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과 숨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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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회

우리는 이 시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윤선도 자신의 고귀한 기개氣槪의 은유로 읽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윤선도라는 작자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소나무의 한결같은 위용威容을 낙엽수와 대조하여 부각시킨 명시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겁니다. 마치 후덕厚德한 인품을 갖춘 귀부인을 예쁘장하지만 변덕스러운 기녀妓女와 대조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마지막 줄입니다. 여기에서 작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상관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눈서리를 꿋꿋하게 견뎌내는 잎과 가지의 모습이 사실은 땅속에 깊이 박힌 뿌리의 힘에서 연유한다는 것이지요. , 소나무의 소나무다움의 비밀은 보이지 않는 그 뿌리에 있으며, 입과 가지만을 보고 그것이 소나무라고 말하는 것은 피상적인 견해에 불과하다는 말이 됩니다.

내가 윤선도의 시조를 너무 아전인수我田引水했나요?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 작품은 리얼리즘의 본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말을 들으면 여러분은 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군요. 왜냐하면 리얼리즘이라는 말은 보통 소설을 두고 쓰는 말인데 시를 들먹였으니까요.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그 용어에 대해서 남들과는 색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겁니다. 나는 리얼리즘이란 다름 아니라 우리의 관습이나 부주의나 편견 때문에 가려져 있는 참된 현실을 들어내고 제시하려는 모든 문학적 작업이라고 넓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산문으로 된 작품만이 아니라 시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식으로 리얼리즘이라는 말을 이해하면 외연外延이 너무 확대되어서 의미가 희박해지지나 않을까요? 그 이야기는 뒤에서 좀더 자세히 하기로 하죠.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나는 현실탐구의 정신으로서의 리얼리즘을 훌륭한 작품의 가장 중요한 척도의 하나로 삼아왔고 앞으로도 그 규준을 끝끝내 지켜나가려고 한다는 나의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해두려고 합니다.

한데 이런 리얼리즘의 작품들은 상식에 어긋나는 듯한 말을 하기가 일쑤입니다. 앞서 인용한 팝송의 구절을 다시 인용하자면, 그런 작품들을 쓰거나 읽는 사람은 이방인이며 이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낯익었던 사람이나 사물들이 야릇하게 보입니다. 혹은 낯익은 것 밑에서 미처 몰랐던 야릇한 것이 보입니다. “당신의 얼굴을 한참 동안 거울 속에서 들여다보아라. 그러면 원숭이가 태어날 것이다라는 뜻의 말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물론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온 것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과장해서 한 말이지만, 모든 현상의 속에, 그 배후에 혹은 그 너머에 숨어 있는 참이 있다는 예감과 확신이야말로 진정한 작가와 시인과 또 그들의 작품을 읽는 진정한 독자를 지탱해주고 괴롭히기도 해온 원리입니다. 그리고 그 참은 윤선도의 시조에서 지적된 뿌리처럼 현상의 근원적 원인일 수도 있고, 또 반대로 현상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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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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