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생애가 될 감정”
결말이 정해져 있더라도 끝까지 사랑 쪽으로 나아가는 마음
송현지 평론가가 작품 해설에서 언급했듯, 봉주연은 자신의 시가 고전적이고 단순한 러브레터로 읽힐 위험을 무릅쓰고 ‘편지’ 형식을 택했다. “동시대 많은 시들이 서정시의 저 오랜 정의에서 멀어지고 있는”(송현지) 와중에, 서정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편지를 택했다는 것은 어쩌면 젊은 시인에게는 큰 용기이자 그에게 ‘편지’라는 형식이, 더 정확히 말하자면 편지를 받아볼 ‘당신’이 간절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근원적 외로움”이 깃든 ‘나’는 언제나 “체온이 필요한 사람”이고 “함께 살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기에. “아무나 붙잡고 / 같이 살아봐요,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편지는 (도착될)미래를 향해 지금 쓰이는 글이자 도착 이후에는 과거(에 작성된 내용)를 현시점에서 읽게 되는 특수한 글로서 여기에는 미래와 현재와 과거가 동시에 있다.” (송현지) 그리하여 편지 양식을 빌려온 봉주연의 시에는 독특한 시간관이 드러나 있다. 과거-현재-미래를 직선적으로 인지하는 인간과는 달리, 마치 영화 <컨택트>처럼 시인은 시 속에서 사랑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전부 조망한다. 그리하여 “결말을 다 알고서도 같은 선택을 할 건지”,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나를 믿”는지 묻는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한 지점에서 만나듯 “편지는 서로의 마음이 가장 가까이 겹쳐지는 글”이다. 이 시집이 우리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라는 것이, 다음 편지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 못내 기쁜 지점이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VOL. Ⅹ』는 봉주연, 김연덕, 안미린, 유선혜의 개성을 담은 시집을 분기별로 선보이게 된다. 젊고 세련된 감각으로 한국 시 문학이 지닌 진폭을 담아낼 이번 시리즈는 비주얼 아티스트 강서경 작가의 표지 작업과 함께해 예술의 지평을 넓혀갈 예정이다.
핀 시리즈 공통 테마 <에세이>_‘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에 붙인 에세이는, 시인의 내면 읽기와 다름없는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로 출발한다. 이로써 독자들이 시를 통해서만 느꼈던 시인의 내밀한 세계를 좀 더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다가설 수 있게 해준다. 나아가 이 에세이가 ‘공통 테마’라는 특별한 연결고리로 시인들의 자유로운 사유공간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자신만의 고유한 정서를 서로 다른 색채로, 서로 다른 개성으로 보여주는, 깊숙한 내면으로의 초대라는 점은 핀 시인선에서만 볼 수 있는 매혹적인 부분이다. 새로운 감각으로 네 시인이 풀어나가는 이번 볼륨의 에세이 주제는 ‘향’이다.
에세이「미래의 냄새」에는 신문사 편집기자로서 재난을 객관적으로 활자화해야만 하는 시인의 고뇌가 담겨 있다. 재난 기사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미리 써놓고 날짜만 바꿔서 보도하는 뉴스. 그러나 시인은 건조하고 무감각하게 나열된 헤드라인에서도 ‘떠내려가는 이가 붙잡는 악력’을 느끼고 ‘차오르는 물의 냄새’를 맡는다. 활자로 다가오는 비非실감의 재난, 그 비실감투성이 속에서도 유일하게 실감을 느끼는 이가 바로 시인 아닐까. 그렇게 예정된 재난의 헤드라인 속에서도 시인은 희망을 찾는다. 사랑하는 친구와 바다 냄새를 맡으며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이 냄새를 맡게 될 거라고 시인은 또 다른 ‘예측 가능한 미래’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