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아직도 개강이 싫으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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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회

학교를 10년 동안 다니고 있는데 아직도 개강이 싫다고요?

그럼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세요?

 

10년 동안 숱하게 개강을 맞이해왔지만 여전히 개강은 적응이 되질 않는다. 아니다. 그냥 적응하기가 싫은 것이다. 그냥 개강이라는 두 글자를 그대로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개강 일주일 전에 그만 개강 증후군에 걸리고 말았다. 방학을 한참 잘 보내고 있다가 문득 몸과 마음이 무거워졌다면 그것은 개강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평소보다 괜히 더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고, 만사가 귀찮아진다면, 무엇을 먹어도 입맛이 없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면 개강 증후군이 확실하다. 이 개강 증후군을 극복하는 방법은…… 글쎄……. 사실 아직도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극복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넓은 아량으로 알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저 다가오는 개강 날을 바라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조금 울적하게 있다가 개강을 맞이하게 될 뿐이다.

 

나의 개강 증후군의 역사는 유구하다. 어느 때에는 일주일 내내 잠만 자기도 했고, 어느 때에는 가는 시간이 아까워 일주일 내내 밖에 나가 놀기도 했다. 어느 때에는 괜히 괜찮다고 큰 소리를 내보기도 했고, 어느 때에는 밤만 되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어느 때에는 괜히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휴학과 자퇴를 알아보다가 그대로 노트북을 덮기도 했다. (사실 진짜 자퇴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정말이다.)

 

개강 증후군 이전에 개학 증후군이 있었다. 학교란 자고로 공부를 해야 하는 곳이 아닌가? 하지만 초등학교 6, 중학교 3, 고등학교 3년 동안 (핑계 같지만) 공부 이외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많은 이들과 함께 꽤 오랜 시간을 한 공간 안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래서 나는 개학이 두려웠다. 지금보다 훨씬 더 외향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다. 학교에 내 자리가 있어도 그것은 온전히 내 자리가 될 수 없었다. 정말 혼자 있고 싶은 순간에도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내 자리를 넘나들었다. 물론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즐거웠지만, 그럴수록 왠지 모르게 자꾸만 더 내 방으로 가고 싶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내향인과 외향인에 관한 담론이 다양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한 아이와 활발한 아이만 있었을 뿐.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나는 내향인과 외향인 그 중간 어디쯤에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일요일 밤에 해주던 개그 프로그램을 온전히 웃으면서 볼 수가 없었다. 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세상도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럴 땐 방으로 들어가 자기 직전까지 기도를 했다.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금요일 저녁으로 돌려달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소원을 들어준 적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엔 시간을 돌려달라고 말하기보다 시간이 딱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주로 마감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 그 빈도는 더 높아진다. 그러면 정말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고, 누구보다 알차게 쓰겠다고 말해본다. 물론 이 소원도 들어준 적이 없다. 당연하다. 들어줄 리가 없다. 그러니 잘 써야 한다. 그것이 시간이든 글이든.

 

학교를 10년 동안 다니고 있는데 아직도 개강이 싫으냐는 질문에 지금은 당연히 그렇다고 말하지만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개강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올까? 아직은 상상이 잘 가지 않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때의 나를 위해서라도 개강 증후군에 걸린 지금 이 시간을 잘 버티고 견뎌보자고 다짐해본다. 아직 타임머신은 나오지 않았고,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며, 늘 그렇듯 오늘 하루는 이미 시작되었으니.

 

이상 개강 증후군에 걸린 한 대학원생의 넋두리였습니다. 작은 다짐을 곁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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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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