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핀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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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회

식목일 날 태극기를 다는 것은 어떨까?

내가 꽃집이나 조경 사업을 했다면 식목일 날 태극기를 달았을 것이다. 식목일 날 태극기 다는 것이 크게 법에 저촉될 것 같지는 않다. 나무 사업으로 밥 먹고사는 사람이 나무 심는 날이 기뻐서 태극기 다는데 그게 뭐 그리 큰 죄가 되겠는가. 설사 법에 위반된다 해도, 나는 태극기를 달고 딱 일 년에 한 번씩만 봐달라며 애교를 부렸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국토에 나무 심는 날인 식목일은 태극기를 달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식목일은 참 미래지향적인 날이다. 나무 심으며 공간의 미래를 그려보는 날이다. 나무가 커서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켜줄 것인가.

계절마다 순환하며 나무들이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산사태나 수해는 잘 막아줄 수 있을까. 여름날 그늘은 한 가족이 쉴 만큼 충분할까. 아이들에게 따줄 열매들은 햇볕을 잘 받아 옹골지게 여물까. 새들의 노랫소리와 바람이 지나는 소리는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무를 심다가 자신의 훗날을 그려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설계해보기도 하는 날이 식목일 같다.

온수철물점 앞을 지나는데 꽃향기가 발목을 잡았다. 대나무 빗자루, 물푸레나무 도낏자루, 각종 연장 손잡이 등의 나무만 있는 철물점에서 난데없는 달콤한 꽃향기라니. 꽃향기의 진원지를 단박에 찾았다. 철물점 물건들을 가게 문밖에 진열해놓은 한쪽에 어른 키만 한 묘목들이 서 있었다. 묘목들은 마대 자루에 몇 그루씩 담겨 있기도 했고 낱개로 서 있기도 했다. 낱개로 서 있는 묘목들은 분을 뜬 뿌리가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다.

코로 꽃향기를 당겨, 폐에 사려 말며 꽃 핀 묘목 쪽으로 다가갔다. 홍매화. 꽃 핀 묘목은 회포대 종이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몸의 부위 중 코끝을 맨 앞에 세워 나무에 접했다. 꽃향기는 독할 정도로 간절했고 빛깔은 불안했다. 불안한 꽃. 불안하기는 홍매화 옆 청매화도, 보리수나무의 연둣빛 새순도 마찬가지였다.

나무장수에게 물어보니 충청도에서 온 묘목들이라고 했다. 트럭에 누운 채 실려 오며 묘목들은 얼마나 불안했을까. 편안하게 서 있지 못하고 불안하게 누워야 했던 묘목들의 기구한 운명에 심적으로 나마 위로를 전했다.

이 대추나무는 얼마요?”

오천 원인데요.”

봉고차 한 대가 서고 나무처럼 군살이 없는 아저씨가 내려 나무를 골랐다. 아저씨는 대추나무 세 그루와 단감나무 두 그루를 샀다.

이어 이름표를 보며 밤나무와 보리수나무도 샀다.

우리는 보리수나무를 파리똥나무라고 하는데.”

형씨 고향이 전라도죠.”

경기도인데.”

나무 사는 것을 보고 구경 온 내 또래 남자와 말을 나누며 나름대로 흥정 분위기를 돋우었다.

아저씨, 조율이시(대추···)인데 배나무도 한 그루 사요.

그러면 차례 지낼 때 걱정 없잖아요.”

나는 나무들이 빨리 팔려가 평생 살 땅에 자리 잡기를 바라며 나무 사러 온 아저씨를 부추기었다.

내 또래 구경꾼도 배꽃만 한 꽃도 없다며 거들었다. 나무 사러 온 아저씨는 내친김에 다 사자며 배나무도 샀다. 나무장수는 묘목들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며 접붙인 밑부분까지만 땅에 묻는 거라고 나무 심는 법을 일러주었다.

나는 뿌리 뽑힌 채 거리에서 꽃 핀 매화나무가 불쌍해, 향기 하면 매화인데 한 그루 사라고 마치 내가 나무장수나 되는 듯이 아저씨를 꼬드겼다.

덤으로 하나 더 주소.”

우리나라 사람은 하나 더 주면 꼭 한 개 더 달라고 한다니까요.”

그럼 외국인들한테만 팔면 되겠네.”

십여만 원어치 나무를 사고 덤으로 묘목 두 개를 얻은 아저씨가 봉고차에 올랐다. 심을 곳이 있다면 내가 당장 사고 싶은, 꽃 핀 매화나무를 아저씨는 끝내 사지 않았다.

꽃 핀 매화나무가 팔리지 않아 아쉬워하며 자리를 떴다. 코끝에 매달리는 매화 향을 뿌리치며 담배를 물었다. 나무에 대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잘못 본 것 아니냐. 사각기둥 가지에 꽃이 피었다니.”

고등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칠 때였다. 한 학생이 개나리에 대해 시를 써 왔는데사각기둥 가지란 시구절이 있었다. 내가 각진 나무가 어디 있냐며 의문을 제기하자 학생은 분명 보았다고 했다. 퇴근길에 교정에 핀 개나리를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꽃 핀 가지들은 다 사각기둥이었다. 각진 나뭇가지가 있음을 어린 학생의 눈을 통하여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꽃 핀 매화나무를 보며 느꼈던 연민을 애써 지워보려고 했다. 그러자 나무에 대한 유쾌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대학 갔더니 영어로 수업을 하는데요, 외국인 교수가 장미rose가 뭐냐고 물어보는데 제가 영어 실력이 없어서 코nose로 알아듣고 코를 가리켰더니 학생들이 다 웃고, 그날 망신 톡톡히 당했어요.”

웃다니, 너는 시 잘 써 특기생으로 들어갔는데, 장미는 코라고 대답했으니, 장미는 향기라니, 그게 얼마나 시적인 대답이냐!”

모교를 찾아온 졸업생의 말과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의 명해석을 떠올리자 기분이 조금은 환기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소사나무 분재 두 주와 제라늄 화분에 물을 주었다. 제라늄은 겨울을 잘 견뎌 싱싱했다. 소사나무 분재는 한 주는 죽고 한 주는 절반 정도만 살아 있는 상태였다.

작년 가을. 나는 어머니 병구완을 하며 병원에서 보냈다. 정신없이 병원 생활을 하다가 깜빡 분재를 잊었다. 가을에 단풍 들 기회를 나무들에게 주지 못했다. 소사나무는 가을에 단풍 들고 겨울에 성장을 멈춰야 한다. 그런데 방 안의 온도가 내려가지 않아 소사나무는 낙엽을 떨어뜨리지 못했다.

후에 집으로 돌아와 그때까지 푸른 나무를 보고 잘못되었음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겨울에 갑자기 추운 곳에 내놓아 나무를 얼릴 수도 없고 난감해하는 사이 나무들은 죽어갔다. 나는 나무들이 살아난다면 산에 옮겨주거나 전문가에게 치료를 부탁하기로 맘먹으며 물을 주었다.

책상에 앉아 철물점 앞에서 만났던 매화나무에 대해 글을 쓰는데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종잇장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컴퓨터 모니터에 부착된 서류 걸이대에 걸어놓은 나무 십자가가 내는 소리였다.

나무 십자가가 흔들리며 서류 걸이대에 집어놓은 메모장을 쳤다.

어머니가 운명할 때 몸에 지니고 있었던 나무 십자가가 글자를 칠 때마다 소리를 냈다. 신경이 쓰여 메모장에 종이 몇 장을 포개 집어놓자 나무 십자가는 흔들리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나는 인생도 길거리에서 핀 매화처럼 쓸쓸히 지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문장을 쳤다. 그러자, 태어나 금줄에 솔가지를 달고,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산소로 호흡을 하며 살다가, 나무 옷을 입고 땅속에 묻히는 우리는 나무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란 생각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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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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