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어머니」를 만든 사정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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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회

그곳은 의외로 평범한 응접실처럼 보였지만, 외부와는 차폐되었고 벽에는 투우를 모티프로 한 피카소의 에칭이 걸려 있었다. 상당히 고색창연하고 얼룩까지 있었다. 최근에 제작한 정교한 복제품인지 20세기에 찍어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헤드셋을 써도 처음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VFAR 방식으로 증강 현실 되는지 아니면 헤드셋 너머로 바라보는 이 공간이 이미 가상으로 재현된 응접실인지, 정말로 구별이 되지 않았다.

검은 가죽소파 앞 테이블에 커피가 놓여 있었다. 그곳에 앉아 마셔보면 구별이 될 터였다.

노자키가 두 사람을 데리고 돌아왔다.

한 사람은 핑크색 얇은 반소매 셔츠를 입은 마흔 살 전후의 호리호리한 남자였다. 햇볕에 그을렸지만 나와는 달리 긴 휴가 중에 여유롭게 시간을 들여 정성껏 태운 듯 윤기 있는 피부였다.

또 한 사람은 감색 정장 차림에 안경을 썼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작은 몸집의 남자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대표 가시와바라라고 합니다.”

햇볕에 그을린 남자 쪽이 흰 눈동자보다 더욱더 하얀 이를 내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악수에 응하면서 윈드서핑이라도 즐기고 왔나, 하는 눈부신 상상이 저절로 떠올랐다.

이어서 옆의 남자를 소개해주었다.

우리 회사 일을 도와주시는 나카오 씨예요.”

나카오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날씨가 꽤 덥군요. 도와드린다고 해봤자 저는 여기 나와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뿐이지요.”

그는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온화하게 웃었다. 침착한 거동이었지만 이쪽의 인간성을 들여다보는 듯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어떤 일을 돕고 있는지 선뜻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아마 나처럼 VF 제작을 의뢰하러 온 사람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그도 악수를 청해서 응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나는 흠칫해서 손을 거둬들였다. 실제로는 미처 거둬들이지 못해 그의 손을 살짝 잡았지만 느껴지는 감촉이 전혀 없었다.

, 나는 VF예요. 실은 4년 전에 강에서 익사했죠. 우리 딸이 이 회사에 의뢰해 나를 제작해줬어요.”

나는 할말을 잃고 멍해져버렸다. ‘실제와 똑같다는 건 요즘에는 CG든 뭐든 드물지도 않지만 나카오라고 이름을 밝힌 이 VF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그게 내 인지 시스템의 어디를 어떻게 공략했는지는 알 수 없다. 과장이 아니라 나한테는 정말로 살아 있는 인간으로만 보였다. 옆의 가시와바라와 비교해도 질감에 전혀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도움을 청하듯이 나는 노자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별반 자랑스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질문해보세요라고 상냥하게 권했다. 아마 VF를 대하는 그녀의 태연한 모습도 나카오를 더욱더 인간처럼 보이게 하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이마에 살짝 땀이 난 것을 보고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시선을 기다린 것처럼 눈앞에서 조용히 땀이 방울져 흐르더니 관자놀이쯤에서 사라졌다. 그 눅눅한 광택을 나카오는 가려운 듯 두어 번 긁적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의 발밑에는 우리와 똑같은 각도와 똑같은 길이의 그림자까지 길게 나와 있었다.

, 발도 틀림없이 달려 있답니다.”

나카오가 유쾌하게 웃으면서 뱃속에서 울리는 듯한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놀란 얼굴은 하지 마시고요.”

, 미안합니다. 너무 리얼해서…….”

나카오 씨는 실제로 돈도 많이 버는 분이에요.”

옆에서 노자키가 말했다.

돈을 번다고요?”

이게 내 업무거든요.”

나카오가 직접 말을 받았다.

여기서 이렇게 나 자신을 샘플로 삼아 새로 오신 고객님들께 VF에 대해 설명해드리는 일이지요. 거기에 데이터도 제공하고요. 월급은 아내와 대학생인 외동딸이 받아갑니다. 내가 일찍 죽는 바람에 무척 딱하게 됐으니까 뭐,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지요.”

그렇게 말하는 나카오의 눈빛에 슬픔의 감정이 서렸다. 게다가 그는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앞에 라는 단어로 한 호흡 쉬어가기까지 했다.

오히려 내가 완성도 떨어지는 VF처럼 불명료한 표정으로 멍해져 있었다. ‘말을 건네면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도 해줍니다. 다만 마음은 없어요라고 노자키가 처음에 설명해준 얘기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이른바 AI(인공지능), 일반적인 거동과 함께 그가 하는 말들은 생전의 데이터와 이곳에서 신규 고객을 수십 수백 명씩 접하면서 나눈 대화를 통해 학습한 성과일 것이다. 다만 그의 업무는 상품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이다. 실제로 이런 자리에서 주고받는 대화란 대부분 거기서 거기로 뻔할 터였다.

우선 생각해보면, 가시와바라와 노자키의 언동은 내가 어떤 고객이든 별반 달라질 것도 없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들려주는 설명일 뿐이다. 그들도 일일이 내 마음속을 읽거나 뭔가를 감지해가면서 말하는 게 아니라 단지 통사론을 바탕으로대응했을 게 틀림없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분명 어머님도 나처럼 VF로서 훌륭하게 재생하실 겁니다. 우리 딸은요, 나를 재회했을 때 정말로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어요. 물론 나도 울었죠, 진심으로.”

나는 나카오의 모습에 어머니를 겹쳐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붙잡을 수 없는, 쉽게 깨져버리는 덧없는 환영이었다. 그래도 어머니와 다시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은 내 가슴속을 고통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열기로 가득 채웠다.

다 알면서 속아 넘어가는 것도 속았다고 말하는 걸까. 만일 그걸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나는 절대적인 행복 따위, 꿈꾸지 않는다. 단지 현재보다 상대적으로 행복하기만 하다면 남은 인생은 이를 악물고서라도 속으면서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뒤로 소파에 앉아 상담을 이어갔지만 대부분 건성으로 흘려들어서 설명의 반쯤밖에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헤드셋을 벗자마자 VF 나카오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내 안에 남겨진 사람을 만났다는 실감은 오히려 대표 가시와바라보다 나카오 쪽이 훨씬 더 강했다.

실제로 VF를 건네드린 뒤에도 이시카와 씨 스스로 어머님을 완성해주실 필요가 있어요. 기계 학습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오랫동안, 그리고 자주 대화를 나눠주시면 조금씩 이질감이 줄어들면서 완성도가 높아질 겁니다.”

그러는 동안에 아무래도 시들해져서 학습을 그만두게 되지는 않을까요?”

아뇨, 그 반대예요. 고객님들이 모두 감동하시거든요. 가족의 VF를 원하는 분들은 질병으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거나 사별한 케이스가 많으니까요. 조금씩 조금씩 예전과 똑같은 커뮤니케이션이 회복되는 것에서 큰 기쁨을 느끼게 되지요. 실제로 그러실 만도 해요. 병이 회복되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느낌이 들 테니까요. 조금 다르다고 느껴지는 점들은 저희 쪽에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개인적으로 이 일을 하면서 제가 가장 감동을 받는 것도 바로 그런 때랍니다.”

…….”

살아 있는 몸을 가진 인간이란 매우 복합적인 존재지만, 마음 또한 결국 물리적인 구조니까요. VF는 커뮤니케이션 중에는 본인 그 자체에 한없이 가깝습니다.”

마음이 없는데도 그렇다는 건가요?”

, 말씀은 그렇게 드렸지만, 역시나 느껴지거든요. , 그보다 마음이란 게 무엇일까요?”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본심을 토로하는 듯한 투로 말했다. 그리고 그건 살아 있는 몸을 가진 인간답게 완전히 모순된 것이었다.

결국 나는 그날 안에 어머니의 VF 제작을 정식으로 주문했다.

견적으로 3백만 엔이라는 금액이 제시되었다. 이전의 나였다면 도저히 손도 내밀지 못했겠지만 어머니가 남겨준 생명보험금으로 어떻게든 마련해볼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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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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