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진리 그리고 참

페이스북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블로그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링크 복사하기

17 회

우리의 만남도 벌써 세 번째가 되었군요. 내가 앞서 두 번에 걸쳐서 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여러분뿐만 아니라 문학을 오랫동안 공부해온 사람들도 대개 동의하리라고 믿습니다. 교양을 쌓기 위해서이건 전문적 지식을 얻기 위해서이건 간에, 문학작품을 읽어온 사람은 그 읽기가 인생에서 보람 있는 일이며, 그 특별한 언어가 우리에게 귀중한 것을 베푼다는 견해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귀중한 것이 무엇이냐는 점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따지기 시작하면 문제가 매우 복잡해지고 이설異說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납니다. 특히, 인생의 가장 귀중한 활동 중의 하나는 진리를 탐구하고 터득하는 일인데, 문학이 절실한 감정의 표현이나 고상한 취미의 함양이나 아름다움의 구현에는 크게 공헌할지 몰라도 진리로 이르는 길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예부터 오늘날까지 많이 있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여러분은 당연히 내게 묻겠죠. 또 물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니 우선 나의 입장부터 밝혀두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하기야 그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많은 전문적인 용어들을 동원하고 여러 학설과 이론을 견주고 또 논증論證을 해나가야 하겠지만, 이 자리는 그런 일을 하기에 적합한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다가는 여러분이 모두 달아나버릴 테니까요.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지나치게 학문적인 이야기는 회피하고, 이렇게만 말해두려고 합니다. “문학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더 다양하게 그리고 더 깊이 참을 향해 가려는 정신적 활동이다.” 나는 오늘은 이 명제에 따라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우선 여러분이 한 가지 주목해주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그것은 내가 방금 언급한 명제에서 진리라는 말 대신에 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그 말을 썼을까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실마리로서 이라는 말을 영어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봅시다. 필경 ‘truth’라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한데 이번에는 거꾸로 영한사전에서 ‘truth’라는 말을 찾아보세요. 아무리 얇은 사전이라도 진실진리라는 두 말을 구별해서 적어놓고 있을 겁니다. 사실, 영어에서는 ‘truth’라는 한 가지 단어로 되어 있는 의미내용을 우리는 구별해서 씁니다. 가령 영국이나 미국의 법정에서 거짓말을 안 하겠다고 선서를 할 때 “I swear to tell the truth, the whole truth, and nothing but the truth”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람이, “진리를, 모든 진리를, 오직 진리만을 말하기를 서약한다고는 옮겨놓지 않을 겁니다. 그 경우에는 진실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겠죠. 그 반면에 ‘God’s truth’‘mathematical truth’와 같은 말을 번역할 때는 진리라는 말을 쓰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진실과 진리라는 두 말을 명확히 갈라써야 할 근거는 무엇이냐는 질문이 당연히 나와야 합니다. 내 곁에 있는 작은 국어사전을 보면 전자는 거짓 없음이며 후자는 참된 이치라고 되어 있습니다. 감히 정의라고도 할 수 없는 매우 간단한 진술입니다만 그렇게 받아들여서야 좋을 것 같습니다. , 진실은 일상생활이나 우리 자신의 사고, 감정, 체험 등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허위가 없는 것을 뜻하고, 진리는 더 고차원적으로 우리의 일상적 경험을 넘어서고 또 그 원리가 되어야 하는 근본적인 이치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죠.

한데, 여기에서 잠시 자문해보기로 하죠. 진실과 진리 두 가지를 모두 합해서 부를 수 있는 우리말은 없을까요? 다시 영어를 들먹이면, ‘truth’라는 단어를 한 가지로 옮겨놓기 위해서는 어떤 말이 적합할까요? 나는 처음에는 진실이라는 말의 범위를 넓혀서 그 안에 진리라는 개념을 포함해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곧 그것은 관용에 어긋나서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라는 말을 쓰면 좋겠다고 고쳐 생각했습니다. 내 어감으로는 그 말이 일상적 경험에서의 거짓 없음을 뜻할 수 있는 동시에 초월적 진실, 즉 진리에 대해서도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내가 왜 구태여 그런 식으로 말과 씨름을 하고 문학은 참을 향한다고 말했는지 아시겠어요? 여러분도 벌써 짐작했겠지만, 나는 문학이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이어나갈뿐 아니라, 이른바 진리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철학과 함께 나누어 가지고도 있다고 줄곧 믿어와서 그런 말을 한 겁니다.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