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장난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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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회

말장난에서는 이렇게 의미(기의記意)보다도 표현(기표記表)이 중요하며, 일상적인 언어활동에서의 목적과 수단의 관계가 전도되는데, 이런 일은 진지한 인간관계에서는 대수롭게 생각할 것이 못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죠. 의사소통, 감정표현, 정보전달이 말하자면 언어생활에서 주식主食과 같은 것이며 그런 말장난은 양념이나 군것질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문학은 말장난 그 자체는 아니지만 이런 말장난과 깊은 관계가 있는 언어활동입니다. 그렇다면 문학은 결국 군것질이나 사치품에 지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말장난이 때로는 우리를 희한한 세계로 안내하듯이(나는 아주 오래전에 다음과 같은 어린아이와 그 어머니 사이의 대화를 들은 일이 있습니다. “엄마, 말은 무슨 말을 해? 저희들끼리 하는 말이 따로 있단다. 그럼, 그건 말말이야? 나도 말말해보고 싶어”), 문학작품은 표현 그 자체에 대한 배려(이제 우리는 그것을 언어유희라고 불러보기로 하죠)에 힘입어 새로운 인식과 감성과 상상의 길을 열어보입니다. 그런 점을 더 잘 알기 위해서 우선 우리는 언어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그 안에서 문학적 언어유희는 어떤 지위를 차지하는지 로만 야콥슨의 설명에 의거해서 잠시 살펴보기로 합시다.

 

 

의사소통의 여섯 가지 요소

 

의사소통은 말이건 글이건 간에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기만 하면 성립되는 것 같이 생각하기가 일쑤입니다. 그러나 발신자, 수신자, 메시지라는 세 가지 요소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가령 지금의 우리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내가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 문학에 관한 것이라는 맥락에 대한 양해가 우리 사이에 없다면 나의 메시지는 무의미할 것입니다. 또 가령 커다란 소음이 터지거나 여러분이 딴생각에 빠져서 여러분과 나 사이의 물리적, 심리적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그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문학과 내가 생각하는 문학이 전혀 다른 경우, 즉 코드가 맞지 않는 경우에도 나의 메시지는 여러분에게 바람직하게 전달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나는 자주 내 생각에는 문학은 이러이러한 것인데 여러분도 동의하시죠?”라는 뜻의 말을 하고 그것을 내 이야기의 성립요건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방금 한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겠죠. “의사소통은 발신자, 수신자, 메시지, 맥락, 접촉, 코드의 여섯 가지 요소가 두루 갖추어질 때 원만히 이루어진다.” 한데 이번에는 이러한 의사소통의 조건이 아니라, 전달하려는 내용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그 여섯 가지의 요소에 고루 중점重點이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메시지는 발신자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고(가령 사랑의 고백), 다른 것은 수신자에게 명령이나 요청을 하는 데 주안이 있습니다(“아침에 일찍 일어나라”). 또 통신을 할 때에는 상호 간의 접촉이 잘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 중요한 일이 됩니다(“여보세요, 내 말 잘 들리죠?”). 이런 식으로 메시지의 기능은 위에서 말한 여섯 가지 요소 중의 어느 한 가지에 편중되니까, 그중에는 메시지 그 자체에 대해서 주목을 끌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며, 야콥슨은 그런 경우를 시적 기능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앞서 살펴본 말장난들은 언어의 시적 기능에 속하는 것이며, 야콥슨 자신은 재미있는 한 가지 예로서 “I like Ike”라는 표현을 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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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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