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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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회

하지만 우리는 언제까지나 작품 속에 갇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좋건 싫건 간에 현실의 세계로, 생존이 영위되는 마당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때로는 침식마저 잊고 빠져들었던 그 허구의 세계, 그러나 우리가 읽기라는 체험을 통해서 진실로 전환시켰던 세계는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일까요? 그 체험은 한낱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고,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행위는 아무리 자주 되풀이되어도 그때마다 덧없는 그림자만을 남길 뿐일까요?

지금까지 내 강의의 취지를 충분히 알아들었을 여러분은 내가 괜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죠. 사실, 괜한 소리를 한 겁니다. 다만 그렇게 문학을 별다른 가치 없는 여분의 사치로 생각하는 속중俗衆들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다시 한 번 항의해보고 싶었던 것이죠.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기성의 관념을, 그리고 소박한 감정을 철석처럼 믿고 그 진정성眞正性을 검토해보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비록 어떤 시나 소설을 읽는다 해도, 그들의 생각이나 감정에 도전하는 것들은 도중에 내던지거나 혹은 아예 상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들이 반기는 것은 자기들이 지켜온 관례를 확인해주는 순응주의적인 것들뿐이죠. 그것이 다름 아닌 대중문학입니다.

한데, 어떤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나는 여러분이 바로 이런 다른 사람들에 속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죠), 허구의 세계로부터 현실의 세계로 돌아올 때 이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도 여러분도 다 함께 바라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허구의 세계에서의 머묾이 덧없이 사라지기는커녕, 도리어 그 기억과 충격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달라지고 현실이 달라진다는 체험이야말로 작품 읽기에서 가장 귀중한 것입니다. 비록 춘향전과 같이 진부하다고조차 말할 수 있는 작품에서도 여러분은 값진 반성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의 손아귀에서 풀려 현실세계로 되돌아왔을 때, 여러분은 우선 이런 생각을 하게 되겠죠. 춘향과 몽룡의 변치 않는 사랑이 과연 현실적으로 있을까, 그것은 가짜 이야기에서나 있는 일이 아닐까 하고요. 그때 여러분은 결국 작품에 속았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또 정반대로 영원한 사랑이 있을 수 없는 현실이란 무엇인가 하고 새삼스럽게 우리의 삶의 한계를 대조적으로 재인식하게 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춘향전과 같은 소설이 시대를 넘어서 우리에게 읽힐 수 있는 것은, 인간사人間事가 덧없고 순수하지 못하다는 인식에 시달릴수록 더욱 절실해지는 영속永續과 순수에 대한 욕망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르죠. 아마도 작가 역시 이러한 인식과 욕망 사이의 모순을 의식해서 그것을 쓴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부질없는 추측은 그만두고, 다소 길어진 이번의 강의를 한두 마디로 줄이려 합니다. 우리는 방금 예시한 것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를 모든 문학적 창작에 대해서 할 수 있습니다. 문학적 창작은 요컨대 현실을 일종의 도약대跳躍臺로 삼아서 이루어집니다. 어떤 의미에서이건 간에 현실에 대한 불만을 넘어서 보려는 욕망이 없다면 작가는 글을 쓰지 않을 것이며 독자는 그의 작품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예컨대 이른바 리얼리즘의 문학은 상식적인 현실인식의 미흡함을 자각하고 현실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하려는 욕망의 소산이며, 유토피아소설, 환상소설, 풍자소설 따위는 각기 제 나름대로 현실에 대한 비판의 산물입니다. 서정시를 비롯한 모든 시적 노력 역시 단순한 감정의 토로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언어로서는 접근할 수 없는 진실과 실존에 더 가깝게 다가서고 그것을 남들과 나누려는 시도입니다. 이제, 문학작품의 허구성에 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했으니, 다음부터는 그런 점을 살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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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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