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그만 차고 제발 좀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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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회

그때 왜 그랬을까?’

문득 자려고 누웠을 때 민망했던 과거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런 순간이 떠올랐다면 그날은 망한 것이다. 잠을 자기는 그른 것이다. 선명하게 떠오른 기억에 잠시 내가 아니었을 거라고 되뇌어본다. 그러나 그건 명백히 나다. 나의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건 나다. 그래. 어떻게 모든 게 내 마음대로 완벽하게 흘러갈 수 있겠어. 알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해도 그때의 기억이 자꾸만 끼어들게 된다. 5년 전, 10년 전에 있었던 일까지도 말이다.

 

기억을 저장하는 아주 큰 방이 하나 있다고 치자. 그 방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방이 있고, 그 방의 방. 방의 방의 방. 그러니까 그 방 아주 깊숙한 곳에 민망함과 수치심이라는 작은 방이 있다. 이 방은 내가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깊은 곳이라서 다시는 들어갈 수 없게끔 문을 봉인해버리기 쉬운 곳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득 씻을 때나 멍을 때릴 때, 혹은 잠을 자기 직전에 나도 모르게 불쑥 개방되기도 한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극중 인물이 곤란하고 민망한 일을 겪을 때 그 인물과 함께 자신도 견디기 힘든 것을 공감성 수치라고 한다. 나는 실제로 그런 장면이 나온다면 오 제발 이러지 마요. 내게 이런 시련을 주지 마요라고 외치게 된다. 그리고 빨리 감기로 넘길 수만 있다면 그대로 넘겨버린다. 차마 눈 뜨고 못 보겠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완벽한 시나리오가 있다. 그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바로 NG가 난다. 감독의 OK 사인이 떨어질 때까지 그 역할을 맡은 배우는 최선을 다해 주어진 행동과 대사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삶은 야박하게도 내가 NG를 내도 그다음이 없다. NG가 났다면 NG가 난 상태로 계속 시간이 흘러갈 뿐이다. 그리고 집에 와서 몇 년이 지난 일이라도 이렇게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아오. 그 말은 하지 말 걸…… 하고 이불을 차면서 말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래. 시뮬레이션을 가동해보자. 나는 그날 어떻게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몇 번이고 그 장면 속으로 뛰어들어본다. 상대방이 앉아 있고, 내가 민망함과 수치심을 느꼈던 그 순간에 실제와는 다른,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본다. NG가 나도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오듯이 기억이 쏟아진다면 나는 그것을 잠그거나 두 손으로 받거나 해야 한다. 이 물을 두 손으로 받는 것도 나고, 이 물을 잠글 수 있는 것도 나다. 그러니까 나를 어르고 달래는 일도 내 몫이고,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물론 위로는 정말 어렵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위로라는 게 별거 아닐지도 모른다. 위로의 기본은 공감이다.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할 순 없지만 그 기분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면 위로를 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며칠 전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3개월 전에 있었던 일을 꺼내면서 서로 사과를 주고받았다. (3개월 전 이야기를 이제 한다니 웃기는 일이지만 둘은 꽤 진지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상황을 설명하고 불편하게 했다면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지인도 반대로 나에게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전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내가 정말 불편해서 다시는 안 본다고 하면 어쩌지 하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는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다. 전혀 불편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 지인도 자신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으니 더 이상 걱정하지 말자고 전해주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던 것뿐이라고. 자신도 같은 기분이었는데 이야기를 나누어서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아주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만 했는데도 왜 이렇게 위로받는 기분이 드는 걸까? 위로는 정말 생각보다 별거 아닌 걸까?

 

누구나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걱정의 반 이상은 정말 쓸데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들이 어떻게 안 생길 수가 있겠는가? 후회가 있다면 반성이 있을 테고 반성이 있다면 지금의 내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간은 왜 이렇게 실수를 많이 할까? 아니다. 실수를 많이 해서 인간인 게 아닐까? 역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나라는 인간은 왜 이렇게 부끄러움이 많아서, 왜 이렇게 걱정거리가 많아서 잠을 잘 자지 못하는지. 그런 생각이 든다면 고이 접어 넣어놓자. 열어보지 말자. 생각이 난다고 해도 잠그자. 어차피 되돌아갈 수 없다. 과거는 다 잊는 거야. 다 잊기 위해서 노력해보는 거야.

 

이불 속에 있는데도 더 깊은 이불 속을 찾아 들어가고 싶다. 어쩌면 내가 나를 꽉 안아줄 수 없어서 나는 더욱 두꺼운 이불을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불은 죄가 없다. 이불 그만 차고 제발 좀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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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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