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대상과 인식―역사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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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회

여러분 모두가 알다시피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 다르게 역사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사란 무엇인가요? 이것은 엄청난 질문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이 있기 전에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주어진 것’(소여所與)이 이미 있었고, 역사란 어떤 의미에서는 이 자연적 소여에 대해서 인간이 작용을 가해온 과정이라고 말해서 좋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자연에 의지하면서도 자연에 변화를 가해왔습니다. 불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광물을 캐내고 드디어 오늘날에는 원자력과 우주탐사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의 소여에 대한 작용, 그리고 그 작용의 축적과 변화만을 두고 역사의 전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아주 오래된 그 옛날부터 인간은 자연만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만든 사물들과 제도를 또한 그의 소여로 가져왔습니다. 이와 아울러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소여는 보다 앞서 살았거나 와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보다 정확히 말하면, 역사란 인간이 자연과,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유형무형의 산물들과, 인간 자신이라는 세 가지 소여에 어떻게 작용해왔느냐는 것을 기록하고 알아보려는 지적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엄청난 것들을 어떻게 모두 살피고 기록할 수가 있을까요? 또 모두 샅샅이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요? 가령 나는 지금 여러분이라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문학이야기를 하면서 작용을 가하려고 하는데 역사가는 그것에 주목해줄까요? 또 여러분은 집에 가면 필경 컴퓨터라는 산물에 작용을 가해서 게임을 하거나 채팅을 할 수도 있겠는데, 그것은 역사적 사실로 기록될까요? 과대망상증에 걸리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역사가가 가령 나폴레옹에 관해서 말할 때처럼 아무리 개인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해도 그것은 그 개인의 행위나 사상이 어떤 집단 내지는 인류 전체의 생존에 큰 영향을 주는 사건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달리 말하면 역사가는 개인적이건 사회적이건 간에 중요한 사건으로 생각되는 소여들만을 선택하면서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일종의 꾸민 이야기지요.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사람들은 역사란 엄연히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을 다루는 학문인데 그것을 꾸민 이야기라니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그러나 더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사실과 판단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죠. 역사 서술은 무수한 사실들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서 그대로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입장에서 그것들 중에서 취사선택하고 그 사이에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행위입니다. 한데 사실의 취사선택이나 인과관계의 설정은 역사를 생각하는 사람의 견지에 따라서 다릅니다. 유물사관, 실증사관, 진보사관, 민족사관, 식민지사관 따위의 많은 사관이 있어서, 그런 서로 다른 사관에 따라 동일한 현상이나 사건이 정반대로 해석되는 수가 얼마든지 있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터입니다. 비근한 예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에 대해서 한 짓을 두고 어떤 일본사람들은 한국의 근대화에 공헌했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대부분의 한국사람은 그 일을 수탈과 억압의 역사로 보고 있는 것이 그런 경우입니다. 또 정치사, 경제사, 사상사와 같이 개별적 역사에 있어서는 역점力點을 두는 인물이나 사건이 전혀 다르죠. 가령 공자나 플라톤은 사상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존재이지만, 경제사에서는 크게 언급되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의 현실인식

 

우리들 개개인의 현실인식도 이와 다름없습니다. 우리의 의식 이전의 세계는 구약성서의 첫머리에 기술된 것처럼 모든 것이 분화分化되지 않은 곤죽 같은 혼돈일 것입니다. 이런 본래의 상태는 우리가 지독하게 당황하거나 의식이 몽롱하거나 환각에 사로잡힐 때 어느 정도 느끼게 되는 수가 있죠. 그런 경우에서는 우리는 자아를 상실하고 스스로 사물이 되어 사물들의 한가운데로 빠져드는 셈입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그런 곤죽 같은 사물들 속에 자신도 곤죽처럼 섞여 사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을 분간하고 그것에 이름과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가령 보석과 돌을 구별하는 따위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사물 그 자체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인간화하는 셈인데, 이 인간화의 작업에는 아무런 객관적 기준도 없습니다. 어떤 보석을 가장 소중히 여기느냐는 것은 개인과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다릅니다. 심지어 속세를 떠난 고승高僧에게는 우리가 보석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도 한 조각의 돌이 더 귀중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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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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