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다른 정신적 표현

페이스북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블로그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링크 복사하기

4 회

한데 이 값진 회의의 길로, 더 좋게 말하면 현명한 상대주의의 길로 여러분을 초대해주려는 정신적 활동이 문학입니다. 하기야 문학만이 그런 안내자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우리는 철학공부를 통해서, 혹은 종교에 들어가면서 자기가 품어온 생각에 대한 의심을 품고, 더 값진 새로운 의심의 길로, 그리고 마침내는 올바른 길로 들어서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또 그림이나 음악을 대하면서 자기 자신의 편견을 의심하고 그것에서 해방될 수도 있습니다. 피카소의 그림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복합적으로 보게 만들어주고 브람스의 음악은 일상생활에서 맛보지 못하는 깊은 파토스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그리고 이런 철학적·종교적·예술적 체험 앞에 우리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놓음으로써, 우리는 한 군데에 고정됨이 없이 더 깊은 인식과 더 넓은 이해와 더 큰 지혜를 향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학이 철학이나 종교나 예술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지만 알기 쉽게 한두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될 듯합니다.
문학 역시 방금 말한 것과 같은 값진 가능성을 여러분에게 베풀려고 합니다. 그리고 문학은 다른 어떤 종류의 정신활동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학은 현실적으로 체험하거나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구체적 사례事例를 통해서 진선미眞善美와 관련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철학과 마찬가지로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철학처럼 추상적이며 개념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 진실이 무엇인지 말하지는 않습니다. 가령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두고 이야기할 때, 철학자는 동서고금의 행복론을 비교·검토하고 그 개념을 설정하고 도덕, 진리, 죽음과 같은 다른 개념들과의 관련을 따지곤 합니다. 그러나 소설이나 시는 그런 전반적인 문제에 추상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습니다. 소설가라면 어떤 인물과 사건을 통해 행복을 찾아가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펼치면서 독자로 하여금 행복이 무엇이며 그것이 가능한지 실감하게 합니다. 또 시인은 자신의 체험과 상념을 독특한 언어로 아로새겨서 행복의 실체나 반대로 그 허상을 제시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문학은 종교처럼 초월적인 어떤 존재에 관한 관심을 표명합니다. 삶의 현실에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하는 이상, 그것을 넘어서는 가치를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고 그런 생각은 당연히 문학에 반영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말해서 종교적 실천 그 자체가 아니라 종교적 지향志向입니다. 그리고 문학에 있어서는 종교적 지향이 반드시 어떤 신앙으로 귀착되지는 않습니다. 여러 가지의 불행을 겪은 끝에 마침내 신을 발견하는 이야기는 많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 아닌 다른 대상(가령 자연이나 어떤 인물)을 섬기게 되는 이야기도 있고, 또 결국은 아무런 구원의 원리도 못 찾고 절망에 빠지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야 어떻든 간에 종교적 지향이 전무한 문학작품이란 없다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문학이 미술이나 음악과 가질 수 있는 관계에 관해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문학은 미술도 음악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정지되고 응고凝固되어 있는 한 폭의 그림의 밀도를 문학이 어떻게 재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문학은 언어로써 한 풍경을, 한 인물을, 그리고 심지어 마음의 상태를 묘사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언어가 짜나가고 환기하는 그림 아닌 그림을 독자는 그의 마음속에서 진실한 그림으로 만들고(이른바 심상心象이라는 것이죠), 또 화가는 그렇게 언어로 묘사된 것을 화필로 결정結晶시켜놓을 수도 있습니다. 음악과의 관련도 마찬가지죠. 한 편의 시는 음악 그 자체는 아닙니다. 시는 멜로디가 확정되어 있는 노래와는 다릅니다. 또 언어적 의미를 넘어서 있는 기악과는 더더구나 다릅니다. 그러나 시의 (그리고 때로는 산문의) 운율은 그것이 음악성을 빼놓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며, 또 그것이 쉽게 노래로 전환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이외로도 문학이 정치·경제·문화·역사의 모든 면에 걸쳐서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것들을 글 속에 담아넣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령 역사소설은 때로는 역사 그 자체의 서술보다도 더 절실하게 한 시대의 현실과 문제를 부각시켜주는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런 현실을 재현하겠다는 욕심이 지나쳐서 도리어 재미없는 소설이 되거나 따분한 장시長詩가 되는 일조차 없지 않죠. 또한 한 시대를 그리겠다는 소설에서 정치를 비롯한 사회상을 어떻게 빼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철학도 아니면서 인생을 논하고 종교도 아니면서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순수한 예술도 아니면서 그 요소들을 지니고 사회적·개인적 모든 활동에 관심을 갖기도 하는 문학은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일까요? 카멜레온 같기도 하고 잡동사니 같기도 하고 또 팔방미인 같기도 한 이 괴물을 어떻게 정의하면 될까요? 그것은 과연 내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의 다른 어떤 정신적 활동보다도 더욱 효과적으로 우리를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닌 게 아니라 ‘문학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문학연구의 핵심적 과제가 되어 있고 천차만별한 대답들이 우리를 더 어지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문학은 플라톤이 주장했듯이 인생을 생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편이기는커녕 도리어 쓸데없는 헛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고 올바른 길로 들어서는 것을 방해하는 해로운 것일지도 모르죠. 사실, 옛날 사람들 중에는 문학공부를 하거나 소설 따위를 읽는 자식을 보고는 타락했다고 한숨짓는 부모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문학이 그렇게 쓸데없고 해로운 것이라면, 과거에 수천 년 동안 문학이란 이름의 글쓰기가 존속되어온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가까운 예로, 〈노벨문학상〉이라는 것이 벌써 100년이나 있어 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어서 그 수상자가 나왔으면 하고 온 국민이 바라고 있는데, 문학이 백해무익한 것이라면 왜 그런 제도가 있고 그런 바람이 있을까요?
그러니 여기에서 다시 한번 물어봅시다. 철학도 종교도 예술도 아닌 문학, 그런 분야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중의 어떤 것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문학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문학이란 알쏭달쏭한 글을 쓰고 읽는 행위가 우리에게 유용한 것이라면 어떤 점에서 그럴까요?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한 실마리로서 우선 어린 시절의 체험으로 되돌아가 생각해봅시다.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