.

내가 일을 승낙하자 그는 악수를 청했다. 건조한 나무막대가 스윽 다가오는 듯한 동작이었지만 오래도록 입원 중인 사람답게 손바닥 거죽에 섬세한 보드라움이 있었다. 긴 세월 동안 매몰되어 있던 그의 어린 시절이 살이 빠지면서 겉으로 드러난 듯한 감촉이었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사람의 사념 속에서는 과거의 강이 한줄기 흐름이기를 멈추고 한꺼번에 범람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둑이 터진 듯 탄생에서 현재까지의 존재 전체가 몸속에 넘쳐흐른다. 육체에는 그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그리움의 기척이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언젠가 이 세계에서 함께 사라질 것이라면 육체가 기억과 서로 친해지려고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여정 전체를 와카마쓰 씨의 아바타로 돌아다니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가 장시간은 자신의 체력이 감당해내지 못한다고 했기 때문에 목적지를 두 군데로 좁히기로 했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오타루까지는 전차로 한 시간쯤 걸렸다. 홋카이도라고 해도 별반 시원한 것도 아니어서 한낮에는 30도를 넘을 것이라는 날씨 예보였다. 폴로 셔츠에 캐주얼 면바지 차림이었는데도 불과 몇 개 역을 이동하는 사이에 축축하게 땀에 젖었다.

움직이기 시작한 전차의 창가에서 가문비나무 숲이 시야를 스쳐가는 것을 딱히 본다는 것도 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내게 느닷없이 자유사自由死의 의지를 표명했던 날의 일을 되짚었다.

그날, 어머니는 처음으로 내게 한 사람의 의뢰자로서 일을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즈의 가와즈나나다루河津七滝 폭포에 찾아가 자신에게 그 풍경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사쿠야가 어떤 일을 하는지 한번 찬찬히 알아보고 싶어. 돈도 다른 고객과 똑같이 낼게.”

나는 기꺼이 응했다. 어머니가 내 삶의 방식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

왜 가와즈나나다루 폭포냐고 물어봤지만 어머니의 대답은 애매하기만 했다. 단지 폭포를 보고 싶다, 예전에 이즈의 무희라는 책에서 읽었던 게 생각났다, 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책을 좋아하는 명확한 취미를 갖고 있었다. 나는 그 소설 주인공에게 연거푸 덮쳐드는 성욕의 물결에 마치 술에 취한 듯 속이 울렁거렸던 기억밖에 없어서 어느 대목에서 그 폭포가 나왔는지 기억이 희미했다.

그래도 그 전후의 내 일정이 꽉 차 있었기 때문에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거리라는 게 마침 좋았다. 어디에 가느냐는 것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의욕에 차 있었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서 충분히 사전 조사를 하고 일정을 짰다. 기왕이면 아바타로서가 아니라 어머니를 직접 데려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말은 고맙다만 그래서는 의미가 없어, 라고 웃음을 샀다.

 

 아바타로 움직이는 동안에 말동무를 해달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자기 몸인 것처럼 그저 지시만 내리고 대꾸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어머니도 처음에는 나와 동화해서 원격조종을 시도했다. 하지만 아타미에서 신칸센을 내려 특급으로 갈아타는 것을 잊지 말라고 주의를 줬을 때부터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는지 평소의 말투로 돌아왔다. 하지만 애써 말수를 줄이고 있었다.

차창으로 바라본 이즈반도의 풍경은 이제는 수없이 갖고 놀아서 인쇄가 닳아지고 순번이 제각각이 되어버린 카드 같았다.

야자나무가 줄줄이 서 있고 바다가 보이고 민가가 시야를 가렸다가 이즈고원이 가까워질수록 짙은 초록의 나무들로 뒤덮였다. 하지만 그런 순서로 본 게 아닌 것처럼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다른 승객들이 가까이에 있어서 어머니와 소리 내서 대화하기가 조심스러웠다. 어머니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늦봄의 햇살에 반짝거리는 바다 저 건너편으로 오시마가 보였을 때만은 저절로 탄성을 올리며 저거 봐, 보이니?”라고 말을 건넸다.

도쿄에서 두 시간 여를 날아 온 어머니의 침묵은 이제 내 기억 속에 기나긴 여행의 짐꾸러미 같은 무게로 남아 있었다.

거리로 환산되는 침묵이라는 그 생각은 분명 맞는 얘기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156.8킬로미터를 더듬어 오는 동안에 어머니의 침묵은 천천히 변질해갔을 테니까. 그리고 어머니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라는 내 상상은 그 어떤 순간에도 가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