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라는 이름의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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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회

나는 이러한 인공적 구성물의 예를 무한히 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동어반복 같은 이야기지만 인간이 생각하고 그 생각을 바탕 삼아 만드는 모든 것이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왜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야기를 빙빙 돌리느냐?’는 여러분의 불만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군요. ,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문학의 경우를 두고 살펴보죠. 다만 한 가지 변명을 해두려고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문학이야기를 직접 하지 않은 것은 인간의 다른 활동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창작인데, 문학은 그 극점極點에 위치한 창작행위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인공적 구성물은 그것이 역사이건 사진 찍기이건 또는 개인적 인식이건 간에 모두 실재하는 어떤 특정한 사실이나 사물을 떠나서 있을 수 없습니다. , 그런 구성물에는 지시대상指示對象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각자가 돌을 볼 때 그것을 제각기 무용지물로, 석재로, 수석으로 또는 냉정한 사람의 상징으로 아무리 다르게 본다고 해도 그 돌은 우리의 밖에 인식의 대상으로 엄연히 존재하고 우리는 그 실재하는 돌을 가리키면서 말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허깨비를 보는 사람의 눈에도 잠시간이나마 허깨비는 사실로서 존재합니다. 그러나 문학작품이 만들어내는 구성물의 가장 큰 특징은 이런 객관적 지시대상이 작품의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잠깐 언급한 허구라는 말을 써보아도 좋을 것 같군요. 현실에는 없고 오로지 상상이 만들어낸 가공의 구성물이라는 뜻에서 말이죠. 가령 여러분은 성춘향이라는 여자의 실체에 관해서 들어본 일이 있나요? 우리에게 그렇게 낯익은 춘향은 춘향전이라는 이야기책의 외부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햄릿 역시 햄릿이라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속에서만 살고 있으며, 그 희곡을 담은 책들을 모두 불태워버리면 햄릿은 세상에서 없어지고 말 겁니다. 또 한용운이 읊고 우리들이 모두 숭상하는 그 그리운 님도 님의 침묵이라는 한 권의 시집이나 그 시를 암송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허상입니다.

 

 

역사와 역사적 허구

 

그러나 여러분들 중에는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또 있어서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작품에는, 특히 서사시나 역사소설에는 분명히 지시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이나 임꺽정을 주인공으로 다룬 소설들에서 그 인물이 가공의 인물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겠죠. 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19세기 초에 나폴레옹이 기도한 유럽 제패라는 역사적 사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가서 생각해봅시다. 그런 작품들은 역사적 기록을 재생하거나 혹은 역사책을 알기 쉽게 풀이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일까요? 혹은 그런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뜻이 깊다고 생각되는 일에 대해서 우리의 더욱 깊은 인식을 촉구하려고 도리어 가짜 이야기를 꾸민 것은 아닐까요? 달리 말하면 우리가 기록을 통해서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역사소설에 있어서는 뜻깊은 허구를 만들기 위한 한낱 구실로 이용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미 많은 역사소설을 읽어본 여러분은 나와 똑같이 이 후자의 견해가 옳다고 대답할 겁니다. 더 극단적으로 말해보자면 서사시나 역사소설에서는 외견상의 지시대상이 허구화되는 것이죠. 주인공이 이순신이나 임꺽정과 같은 실재하는 인물의 경우에도 우리는 작품에 나타나는 그들의 그때그때의 심리, 행동, 표정, 언어, 인간관계를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전쟁과 평화의 경우에는 객관적 지시대상들은 다만 배경을 이룰 뿐이며 전면에 나타나는 것은 안드레이 보르콘스키나 피에르 베즈호프와 같은 가공의 인물들의 체험입니다. 심지어 프랑스 중세기의 롤랑의 노래라는 서사시를 보면 기독교 정신과 기사도를 강조하기 위해서 역사적 사실을 터무니없이 왜곡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따라서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역사소설에서는 주제가 된 지시대상(실재의 인물이나 사건)조차 작가의 상상에 의해 변형되어서, 검증될 수 있는 존재로서의 객관성을 잃고, 지시대상이 없는 작품과 마찬가지로 오직 종이 위에서만 존재하게 된다고요. 그런 사정을 반증反證하기 위해서는 한번 거꾸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군요. 여러분은 혹시 어떤 역사가가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의 실상을 알기 위해서 서사시나 소설에 의지하는 경우가 있을 것 같은가요? 사실과 전거典據를 판별하는 것으로부터 그 연구를 시작해야 할 역사가가 그런 짓을 하다가는 당장에 역사가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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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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