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회
여기까지가 돈 후안이 난봉을 피우는 과정이라면 극의 종반부는 그가 신의 처벌을 받는 과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지러운 이 세상을 돈 후안이 ‘욕정의 불’로 더욱 어지럽혀놓았으니, ‘지옥 불’의 고통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날 그는 예전에 그가 칼로 죽인 돈 곤살로의 무덤 옆을 지나게 되었는데, 거기에 돈 곤살로의 석상이 서 있고 그 비문에 “여기 가장 충성스러운 기사가 어느 배신자를 향한 신의 복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새겨진 것을 본다. 돈 후안은 석상의 수염을 잡아당기면서 조롱하는 뜻으로 석상에게 저녁 식사에 오라고 초대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음 날 저녁에 진짜로 석상이 찾아온 것이다! 석상은 그다음 날 저녁 식사를 자신이 대접하겠다고 제안하는데, 돈 후안은 공포에 떨면서도 명예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스페인 기사답게 용감히 이 초대를 수락한다.
다음 날 찾아온 돈 후안에게 석상은 악수를 청한다. 석상의 손을 잡자 돈 후안의 몸에 불이 붙는다. 그는 마지막으로 회개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지만 석상은 이를 거부한다. 늘 “아직 시간은 많다네” 하고 말해왔지만, 종말에 이르러 그에게는 회개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결국 돈 후안은 지옥으로 떨어진다. 평생 남을 속인 자가 최후에는 석상에게 속임을 당한 것이다.
석상은 신의 대리인이다. 세상의 질서가 어지럽혀져 있고, 사랑은 다만 거짓된 말장난과 욕정으로 타락해 있지만 이 세상의 왕들은 그것을 바로잡을 힘이 없다. 최후에 질서를 복구하는 것은 오직 신의 힘뿐이다. 신법神法의 힘으로 국법國法을 바로 세우고, 신의 사랑으로 인간 세계의 뒤틀린 사랑을 바로잡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당시 타락한 사회에 대한 종교적 경고의 의미를 띤다.
그러나 사람들이 저자의 원래 의도를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돈 후안을 천벌 받아 마땅한 악인으로 비난만 하는 게 아니라 내심 ‘남자다운 멋진 인간’으로 동경할 가능성이 있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나쁜 남자’에 대한 동경이 그와 유사하다. 돈 후안은 분명 신의 징벌이 따르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는 신의 뜻에 도전하면서까지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추구한다. 설사 지옥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자신의 욕구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돈 후안은 개인의 자유를 극단으로 옹호하는 영웅의 면모를 지닌다고 볼 수도 있다. 후대의 작가들은 돈 후안을 다양하게 해석하여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냈다. 때로는 시대의 구속을 거부하는 반항아로, 때로는 시대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는 희생자로 변주되며 돈 후안은 불멸의 신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