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물음을 지녀나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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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짐작하겠죠? 죽음을 생각하건 기쁜 일이 있건 또 실패를 하건 간에 우리는 항상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고 자신에게 묻기도 하고 또 서로 묻기도 하는데, 이 물음은 인간이 로봇처럼 되지 않는 이상 변치 않는 물음입니다. 기쁘나 슬프나, 젊거나 늙거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이 물음을 팽개칠 수가 없습니다. 이 물음이야말로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답의 시도야말로, 세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러분과 나를 잇는 닻줄입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무엇이냐는 이 물음, 그리고 이에 당연히 뒤따르는 또 하나의 질문, 즉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물음은 매우 어렵고 그 범위도 매우 넓은 것입니다. 옛날옛적의 성현聖賢들로부터 오늘날의 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람들이 그 대답을 주어왔습니다. 여러분은 당장에 석가가 말한 공空, 공자가 말한 인仁,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 예수가 강조한 영생,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맹목적 의지, 톨스토이가 내세운 사랑, 또 카뮈가 말한 부조리와 같은 천차만별한 개념들을 상기할 터입니다. 여러분은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그런 것을 교실에서 배웠거나 또 독서를 통해서 스스로 알게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개념들이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문제가 더 분명해지기는커녕 더 어려워집니다. 더구나 근본적으로 다르게 보이는 그 대답들을 서로 견주고 살필 때는 머리가 더 어지러워집니다. 가령 지금 여러분이 나에게 ‘당신은 어떤 근거에서 어떤 인생관을 마련했습니까?’라고 물으면 나 역시 당황할 것 같습니다.
내 긴 인생을 돌이켜볼 때 나는 한 견해로부터 다른 견해로 왔다갔다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인생에 별 뜻이 없어 보이다가도 또 어떤 때에는 무슨 뜻이 있는 듯이 생각되곤 했지요. 그래서 젊은 시절에 벌써 확고한 인생관을 마련해 가진 사람을 보면 지금도 부럽습니다. 평생을 두고 신을 믿어온 사람들이나 한결같이 민족통일을 위해서 싸워온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돈벌이에 악착같이 매달려온 사람들을 대할 때조차도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확고한 인생관이 과연 진정한 것일까, 무슨 편견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가기도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확고한 신념보다는 몽테뉴처럼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의심을 더 귀중하게 여기면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회의주의는 가랑잎처럼 정처 없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단순한 방황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정처를 찾아내기 위한 회의주의인 동시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회의주의였습니다. 나는 나의 후배들이 나와 같은 회의의 길로 접어들어, 마침내는 더 진정하고 더 현명한 인생관을 세우기 위한 값진 의심을 쌓아나가기를 절실히 바랍니다. 바로 그런 정신적 도정道程이 가장 효과적으로 이어져 나갈 수 있는 시절이 정열과 지성으로 넘쳐흐르는 청년 시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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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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