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어두운 빛: 고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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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회

유럽인 중에 처음 고무를 본 사람은 다름 아닌 콜럼버스였다. 그는 1495년에 두 번째로 아메리카에 갔을 때 에스파뇰라 섬의 인디언들이 고무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았다. 이 고무공이 어찌나 높이 튀어 오르는지 그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후일 이 이상한 물질의 정체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관찰한 사람은 샤를마리 드 라 콩다민이라는 천문지리학자였다. 1735년에 그는 남아메리카 정글을 탐험하다가 에콰도르에서 원주민들이 하얀 고무 수액을 모아 연기를 쐰 다음 여러 다양한 모양의 물건들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서 유럽에 보고했다. 그 지역 사람들은 이 나무를 카우축caoutchouc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눈물 흘리는 나무라는 뜻이다. 이 말은 현재에도 프랑스어에서 고무를 가리키는 말로 그대로 쓰인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18세기에 고무가 연필 지우개로 쓸모가 있는 것을 알아내고는 문질러 지우는 물건이라는 의미로 러버rubber라고 불렀다. 18세기만 해도 고무는 기껏해야 신기한 고무공이나 지우개 이상의 용도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부터 고무의 용도는 무한정 확대되기 시작한다.

19세기에는 고무를 이용한 다양한 제품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고무 덧신 산업이 대표적이다.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고무 수액을 발에 직접 붓는 방식으로 덧신을 만들었는데, 이를 응용하여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고무 덧신을 대량으로 만드는 산업이 발전했다. 스코틀랜드인인 맥킨토시는 천에 고무 수액을 입힌 방수 옷감을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이런 레인코트를 매킨토시 혹은 단순히 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런 초기 제품들은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천연고무는 기온이 내려가면 딱딱하게 굳어서 탄성을 잃고, 기온이 올라가면 끈적거리는 데다가 역한 냄새가 났다. 그러니 고무 덧신은 바깥의 추운 날씨에서는 딱딱하게 굳어서 발이 아프게 되고 따뜻한 실내로 들어오면 끈적끈적 녹아서 때로는 벗기 힘들 지경이었다. 천연고무의 이런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해결책을 찾아낸 사람은 찰스 굿이어라는 발명가 겸 사업가였다. 그는 높은 기온에서 고무가 풀처럼 녹아버리는 이유는 수분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수분을 없애기 위해 고무 수지에 여러 물질을 첨가하는 실험을 거듭했다. 수많은 실패 끝에 1839년에 마침내 찾아낸 해결책은 황가루를 첨가하고 가열하는 소위 가황 처리법vulcanization이었다. 이렇게 처리된 고무는 온도와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강도와 탄성을 유지했다. 이 이후 고무의 사용 가능성은 거의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 이 절의 내용은 다음 글에 소개한 바 있다. 주경철, 세계사 새로 보기 : 고무, 주간조선2084, 2009. 12. 14.

** 그렇지만 정작 굿이어 자신은 발명에만 성공했지 특허를 확보하는 데에 서툴러서 평생 소송에 시달렸고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하다가 결국 빚더미 속에서 죽었다. 그는 2백만 달러(현재 가치로는 5천만 달러에 상응한다고 한다)를 벌었지만 그 돈은 모두 변호사 비용으로 탕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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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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