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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의 피크닉
Пикник на обочине(1972)
아르카디 스트루가츠키, 보리스 스트루가츠키 지음 이보석
978-89-7275-838-9
2017년 12월 18일
380쪽 | 126*194 | 사륙판 변형
14,000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러시아 SF 작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전설적인 고전

●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니콜라이 고골에서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를 아우르는 러시아 전통의 적법한 계승자이자, 최고의 소비에트 SF 작가다. 인지주의 윤리가 없는 시민은 포식동물로 전락한다는 그들의 인식에서 형제의 소설은 주류 문학과 맞닿아 있다. _『공상과학 백과사전』

 

● 역대 러시아 지식인들은 스트루가츠키 형제에게서 배태되었다. 그들의 책은 소비에트 사회나 실로 억압적인 모든 사회에 대한 정치 논평이라는 특별한 관점에서 읽힐 수 있다. _《가디언》

 

● 『노변의 피크닉』은 탁월한 오라를 지닌 작품이다. 중심적인 대담한 단일 은유를 사용함으로써, SF가 어떻게 소설의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는지 입증한다. _ 하리 쿤즈루

 

●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자유인이 쓰듯 글을 썼다. 생동감 넘치고, 통쾌하며,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복합적인 사건, 상상력 넘치는 디테일, 윤리적이고 지적인 정교함.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하게 훌륭한 작품. _ 어슐러 K. 르 귄

 

● 의리와 욕망, 우정, 사랑, 절망, 좌절, 그리고 고독을 다루는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능숙하고 유연한 방식이 더해져서 축복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진정 최고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당신은 『노변의 피크닉』을 잊지 못할 것이다. _ 시어도어 스터전

 

●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자신들이 공상적인 것의 사실주의자임을 증명해 보인다. 공상소설에서의 사실주의가 논리적 귀결에 대한 존중, 오로지 가정된 전제에서 모든 결론을 추론할 때의 성실함이라는 것을 고려하건대. _ 스타니스와프 렘

 

● 강력하게, 아니 강박적이다시피 할 정도로 논리적(길고 복잡한, 카프카적인 논리)이다. 관료주의의 이해 불가능한 의식儀式은 대부분의 스트루가츠키 형제 소설의 배경이 된다. _ 브라이언 W. 올디스

 

● 러시아 SF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스트루가츠키 형제에게 거하리라. 새로운 세대 SF 독자를 위한 근사한 필독서. _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

 

●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작품은 세계문학의 불가결한 요소다. _《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다른 문학 형식으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소비에트 삶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공상과학소설이란 장르를 이용한 작가다. _《뉴욕 타임스》

 

●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세계관은 독보적으로 신랄하고 인류애로 충만하다. 문제적 세상에 대한 인물들의 상충되는 시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선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더 이상 확신할 수 없게 만드는 책. _《디스커버》

 

● 『노변의 피크닉』은 SF가 인간을 얼마나 훌륭히 탐구하는지 일깨워 준다. _《새크라멘토 뉴스앤드리뷰》

 

● 『노변의 피크닉』은 초인간적인 힘 앞에서의 인간 행동에 대한 영향력 있는 연구다. 이 작품은 위풍당당하게 고전으로 살아남았다. 삶의 좌절감과 가능성에 대한 인류의 형언할 길 없는 분노 그리고 경이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 소비에트 시대 SF를 단 한 권만 읽는다면, 당연히 아르카디와 보리스 스트루가츠키의 어둡고 다의적인 『노변의 피크닉』이어야 한다. _ 「io9」

 

● 이 이야기는 한 순간도 약해지지 않는 정련된 맹렬함을 지니고 있다. _《커커스 리뷰》

 


 

“그렇다면 박사님께서는 지난 13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발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방문 그 자체요.”
“네?”
“지난 13년뿐 아니라, 인류가 존재한 이래 가장 중요한 발견은 방문이라는 사실 자체입니다. 방문자의 정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하러 왔는지, 왜 그렇게 잠깐 머물렀는지, 그 후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우주의 외로운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분명히 알게 됐다는 게 중요하지요. 앞으로 이 이상 근본적인 발견을 해낼 운은 외계문명연구소에 결코 허락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하몬트 라디오 특파원이 진행한 19××년 밸런타인 필먼 박사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 기념 인터뷰에서 발췌」

 

나는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갔고, 나의 ‘근질이’가 최고치로 작동한 것을 소리를 통해 알게 된다. 우선 개들이 온 블록이 울리도록 짖어 대기 시작했다. 개들이 가장 먼저 ‘근질이’를 감지한다. 그리고 술집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는데, 멀리 있는 내 귀가 다 먹먹해졌다. 나는 저기서 사람들이 몸부림치는 장면을 떠올렸다. 어떤 사람은 우울감에 빠지고, 어떤 사람은 야만스러운 싸움에 말려들고, 누군가는 두려움에 휩싸여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근질이’는 무서운 물체다. 어니스트가 술집을 다시 열려면 시간깨나 걸릴 거다. 어니스트, 그 개자식은 물론 내 소행이라는 걸 추측하겠지만, 무시하면 그만이다…… 다 끝났다. 이제 스토커 레드는 없다.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하다. 제 발로 죽으러 가는 것도, 다른 멍청이들에게 이 일을 전수하는 것도 끝이다. 키릴, 사랑하는 나의 친구, 당신이 실수한 거야. 미안, 그런데 당신이 아니라 구탈린이 옳았어. 여기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구역에 선의라곤 없어.
「1 레드릭 슈하트, 23세, 독신, 국제외계문명연구소 하몬트 지부 연구원」

 

여드름투성이 택시 기사의 술 냄새가 뒷좌석까지 풍겨 왔다. 그의 눈은 산토끼처럼 빨갰다. 그는 잔뜩 흥분해서는 레드릭에게 오늘 아침 묘지에 묻혀 있던 죽은 자가 그들의 길가에 출몰한 일을 단숨에 떠벌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죽은 자가 자기 집에 왔는데, 집은 이미 몇 년째 못까지 박혀 폐쇄돼 있고 모두―그의 미망인 노파며 딸과 사위, 그리고 손주들까지―그곳을 떠나 버린 후였어요. 이웃 사람들이 말하길, 그 죽은 자는 30년 전, 방문이 있기도 전에 죽었는데 이제 와서 잘 있었소!, 라며 용케 찾아온 거죠. 죽은 자는 몇 번이고 집 주위를 서성이며 문을 긁더니 울타리 옆에 주저앉더라고요. 온 블록 사람들이 다 몰려와 그를 보면서도, 물론 다가가기는 두려워하고요. 조금 뒤 한 사람이 묘안을 냈어요. 집 문을 부숴서, 그러니까 그에게 입구를 열어 주자는 거죠. 죽은 자가 어떻게 했을 것 같으세요? 그는 일어나서 안으로 들어갔고 사람들은 문을 닫아 버렸어요. 나는 서둘러 출근해야 했기에 그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지만, 그를 여기서 끌어내 망할 노파에게 보내 버리라고 사람들이 연구소로 전화하려고 했다는 건 알아요. 뭐라고들 하는지 아세요? 사람들 말로는, 사령부가 죽은 자의 친지들이 이사한 경우 죽은 자를 그들에게, 즉 그들의 새로운 거주지로 보내 버린다는 내용의 명령서를 준비 중이라는 거죠. 친지들이 퍽이나 기뻐하겠죠! 그런데 그 죽은 자에게서는 벌써 악취가 나더라고요…… 죽은 자니까 당연하지만……
「2 레드릭 슈하트, 28세, 기혼, 특정 직업 없음」

 

누넌은 마담에게 인사하고 베니와 악수하고 나서 바로 보르시치로 향했다. 모든 불행은 한 해 한 해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는 데 있다, 라고 누넌은 생각했다. 한 해 한 해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우리는 모든 게 변한다는 걸 알고, 모든 것이 변한다고 어릴 적부터 배웠고, 모든 게 어떻게 변하는지 우리 눈으로 여러 번 봐 왔는데, 그런데도 변화가 일어나는 그 순간을 전혀 포착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변화를 찾는다. 이제 벌써 새로운 스토커들, 사이버네틱스로 무장한 스토커들이 등장했다. 과거의 스토커는 동물적인 집요함을 갖춘 지저분하고 음침한 인간으로, 구역을 조심조심 기어가 큰돈을 벌어들이곤 했다. 신세대 스토커는 넥타이를 맨 멋쟁이 엔지니어로, 구역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어딘가에 앉아 입에는 담배를 물고 팔꿈치 옆에는 에너지 음료가 든 잔을 두고 편안히 앉아서 화면들을 본다. 샐러리맨인 것이다. 상당히 합리적인 장면이다. 다른 가능성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논리적이다. 그런데 또 다른 가능성이 있었던 것 아닌가. ‘주일학교’라든가.
그리고 그는 갑자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절망감을 느꼈다. 다 부질없다. 다 괜한 짓이었다. 맙소사, 그는 생각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게 아닌가! 억제하지도, 멈추지도 못한다! 어떻게 해도 악의 씨앗이 자라는 걸 막을 수 없다, 고 그는 공포에 질려 생각했다. 우리가 제대로 못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교활하고 영리해서도 아니다. 그저 세상이 이렇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렇기 때문이다. 방문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뭔가 다른 일이 있었을 거다. 돼지는 어떤 상황에서든 진흙탕을 찾아낼 테니……
「3 리처드 H. 누넌, 51세, 국제외계문명연구소 하몬트 지부 전자 장비 공급처 대리인」

 

“잠깐만요.” 누넌이 말했다. 그는 맥주를 마저 마시고 빈 잔을 테이블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 “말 돌리지 마세요. 그럼 이렇게 여쭤볼게요. 인간이 외계 생명체와 만났어요. 그들은 서로가 이성적 존재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죠?”
“나는 모르겠소.” 밸런타인이 즐거워하며 대답했다. “내가 그것에 관해 읽었던 글은 모두 자가당착에 빠졌습니다. 그들이 우리와 접촉할 수 있다면 그건 그들이 이성적이란 의미다. 혹은 뒤집어서, 그들이 이성적이라면 우리와 접촉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심리를 지닐 영광을 누리는 외계 생명체면 이성적이라는 겁니다. 뭐 그런 거지. 리처드, 보니것 읽어 봤습니까?”
「3 리처드 H. 누넌, 51세, 국제외계문명연구소 하몬트 지부 전자 장비 공급처 대리인」

 

“피크닉 말입니다. 숲, 시골길, 풀밭을 떠올려 봐요. 차가 시골길에서 풀밭으로 들어가고, 차에서 젊은이들이 내리고 술병들, 음식이 담긴 바구니들, 아가씨들, 트랜지스터라디오, 카메라들이 나옵니다…… 장작불이 타오르고 텐트가 세워지고 음악이 흐르지요. 그러다 아침이 되면 이들은 떠납니다. 밤새 공포에 떨며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던 동물과 새, 벌레들이 자기 피난처에서 기어 나옵니다. 그때 이들이 보게 되는 건 뭐겠습니까? 풀밭에는 자동차 엔진오일이 흐르고 벤진으로 흥건하며 쓸모없는 양초와 오일 필터가 사방에 버려져 있겠지요. 헌 옷이 널브러져 있고, 수명을 다한 전구가 뒹굴고 누군가는 렌치를 버리고 갔고.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겠는 늪지에는 타이어 자국이 새겨졌고…… 그러니까, 불 피운 흔적이며 사과 찌꺼기, 사탕 껍질, 통조림 캔, 빈 병, 누군가의 손수건, 누군가의 주머니칼, 오래되어 찢어진 신문, 동전들, 다른 들판에서 온 시든 꽃 같은 것들을……”
“압니다, 노변의 피크닉이죠.” 누넌이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우주의 노변에서 열린 피크닉. 그런데 당신은 그들이 돌아올지 아닐지를 나에게 묻는군요.”
「3 리처드 H. 누넌, 51세, 국제외계문명연구소 하몬트 지부 전자 장비 공급처 대리인」

 

누넌은 연구소 사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고, 그가 말하는 동안 노인 곁으로 몽키가 소리 없이 다가가 탁자에 털이 무성한 앞발을 내려놓고 잠시 서 있다가 갑자기 영락없는 어린아이처럼 죽은 자에게 안겨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누넌은 계속 지껄이면서, 구역이 낳은 그 끔찍한 두 사람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맙소사. 대체 이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우리에게 침투하기 위해 또 무슨 짓을 할 것인가? 이걸로도 부족하단 말인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수십억 하고도 수십억 명은 아무것도 모르며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알게 되더라도 10분쯤 두려움에 떨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리란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취해 버려야지, 라고 그는 분노하며 생각했다. 버브리지가 지옥에나 떨어지길, 렘천도 지옥에 떨어지길…… 신의 저주를 받은 이 가족도 지옥에 떨어지길. 취해야겠다.
「3 리처드 H. 누넌, 51세, 국제외계문명연구소 하몬트 지부 전자 장비 공급처 대리인」

 

지나갈 거다, 지나갈 거야, 레드릭은 생각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내 일생이 이러했다. 몸은 똥통에 박혀 있고, 머리 위로는 번개가 치고. 그렇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똥은 대체 어디서 온 건가? 어찌나 많은지…… 미쳐 버리겠다. 한곳에 어찌나 많이 있는지, 온 세상의 똥이 다 여기로 모인 건지…… 대머리수리 때문이다. 그가 분개하며 생각했다. 대머리수리가 이곳을 지나갔기 때문에, 이건 그의 뒤에 남은 것이다…… 안경잡이는 오른쪽에 누워 있고 푸들은 왼쪽에 누워 있는데, 그게 다 대머리수리가 그들 사이로 지나가기 위해서, 지나간 자리에 자신이 싼 똥을 모두 남기고 가기 위해서였다…… 너도 그래야 해, 그가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대머리수리를 뒤쫓아 가는 자는 언제나 똥을 먹게 돼 있다. 네가 설마 그걸 몰랐단 말인가? 온 세상이 그런데. 그들이, 대머리수리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래서 청정한 곳이 남아나지 않고 다 더럽혀졌다…… 누넌은 바보다. 빨강머리, 너는 균형을 파괴하는 자라고, 질서를 파괴하는 자라고. 빨강머리, 너는 어떠한 질서 속에서도 불행할 거라고, 악한 질서 속에서도 불행하고 선한 질서 속에서도 불행하다고.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 땅에 지상낙원이 절대 도래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 네가 뭘 알지, 뚱보? 내가 언제 그 선한 질서라는 걸 본 적이 있기나 했나? 네가 언제 선한 질서 속에 있는 나를 봤느냐고……? 나는 일생 동안 키릴들과 안경잡이들이 어떻게 죽어 가는지, 대머리수리들이 그들의 시체 사이로, 그들의 시체를 따라 벌레처럼 지나가며 똥을 싸고, 싸고 또 싸는 것만을 목격하고 있는데……
「4 레드릭 슈하트, 31세」

 

비열하다, 비열해…… 그리고 여기서 그들은 나를 속이고, 혀를 앗아 갔다, 더러운 놈들…… 쓰레기. 쓰레기였고, 그렇게 쓰레기로 늙었다…… 이래선 안 된다! 당신, 듣고 있나? 미래에는 이런 게 금지돼야 한다! 사람은 생각하기 위해 태어난다. (이게 키릴이 말한 거였구나, 드디어 생각났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전에도 믿지 않았고 지금도 믿지 않는다. 사람이 뭐 하러 태어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태어났으면 태어난 거다. 그냥 살아가는 거다. 우리 모두는 건강하게 살고 그들은 모두 뒈지라지. 우리라니, 누굴 말하는가? 그들이라니, 누굴 말하나? 정말 아무것도 이해가 안 된다. 나한테 좋으면 버브리지한테는 나쁘고, 버브리지한테 좋으면 안경잡이한테 나쁘고, 쉰목소리한테 좋으면 모두한테 나쁘고, 사실 쉰목소리 자신한테도 나쁘지만, 그저 그 멍청한 놈은 어떻게든 제때 발을 뺄 수 있을 거라 착각한다…… 맙소사, 완전히 뒤죽박죽이다, 뒤죽박죽! 나는 일생을 쿼터블래드 대위와 싸웠는데, 그는 일생을 쉰목소리와 싸웠고, 나라는 지진아한테는 오로지 한 가지만 바랐다. 내가 스토커 짓을 그만두기만을. 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어떻게 내가 스토커 짓을 그만둘 수 있었겠는가? 직장에라도 나가란 건가? 하지만 나는 당신들을 위해 노동하고 싶지 않으며 당신들이 하는 일은 내게 구역질을 일으키는데, 당신들은 그걸 이해할 수 있나? 사람이 직장을 다니면, 언제나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거다. 그는 노예지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닌데,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이고 싶었고, 나 자신이길 원했다. 모두를, 그들의 애환이나 권태를 신경 쓰지 않고 싶었으니까……
「4 레드릭 슈하트, 31세」

● 지은이_ 스트루가츠키 형제Братья Стругацкие
아르카디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1925.08.28. 바투미 ~ 1991.10.12. 모스크바)
보리스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1933.04.15. 레닌그라드 ~ 2012.11.19. 상트페테르부르크)

“사고하는 것은 여흥이 아니라 의무다!”
20세기 러시아 SF의 개척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형제 작가. 러시아 문학의 비판적인 경향과 풍자문학의 전통을 SF에 결합시킨 독특한 반反소비에트적 디스토피아 작품을 남겼다. 그들의 작품 세계는 ‘정신의 모험’을 다루면서 실존의 본질에 천착한 실험적 공간이었다.
형제는 어린 시절 책만큼은 풍족하게 누리며 자랐다. 서재에는 허버트 조지 웰스, 미하일 예브그라포비치 살티코프셰드린,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잭 런던 등이 꽂혀 있었다. 그들은 같은 책장을 공유했지만, 취향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형제 모두 소설을 쓸 생각이 있었으나, 의기투합해서 소설을 쓰기까지는 다른 길을 걸었다. 형 아르카디는 군사언어학교 일본어학부에서 수학했고 훗날 나쓰메 소세키와 아베 고보 등을 번역하며 일본어를 가르쳤다. 동생 보리스는 레닌그라드 대학교에서 천문학을 전공한 후 풀코보 천체관측소에서 근무한다.
형제는 1950년대부터 소설적 발상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힘을 합쳐 쓴 첫 작품은 『외부로부터』로 1958년 잡지 《기술-청년들》에 발표되었다. 이듬해인 1959년에는 첫 단행본 『선홍빛 구름의 나라』가 출간되었고, 이후 『신이 되기는 어렵다』(1964)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1964) 등 대표작들을 내놓으며 전성기를 맞았다.
젊은 시절 형제는 소련의 이념에 긍정적인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차츰 혁명과 소련 체제에 의구심을 가졌고,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목도하면서 소련 이념에 대한 환상을 잃는다. 그즈음의 작품은 검열과 비평가들의 혹평에 시달렸다. 이 같은 상황에 굴복해 글쓰기를 중단하는 것을 패배라 여긴 그들은 의도적으로 중립적이며 비정치적인 작품을 계속해서 써 나갔지만, 그조차 검열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초기 작품에서는 기술과 문명의 진보가 초래한 도덕성 및 인간성 상실, 역사 앞에서의 개인의 책임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탐구했고 후기로 갈수록 소비에트 관료제도 고발,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에 더불어 통제와 감시로 고통받는 인간의 위기의식을 다양하게 제기했다.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작품은 발표될 때마다 큰 반향을 일으켰다. 『노변의 피크닉』(1972)은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에 의해 영화 <잠입자>(1979)로 만들어졌다. 알렉산드르 소쿠로프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1976)을 토대로 영화 <일식의 날>(1988)을 촬영했다. 그 외에도 여러 작품이 영화화되었다. 형제의 작품은 33개국 42개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 옮긴이_ 이보석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노과를 졸업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대학원 비교문학 협동과정에서 수학 중이다.

지적이고 상징적이며 강렬하고 신선한, 소비에트 시대 SF의 랜드마크
20세기 러시아 SF의 개척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형제 작가의 기념비적인 대표작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소비에트 SF 작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전설적인 고전 『노변의 피크닉Пикник на обочине』(1972)이 현대문학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한국에 형제의 작품이 첫선을 보인 후 거의 30년 만의 사건이다. 이번 한국어판 『노변의 피크닉』은 스탈케르출판사의 2003년판 「스트루가츠키 형제 작품집」 11권 제2쇄(2차 수정본) 원고를 저본으로 삼았으며, 1977년 맥밀런출판사 영역판에 실린 「시어도어 스터전 서문」과 2012년 시카고리뷰프레스 영역판에 실린 「어슐러 K. 르 귄 추천사」, 그리고 2003년 동생 보리스 스트루가츠키가 펴낸 회상록 『지난 일들에 관하여』의 『노변의 피크닉』 부분 「후기」를 함께 수록했다.

 

『노변의 피크닉』은 외계 생명체나 외계 문명과의 첫 접촉을 다루는 ‘퍼스트 콘택트’ 유의 소설에 속하지만, 통상 이들 작품이 평화적인 혹은 공격적인 외계의 접근 형태를 그리는 것과는 달리 그들로부터의 아무런 의사 표시가 없었다고 상정한다.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이 작품은 외계인의 지구 ‘방문’ 이후의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19××년 지구에는 ‘구역’이라고 알려진 여섯 개의 영역이 존재하는데, 그곳은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현상(‘모기지옥’ ‘마녀의 젤리’ ‘불타는 솜털’ ‘악마의 배추’ ‘즐거운 유령들’ 등)들로 가득하고 순간순간 불가사의한 사건(‘살아 돌아온 죽은 자’ ‘이민자’ ‘묶인 자’ 등)이 발생하며, 외계인의 ‘방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그러나 ‘방문자’라 불리는 외계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지구에 왔는지, 무엇을 하고 떠났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인류는 방문자들이 지구에 온 목적을 추측할 수밖에 없으며, 그 추측 가운데 하나가 그들이 우주의 한 길목에 위치한 지구에 들러서 피크닉을 즐기고 갔을 뿐이라는 가설이다. ‘구역’에는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온 다양한 물체가 남았고, 불법적으로 ‘구역’에 숨어들어 그것들을 찾아내서 팔아넘기는 일을 생업으로 삼은 자 ‘스토커’의 이야기가 『노변의 피크닉』의 골자이다. 방문자들은 떠났지만, 인간과 외계의 접촉은 어떤 의미에서는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소설 내내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진다. 방문자들의 흔적이자 ‘방문’의 증거인 ‘구역’은 바깥 세계라는 ‘외계’의 의미로 대치되지만, 지구 바깥이 아닌 내부 즉 지구에 들어와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깡통’ ‘검은 물방울’ ‘바로 그’ ‘근질이’ ‘팔찌’ ‘옷핀’ 등 ‘구역’에 남겨진 물체들은 대체적으로 지구적인 논리에 위배되며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그러나 인류는 이 가능성을 너무도 인간적인 목표, 즉 지식을 위한 순수한 앎에의 추구, 인간의 삶을 위한 새로운 장비, 새로운 기술 연구, 경쟁심을 동반한 이익에의 추구와 새롭고 더 끔찍한 무기를 향한 탐욕스러운 갈증에 이용하려 한다. ‘방문’이 있은 지 수년 후 인류는 ‘구역’의 일부 물체를 사용하는 법을 알아냈다고 여기지만 이는 한 등장인물이 이야기하듯 ‘왕의 인장으로 호두를 부수’거나 ‘현미경으로 못을 박고 있’을지도 모르는, 기껏해야 자기 범위 안에서의 용도 찾기에 불과할 수 있다. ‘구역’은 인류가 지금껏 쌓아 온 과학을 무너뜨렸으며 인간 지식의 허상을 드러냈다. 그런데 『노변의 피크닉』은 이 같은 타자에 대한 불가지론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아는 것이란 가능한가’의 대상을 스스로에게 돌려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는가’를 묻는다. 특성을 알 수 있는가가 아니라 앎의 ‘주체’를 얼마나 확신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형제는 실존철학적 SF를 『노변의 피크닉』을 통해 끌어냈으며, 존재라는 광대한 미스터리, 지각의 주관성, 불확실성을 대하는 실존주의, 그리고 삶의 알 수 없는 목적이 이 소설을 지탱하는 개념들이다.

 

『노변의 피크닉』은 가장 노련하고 성공률이 높은 특출한 스토커 ‘레드릭 슈하트’를 주인공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에피소드이다. 그는 ‘구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보면 ‘구역’에 의해 거의 모든 생애가 결정지어진 인물이다. 그가 살고 있는 하몬트는 가상의 영어권 도시로, 보리스와 세계 독자의 2003년 10월 오프라인 인터뷰에 따르면 이 나라는 캐나다일 가능성이 높다. 소설은 레드릭의 삶의 궤적을 따르면서 그가 화자로 등장하는 1장(‘방문’ 13년 후 23세) 2장(28세) 4장(31세)과 다른 등장인물의 인터뷰 및 또 다른 등장인물이 화자로 등장하는 3장으로 이루어진다. 시간의 추이와 시점의 변화를 통해 내러티브가 풍성해지고, 이 다양성은 간결한 줄거리를 가진 소설 속 세계를 더욱 확장시킨다. 생생하고 긴박하고 예측 불허인 전개는 하드보일드한 어조를 띠며 등장인물 개개인은 선명하고 친근한 보통 사람들로 그려진다. 대부분이 비참하고 비관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이들에 대한 묘사는 감상주의나 냉소에 빠지지 않거니와 휴머니즘을 과장해 보이지 않으면서 깎아내리지도 않는다.

 

한편 보리스가 「후기」에서 언급했듯이 레드릭의 직업 ‘스토커’는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의 『스토키와 친구들Stalky & Co.』(1899)의 한 등장인물 별명인 스토키Stalky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다. 이 별명은 ‘잠입하다’ ‘몰래 가다’란 의미의 영단어 stalk에서 유래했다. 형제는 이를 키릴 문자로 전사轉寫하여 러시아어 단어를 만들어 냈는데, 러시아인들에게 스토커는 ‘남을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사람’의 의미보다 『노변의 피크닉』 속 의미가 더 친근하다. 이 소설이 발간된 후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났는데, 원전 주위 접근 금지 구역에 몰래 들어가는 이들을 ‘스토커’라고 칭할 정도였다고 한다. ‘구역’의 존재와 ‘구역’에서 물체를 가져오는 ‘스토커’, 그리고 ‘구역’이 주민에게 위험한 영향을 끼쳤다는 설정 등이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예견했다는 평가를 얻게 된 이유로 추측된다.

 

『노변의 피크닉』에 대한 비평가와 독자들의 해석은 분분하다. ‘구역’이 자본주의의 상징이고 ‘구역’을 둘러싼 벽을 ‘베를린 장벽’이라고 해석하면서 오히려 친소비에트적인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작품에 인용된 성경 구절을 예로 들면서 마지막 장면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라든가 예수의 십자가형이라고 주장하는 시각도 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세계문학사에서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이름이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은 오늘날까지 기능할 수 있는 작품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의 <잠입자>를 비롯하여 이 소설은 영화, 드라마, 연극, 게임 등 다양한 매체로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형제의 작품을 애독했다는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의 단편 중 「안내인」에서 『노변의 피크닉』과 <잠입자> 이야기를 하는데, 실제로 1989년 오에가 세계작가회의에 참석했을 때 모스크바에서 형 아르카디와 대담을 가졌고, 그 모습이 NHK 스페셜 <세계는 히로시마를 기억하고 있는가?>로 방영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구역’과 ‘스토커’의 설정은 지금도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차용하고 있다.

 

『노변의 피크닉』은 1971년 1월 19일 집필을 시작했고 11월 3일 퇴고했으며, 1972년 문예지 《오로라》를 통해 처음 발행되었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1974), 폴란드(1974), 독일(1975), 미국(1977), 스페인(1978 영어 중역), 프랑스(1981), 이탈리아(1982), 핀란드(1982), 헝가리(1984) 등지에서 번역판이 출간될 동안, 정부의 검열로 인해 8년간 단행본으로 발간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1980년대에 소련에서 간행된 판본은 원문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다. 원래 원고와 가장 가깝게 복원된 판본은 1991년이 되어서야 출간되었다. 정부의 검열과 고행이나 다름없는 지난한 출간 과정에 대해서는 보리스의 「후기」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다.

 

우리는 문제가 이념적인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 이 ‘달빛 아래 태어난 얼간이들’의 전형과도 같은 인간들은 실제로 이념과 전혀 무관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어는 최대한 몰개성적이어야 하며, 매끄럽고 장식적이어야 하고 그 어떤 경우에도 과격해서는 안 된다고. SF는 반드시 공상적이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거칠거나 가시적이고 가혹한 현실과 접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독자를 현실과 완벽히 괴리해야 한다고. 독자가 꿈속에서, 몽상 속에서, 아름답고 흠결 없는 사상 속에서 살게 해야 한다고 이들은 생각했다…… 작품의 등장인물은 ‘가서’는 안 되고 ‘발을 내디뎌’야 하며, ‘말해서’는 안 되고 ‘입을 열어’야 하며, 그 어떤 경우에도 ‘외쳐서’는 안 되고 ‘탄성을 내질러’야 한다……! 이는 특이한 미학이자 문학 전반, 특히 SF 소설에 대한 완전히 자족적인 상상이었는데, 일종의 특이한 세계관이었다고 해 두자. 그런데 꽤 많은 이들이 공유한 세계관이었다. 문학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자가 이러한 세계관을 가졌더라면 완전히 무해했겠지만.
_ 361~362쪽, 「보리스 스트루가츠키 후기」에서

 


 

1977 체코슬로바키아 오타카르 코세크 감독 텔레비전 필름 <우주로부터의 방문Návšt?va z vesmíru>―방영 금지 처분
1979 소련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 영화 <잠입자Сталкер> 원작
1990 일본 오에 겐자부로 연작소설 『조용한 생활』 수록 단편 「안내인案?人(スト?カ?) 」의 모티프
1990 우크라이나 라디오드라마 <노변의 피크닉П?кн?к на узб?чч?>
2003 핀란드 키르쿠스 막시무스 극단 연극 <스토커Stalker> 원작
2007 우크라이나 GSC Game World사  비디오게임 시리즈 원작
2008 핀란드 Burger Games사 롤플레잉 게임 <스토커Stalker> 원작
2010 스페인 싱어송라이터 이반 페레이로 음반 <외계의 피크닉Picnic extraterrestre> 헌정
2012 핀란드 에사 루티넨 감독 인디 영화 <구역Vyöhyke> 원작
2013 영국 록밴드 Guapo 음반 <방문의 역사History of the Visitation> 모티프
2016 미국 방송 채널 WGN America 드라마 <노변의 피크닉Roadside Picnic>(앨런 타일러 감독, 매슈 구드 주연)―제작 중단

 

 

1978 존W.캠벨기념상 최종 후보작(최종 2위)
1978 마크트웨인협회 명예 회원 위촉작
1979 쥘베른 스웨덴어번역상 수상작
1981 메스 공상과학소설 페스티벌 ‘최고의 외국도서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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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 Author: Juan Lee (Seung 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