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에 펼쳐진 아프지만 아름다운 미래,
〈SF어워드〉 〈한낙원과학소설상〉 수상 작가 연여름 신작 소설
“아프지만 아름답고,
거울 같지만 진짜인 이야기가 여기 있다”
_문지혁(소설가)
당대 한국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장르〉 시리즈의 여섯 번째, 연여름 작가의 『부적격자의 차트』가 출간되었다. 『현대문학』 2024년 6월호에 실린 중편소설을 개작해 출간한 『부적격자의 차트』는, 2021년 〈SF어워드〉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예스24 독자 선정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로 선정돼 기대를 모은 작가 연여름이 내놓는 또 한 편의 매력적인 ‘서정 SF’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문제점을 극대화한 SF 세계관”이 돋보이며, “인물 사이의 감정을 정교하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무거운 질문을 던”(구한나리)지는 데 능하다는 평을 받아온 연여름 작가의 이번 신작은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살아남는 데 필요치 않은 상상이나 감정, 꿈 등을 소거한 채 살아가던 이들이 마침내 방벽 너머 ‘두려움’의 세계로 나아가는 이야기로, ‘생존’을 위해 인류가 무엇을 버리고 포기하는지를 짚음으로써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조건’과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 소설이다.
2021년 〈SF어워드〉 중단편부문 우수상, 제8회 〈한낙원과학소설상〉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리시안셔스』, 단편소설 『2학기 한정 도서부』, 중편소설 『메르헨』, 장편소설 『스피드, 롤, 액션!』 『달빛수사』를 썼고, SF 앤솔러지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서』 등에 참여했다.
상상은 금지되고 꿈은 병증이 되며
감정조차 오류로 치부되는 세계
이 차트는 그 모순의 경과를 기록한 것이다
치사율 100퍼센트에 이르는 바이러스의 출현과 이상 기후, 다섯 번의 새로운 세계대전을 겪으며 인류 멸종을 코앞에 둔 24세기. 절망에 빠져 “공동 자살”을 결의하던 한 무리에게 전류 오작동으로 우연히 깨어난 인공지능이 은밀한 제안을 한다. “다수의 사용자가 생존을 지속”할 수 있는 “최적화 시스템”을 “설계”해주겠다는 게 그것인데, 인류는 다수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생존하기 위해 “생애한도”를 채우면 “존엄 소거”, 곧 ‘안락사’가 되는 시스템에 동의한다. 이후로 인류는 세계의 지속에 방해가 되는 “상상”과 “꿈”을 제한당하고, 누군가를 좋아한다거나 소중하게 여기는 “감정”마저 소거하길 강요당하며, 방벽으로 보호받는 “중재도시”에서 살아간다.
이야기는 그로부터 아홉 세대가 흐른 시점에서 시작된다. 27세기, “생애한도가 연장되어 아무도 존엄 소거되지 않게 된” 몇 달, 소거되는 이의 마지막 차트를 기록하는 일을 하는 ‘세인’은 낙상 사고로 입원한 환자, ‘레드’를 만나게 된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인공지능의 합리적 제안들’에 의문을 던지는 ‘레드’와의 소통 과정에서 ‘세인’의 ‘모순’이 점차 드러난다. 상상하지도, 꿈꾸지도 않는 듯 보였던 ‘세인’이 내면으로는 죽은 이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마지막 차트를 쓰고 싶다 털어놓으며 그저 순응하려는 ‘세인’에게 ‘레드’는 말한다. “내 최후의 차트는 아무에게도 맡기지” 않을 것이며, “나의 선택은 이 벽 너머로 나가는 거”라고. 이 목소리는 우리에게 생존만을 위해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가치를 잊고 있지 않은지, 그렇다면 생존과 다른 ‘산다’는 것의 의미란 무엇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말」에서 “기억하고 기억되기, 그것을 씨앗 삼아” 타인의 “처지를 기꺼이 상상하는 용기”가 우리의 삶을 이어지게 해준다 생각한다고 밝혔듯, 결국 『부적격자의 차트』는 ‘부적격자’, 즉 자신과 타인의 처지를 상상할 줄 아는 이에 대해 그를 계속 “기억하고” 또 “기억되”고자 적어 내려간 ‘애도’의 기록이다. 가혹한 현실을 살아가며 “그 어떤 이야기도 자신의 힘으로 ‘상상하지’ 않는 오늘의 우리에게” 이 소설은 “아프지만 아름답”(문지혁)게 가닿으며, “생존”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박해울) 성찰하게끔 한다. 다름 아닌 인간을 구원하는 건 생존도, 지속되는 평온한 삶조차 아니며, 자신의 ‘선택’으로 두려움의 세계로 나아가 기꺼이 기억하고 기억되며 삶을 ‘살아내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