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전쟁터로 떠나는 남편에게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부정을 고백한다. “이 아이는 당신 딸이 아니야.” 모든 죄와의 악연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독백, 완벽한 트릭과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의 대가 렌조 미키히코 추리소설의 백미! 대담한 설정과 서정성 넘치는 문체로 나오키 상, 시바타 렌자부로 상,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휩쓴 렌조 미키히코. 그의 장편소설 『백광』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폴라북스에서 출간되었다. 무고한 어린 소녀의 죽음을 불러온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감춰진 어두운 일면을 독백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섬세한 심리 묘사와 상상을 초월하는 대담한 설정, 그리고 서정성 넘치는 문체까지 렌조 미키히코 문학세계의 진수를 보여준다. 『백광』은 흡입력 강한 치밀한 서술트릭을 구사하면서도 문학적 품위와 격조를 잃지 않고 차원 높게 보여주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이제 오락성과 문학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렌조 미스터리’의 세계가 펼쳐진다.
■ 지은이 _ 렌조 미키히코 1948년 나고야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1978년 『변조變調, 둘이서 한 옷 입기』라는 장편소설로 탐정소설 전문지 《겐에이조幻影城)》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대담한 설정과 서정성 넘치는 문체를 구사하는 작풍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회귀천 정사』(1981년)로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달맞이꽃 야정夜情』(1984년)으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신인상, 『연문戀文』(1984년)으로 나오키 상, 『숨은 국화』(1996년)로 시바타 렌자부로 상까지 굵직한 문학상들을 섭렵했다. 2002년에 발표한 『백광』은 추리소설다운 치밀함과 높은 문학성으로 큰 주목을 받은 걸작이다. ■ 옮긴이 _ 양윤옥 일본문학 전문번역가. 히라노 게이치로 『일식』의 번역으로 2005년 일본 고단샤가 수여하는 노마문예 번역상을 수상했다. 대표적인 번역서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 『유성의 인연』 『악의』,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 『철도원』 『저녁놀 천사』,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올림픽의 몸값』 『꿈의 도시』, 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 이사카 코타로의 『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3권 시리즈 등이 있다.
■ 이 책은 … 거듭되는 반전으로 독자의 허를 찌르는 ‘렌조 미스터리’의 걸작 치매 증세의 시아버지를 모시는 성실한 가정주부 사토코의 집 안마당에서 네 살 난 조카딸의 사체가 발견된다. 그리고 그녀를 비롯한 일곱 명의 등장인물이 번갈아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하면서 숨겨져 있던 내밀한 진실들이 하나둘 밝혀진다. 등장인물들이 각자 마음속 깊은 곳을 자기만의 진실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만큼, 그것을 바탕으로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게 하는 이들의 고백은 그저 작가의 트릭을 보여주는 환기장치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반전의 의외성은 고백이라는 충격적인 토로 행위를 통해 또 다른 사람의 고백으로 이어지며, 반전의 충격은 더 심화된다. 바로 진실게임이라는 고백의 형식을 빌린 ‘서술敍述 트릭’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짜내려간 ‘렌조 미스터리’의 독창적 세계다. 이런 추리소설을 읽고 싶었다! 렌조 미키히코는 고백이나 독백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독자를 속이고 플롯 전체에 엄청난 함정을 숨겨두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중 화자가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마지막 순간에 지금껏 옳다고 믿었던 사실을 화자가 가차 없이 뒤집어버리게 하는 작가의 기교는 『회귀천 정사』 등의 초기작품에서부터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백광』은 이렇듯 여러 명의 등장인물의 독백 구조를 통해 여러 개의 복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작품은 뜻밖의 진상을 파헤치는 기법, 불륜 의혹을 주축으로 진행되는 치정 문제, 인간의 어두운 일면을 부각시킨 심리 묘사 등, ‘렌조 미스터리’를 차별화시키는 중요한 요소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래서 『백광』은 오래된 팬은 물론 렌조 미키히코의 작품을 처음 만나는 독자들까지 모두를 사로잡을 작품이다. 작가는 각 등장인물의 고백을 정확히 배치하여 마지막까지 범인을 감춰두면서, “범인은 대체 누구인가?”라는 의문으로 끊임없이 독자들을 유도한다. 때문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에 이 작가가 얼마나 독자를 조종하고 쉴 새 없이 자극하는 주재자였는지 절감하게 될 것이다. ■ 줄거리 이야기는 평범한 샐러리맨 가족의 아침 풍경에서부터 시작된다. 치매를 앓고 있는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가정주부 사토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그녀에게 한 가지 고민이 있다. 바로 여동생 유키코가 문화센터에 다닌다며 조카를 봐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여동생에게 휘둘려온 사토코는 내심 그녀를 귀찮아한다. 무엇보다 유키코의 남편에게서 그녀가 문화센터에서 만난 대학생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더욱 더 조카를 맡는 게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사토코는 마음속에 감춰둔 ‘어둠’을 입 밖에 내거나 여동생의 부탁을 거절하는 대신 조용히 조카를 맡아주기로 한다. 마침 그날은 딸을 데리고 치과에 가야 하는 날이었는지라 사토코는 어린 조카 나오코와 치매인 시아버지만을 남겨놓고 치과에 간다. 하지만 치과에서 돌아와 보니 나오코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사토코는 백방으로 아이를 찾아보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정신이 온전치 않은 시아버지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아이는 죽어서 능소화나무 아래에 묻혀 있다”고……. 그리고 그날 나오코는 이모 집 안마당에서 능소화나무 밑에 파묻힌 시체로 발견된다. 나오코의 죽음에 관련해 사토코를 비롯한 일곱 명의 등장인물이 번갈아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하고, 결국 일가족의 뒤편에 숨겨져 있던 음울한 진실들이 하나둘 밝혀진다. 과연 어린 소녀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독자를 후려치는 섬뜩한 반전, 렌조 미키히코만의 최고의 미스터리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