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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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회

그렇다면 이러한 완전한 앎을 향한 인간의 불완전한 시도가 문학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그 시도는 인간 자신과 세상을 밝히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어온 것일까요? 이 질문은 대답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나는 앞에서 문학 역시 참을 향한 인간의 노력의 일부를 이룬다는 뜻의 말을 했지만, 상상이 만들어낸 가짜 이야기가 어떤 점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의심을 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여러분 자신도 그런 의심을 가져보았을 텐데, 어떻게 하면 내 뜻을 요령 있게 설명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군요. 다만 하나의 방법으로서 과학이 베푸는 앎과 문학적인 앎을 비교해서 잠깐 언급해보면 여러분이 갈피를 잡는 데 다소라도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과학적 지식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그 진정성眞正性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인간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지구는 일정한 속도로 스스로 회전하면서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언제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오늘날에는 유전자가 우리의 생체의 근원적 비밀을 간직하고 있고 그 조작 여하에 따라서는 많은 질병을 고치고 심지어 인간 자신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도 이미 상식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개개인의 경험을 넘어선 참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과학적 설명이 요지부동한 영원한 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지동설地動說이 나오기까지는 천동설天動說이 틀림없는 진리였고 그것으로 우주의 구조가 객관적으로설명되었습니다. 유전자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세포가 궁극적 실체로 인식되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만큼은 진실로 불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주탐사는 지구와 태양의 관계를 전혀 다른 견지에서 설명하고, 생명과학은 유전자보다도 더 결정적인 다른 어떤 요소와 그 구조로서 생명현상을 밝히는 날이 앞으로 오지 않는다는 확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 과학적 앎의 객관성이라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의심스럽고, 그것 역시 인간의 불완전한 인식의 연속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나는 과학적 앎이 문학적 앎과 같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나는 과학적 지식은 문학적 앎에 비하면 그래도 역시 객관적이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너무나 뻔한 이야기입니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차이는 과학적 지식은 비개별적非個別的인 반면에 문학적 앎은 개별적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과학이 추구하는 참은 비록 그것이 머지않아 거짓으로 밝혀질 취약한 것이라 할지라도, 어떤 한 개인이나 어떤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참이 아닙니다. 철수에게는 유전자가 있고 미숙에게는 그것이 없다는 따위의 말은 과학에서는 절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인 이상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생명과학자의 관심의 대상은 철수도 미숙도 아니라, 그 유전자를 다 같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인간입니다. 그러나 문학적 참은 이와 정반대로 개별적인 체험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작품에 나오는 인물의 경우에도 독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햄릿의 참은 숙부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집념과 그 집념에서 비롯되는 존재의 착란錯亂이며, 춘향의 참은 모든 역경을 넘어서는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가 다 같이 인간의 일이라는 것 이외로는, 그 사이에 어떠한 공통분모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또한 독자들 사이에서도 햄릿과 춘향의 체험을 각각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는 문제에 관해서 아무런 동의同意가 없습니다. 햄릿의 생각과 행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소산으로도 해석되고 또 더 깊이 인간의 실존적 고뇌의 표현으로 읽혀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춘향전에 대해서도 당시의 양반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보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이른바 부덕婦德과 성적性的 매력을 겸비한 이상적 여성상을 그 여주인공에서 찾아보는 독자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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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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