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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

김성중 -
978-89-7275-957-7
2018년 12월 25일
160쪽 | 104*182 | 사륙변형
11,200원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아홉  번째 책 출간!

84세의 나이가 되어 죽음을 앞둔 나의 이야기와 열다섯 살의 나이로 백 년의 세월을 보낸 나의 이야기가 액자소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죽음이 없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죽음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공포스러운 사건이다.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면 오히려 인간은 삶의 의지를 맹렬히 느끼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그러나 정작 죽음이 없는 영생의 삶이 주어진다면 과연 인간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작가는 이 부분에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시간과 날짜는 어김없이 흘러가지만 아무도 죽지 않는다. 임종을 앞둔 노인은 죽기 전의 그 상태로, 임신한 여자는 배 속의 아이와 함께 백 년의 시간을 살아낸다. 그 누구도 성장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음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기력과 권태, 절망에 빠진 채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죽음이 없는 시간 속에 인간은 한낱 유령에 불과하다.

이 아이러니한 현실 속에서 ‘나’와 이슬라는 그 세계의 정중앙으로 뛰어 들어가 보지만 그들이 맞닥뜨린 세상은 난봉꾼들로 가득하거나 무기력한 인간들로 가득할 뿐이다. 달라지려 해도 달라질 것 없는 세계는 그 극단의 삶 어느 쪽에도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재난 같은 현실의 해결책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애착과 사랑을 제시한다. 무의미한 세계에서 유의미한 세계로의 진입을 위해 버려진 아이들의 엄마로 살기를 자처한 에디/애슐리가 그렇고, 나’와 사랑에 빠진 이슬라도 그렇다. 이슬라는 나의 행복을 위해 “죽음을 낳는 자궁”인 자신의 본분을 다시 깨닫고 죽음을 낳고, 이슬라가 죽음을 낳게 된 이후 세계는 다시 태어남을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나게 되는 삶, 본래의 세상을 회복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맞닥뜨리게 된 이후 세상은 다시 활기를 찾는다. 죽음은 절망이 아닌 삶에 대한 애착을 인간들에게 줌으로서, 죽음이 있기에 삶의 의미가 생겼고 목숨을 걸고 해야만 하는 일 같은 커다란 꿈을 품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은 세상의 삶에 대한 절망이 아닌 삶에 대한 애착, 죽음과 죽음 없음에 대한 공포를 말하는 소설이다.

 

 

표4

 

죽음 없는 삶이 가져온 뜻밖의 고통,

삶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고 놓여나는가?

 

우리는 점차 ‘사랑’이 소멸되어가는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김성중은 열다섯 소년·소녀의 사랑을 신과 인간의 그것처럼 “신비한 일”로 그려내면서, 이 복잡하게 불행하고 지독하게 절망적인 우리의 삶이 결국 ‘각설탕처럼 내 몸이 네 몸에 녹아들어가기를’ 바라는 이 같은 신비로운 사랑의 힘을 통해 구원될 수 있다고 말해본다. 재난 소설에 가까운 『이슬라』는 역설적으로 누군가와의 강력한 사랑을 체험한 작가이기에 쓸 수 있었던 소설로 읽히는 것이다. 『이슬라』는 삶에 대한 절망이 아닌 삶에 대한 애착, 즉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말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조연정, 「작품해설」 중에서

 

 

작가의 말 중에서

 

어느 날 수업이 끝나자 한 학생이 나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소설을 다 썼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뭐라고 대답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답보다 질문이 오래 남는 것이 이 경우인데, 나 역시 수없이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기 때문이다

(……) 이야기는 여러 번 휘어졌다. ‘죽음을 낳는 자궁’이라는 아이디어만 적어놓고 몇 년을 잊고 지냈다. 여행을 다녀왔더니 공간이 생겨났고, 어느 날 의인화된 신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머릿속에 관념과 이미지와 감정의 덩어리가 생겼는데 그걸 집어 올릴 집게가 마땅치 않아 또 시간이 흘러갔다. 쓰면서 사로잡힌 의심. 내가 허공을 집은 것인지, 이야기를 집은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의심은 끝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학생의 질문에 답할 수 없다. 이야기가 끝이 나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올까?

-김성중, 「작가의 말」 중에서

 

 

본문 중에서

 

내일이면 팔십사 세가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백팔십사 세가 되는 것이다. 나는 백 년간 열다섯이었으므로.

뼈에 새겨진 백 년을 떠올려본다. 그 전과 후의 인생을 합친 것보다 길었던 나의 백 년. 백 년을 보낼 나이를 스스로 정할 수 있었다면 나는 열다섯을 선택했을까? 내 생애 이보다 자주 던진 질문은 없을 것이다.

-9p

 

시간이 어떻게 되돌아왔을까? 지금까지 내 비밀은 오직 이것이었다. 시간을 다시 흐르게 만든 사람, 그것은 나였다. 이슬라가 내게 죽음을 선사하기 위해 모두의 죽음을 다시 낳아주었다. 이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무력한 인생을 살아온 나에게도 누설할 비밀이 하나쯤 있어야 하니까.

-p. 11

 

“우리는 이미 모두 죽었다. 시간이 멈춘 게 아니라 인간이 몰살당한 거라고. 생각해봐라. 만물이 영생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모두가 죽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지 않는 편이 훨씬 이치에 닿는 소리지. 다들 죽었는데 아무도 진실을 모르고 있는 거야.”

-13p

 

인간들의 망상이 서로 닮아 있다는 사실에 나는 항상 경이로움과 슬픔을 느낀다. 기억과 환상이 뒤섞이고 경험과 망각이 나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동안 바래지 않은 조각이라고는 그녀뿐이다. 백 년의 인간들은 스스로 신이 되기에 바빠 옆에서 진짜 신이 걸어 다니는 것을 알지 못했다. 무관심하고 무력한 신들이 도처에서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말이다. 나의 이슬라처럼.

-15p

 

태어나 정지되는 시간을 만날 때까지의 열다섯—그리고 백 년— 아야가 없는 열여섯부터 여든네 살이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인생은 하나를 둘러싼 또 하나의 인생으로 이루어진 셈이었다. 소설로 치면 액자소설에 해당한다고 할까.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의 십오 년은 전생처럼 아득하고 열여섯부터 흘러간 시간은 꿈처럼 허망하다.

-70-71p

 

결국 나는 그 애의 이름을 ‘이슬라’라고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섬에 있었고, 이슬라는 이곳 사람들이 섬을 부를 때 쓰는 말이었다. 나는 ‘죽은 자’라는 의미의 ‘아야’ 대신 이 이름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나 이방인처럼 보이는 그녀는 일종의 섬이기도 했다.

섬에서 나와 배를 타고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액자 속의 시간, 아야와의 백 년일 수밖에 없다.

-121p

 

무한의 인간은, 무한을 이길 수 없다. 오직 유한한 인간만이 무한에 대해 상상할 수 있다. 천장도 바닥도 없는 허공에 떠 있는 것은 결코 자유가 아니다. 땅에서 태어난 인간은 하늘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죽음을 박탈당한 우리는 죽음과 비슷한 것들만 찾다 소모될 것이다. 그러다 공회전을 멈추면 그게 우리의 죽음이 될 것이다.

-129p

 

이슬라의 상처가 다 나은 다음 우리는 항구도시의 이곳저곳을 산책했다. 변함없는 시간 속에서 변한 것은 이슬라의 내면뿐이었다. 나를 포함해 어떤 인간도 눈치채지 못하는 동안 이 세계는 서서히 몸을 뒤틀고 다음 세상으로 건너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 세상, 삼라만상에 스며 있는 ‘섭리’라는 보이지 않는 신, 그 전능한 입자가 우리의 갈 곳을 정해놓았다. 만물을 접어놓으면 신, 신을 펼쳐놓으면 만물이라고 했던가. 접힌 페이지에는 계시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으로 갔다.

-130-131p

 

이슬라가 지나간 자리마다 시체들이 쌓여간다. 재난의 천사가 임재해 초토화된 도시처럼 보이는 풍경. 백 년 만에 죽는 사람이 속출하자 사람들은 비명과 환희,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한층 찬란해졌다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죽어야 할 인간, 다시 말해 추한 생명은 모조리 사라졌다. 누렇게 말라버린 나뭇잎을 떼어내고 물을 주자 되살아난 화초처럼 도시에는 생동감이 돌았다. 배수구가 마침내 뚫려서 흙탕물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135p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월간 <핀 소설>, 그 아홉 번째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여섯 명이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된 것이다.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은 월간 현대문학이 매월 내놓는 월간 핀이기도 하다. 매월 25일 발간할 예정이 후속 편들은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작가들의 신작을 정해진 날짜에 만나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한국 출판 사상 최초로 도입되는 일종의 ‘샐러리북’ 개념이다.

 

001부터 006은 1971년에서 1973년 사이 출생하고, 1990년 후반부터 2000년 사이 등단한, 현재 한국 소설의 든든한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렸다.

007부터 012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출생하고, 2000년대 중후반 등단한, 현재 한국 소설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발간되었거나 발간 예정되어 있는 책들은 아래와 같다.

 

001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4월 25일 발간)

002 박형서 『당신의 노후』(5월 25일 발간)

003 김경욱 『거울 보는 남자』(6월 25일 발간)

004 윤성희 『첫 문장』(7월 25일 발간)

005 이기호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8월 25일 발간)

006 정이현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9월 25일 발간)

007 정용준 『유령』(10월 25일 발간)

008 김금희 『나의 사랑, 매기』(11월 25일 발간)

009 김성중 『이슬라』(12월 25일 발간)

010 손보미(2019년 1월 25일 발간 예정)

011 백수린(2019년 2월 25일 발간 예정)

012 최은미(2019년 3월 25일 발간 예정)

 

 

현대문학 × 아티스트 허은경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재구성된 독창적인 소설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소설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소설과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허은경
1964년 서울 출생. 서울대 서양화과 졸업.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 위치한 아트센터Art Center College of Design, Pasadena, CA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 취득. 1992년 첫 개인전 「After Myth」로 활동을 시작, 미국과 한국, 독일, 중국을 오가며 다수의 개인전, 단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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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 Author: Juan Lee (Seung 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