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제기로서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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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회

그렇다면 분명한 지식을 전하지도 못하고 체계도 없는 이러한 천차만별한 문학적 사상事象을 두고 우리는 정말로 참이니 앎이니 하는 말을 적용할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문학이라는 가짜 이야기에 무슨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고대 희랍의 대표적 철학자인 플라톤의 말을 들으면 시인은 올바른 참의 길로 가려는 이성理性을 어지럽히는 헛소리를 하는 장본인이니 나라에서 추방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그 이후로도 절대적 진리를 내세우건, 도덕적 질서를 내세우건 혹은 혁명의 이름을 빌리건 간에, 사회의 지배자들은 예술을, 특히 언어예술인 문학을 박해해온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 모두가 인간이 나가야 할 올바른 길에서 사람들을 벗어나게 하는 가지가지의 유혹과 파괴와 타락을 일삼아온 문학은 고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김지하의 오적,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 그리고 오늘날에는 루시디의 악마의 시』…`우리는 세계의 도처에서 그런 예를 무수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고발된다는 것은, 제멋대로 떠들어대고 제멋대로 읽히는 듯한 문학에 사실은 큰 힘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런 객관성도 확증도 없는 그 헛소리가 때로는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의 힘만큼이나 기존 질서에 타격을 줄까봐 두려워서가 아닐까요? 달리 말하면,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수호자와 권력자가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문학은 그들이 내세우는 올바른 길과는 크게 어긋나는 진실한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이 널리 독자의 동의同意를 얻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천차만별한 발언을 하는 문학작품들 중에는 제 나름대로 기존의 질서와 사상을 비판하고 거부하려는 것들이 있으며, 그런 표현들이 가치 있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내가 이의제기異議提起의 문학이라고 불러온 이런 문학이야말로 나는 인간의 가장 귀중한 활동의 하나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한데 이 이의제기는 반드시 사회적·국가적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욱 자주, 그리고 더욱 효과적으로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시나 소설을 읽는 것은 말하자면 깨우침을 위한 것인데, ‘깨우침이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관념, 편견, 신념 따위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의심하고 부정하고 거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새로운 앎을 맞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새로운 앎이 과연 어떤 결정적인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베풀어줄까요? 그것은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비개별적인 과학조차 결정적 대답을 줄 수 없는데 하물며 개별적인 문학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근원적 존재의 문제로부터 자연, 사회, 역사, 타인, 자아의 모든 문제에 이르기까지 가지가지의 이의제기를 하는 문학적 표현들, 태양 아래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살피고 따지는 이 무한한 문학적 표현들은 우리로 하여금 참을 향하여 더 많이 생각하게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런 사유思惟의 길로 함께 가자는 것이야말로 무릇 훌륭한 작품이 독자인 우리들에게 던지는 호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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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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