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언어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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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회

이렇게 보면 결국 문학이라는 구조물은 그 소재로서 지시대상이 있는 경우라도(이른바 리얼리즘의 소설에는 역사소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 실재實在하는 소재를 가공의 이야기로 재구성하거나 혹은 그 속에 편입시킨 언어적 허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문학적 구조물은 언어의 주된 목적과는 동떨어진 차원에서 매우 특별하게 언어를 사용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잠깐 해보죠.

언어란 그 기본에 있어서 현실생활, 특히 생존과 밀접하게 관련된 욕망이나 의사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우리는 무엇에 관해서 누구에게 말을 겁니다. 가령, 등교하는 아이는 어머니에게 밥을 달라고 하고(욕망의 전달), 어머니는 비가 오니 우산을 가져가라고 이릅니다(정보 및 의사의 전달). 국민은 정부에게 잘살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정부는 국민에게 정치와 경제에 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렇듯 언어활동은 글로 되건 말로 되건 간에 발신자가 특정한 내용을 특정한 수신자에게 전달한다는 삼위일체의 관계를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만일 이 관계가 흐려지거나 방해를 받으면 언어는 그 본래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말하는 사람의 발음이 분명치 않거나 소음 때문에 음성이 들리지 않거나 혹은 듣는 사람이 방심하고 있는 경우가 그런 거죠. 한데 문학적 언어는 바로 이러한 삼위일체의 관계가 분명히 설정되어 있지 않은 언어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애초부터 결함을 지닌 언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군요.

우선 앞에서 본 것처럼 문학작품은 가짜 이야기로 되어 있으니까 그것은 기본적 생존과 그렇게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춘향이 살건 죽건, 임꺽정을 읽었건 안 읽었건 실생활에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가공의 이야기는 아무런 정보가치도 없는 여분의 언어, 좀 심하게 말하면 없어도 좋은 언어입니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는 누구를 수신자로, 즉 독자로 삼는 것일까요? 우선 당대의 사람들에게 읽혔겠죠. 그러나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읽었을까요? 가령 춘향전이 애초에 서민들 사이에서 돌아다녔다고 하더라도 이른바 양반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는 독자가 없었을까요? 그리고 그 시대와는 멀고 먼 오늘날 여러분은 그 독자가 아닌가요? 또 그것이 외국어로 번역되었으니 전 세계에 독자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죠. 이렇듯 가공의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는 실생활과 인연이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수신자인 독자도 특정할 수 없는, 말하자면 바람에 날리는 꽃가루와 같이 아무 데로나 퍼질 수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더욱 딱한 일로는 그 메시지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 없이 산재하는 독자들에 의해서 멋대로 다루어지는, 즉 독자에 따라 제 나름대로 해석되는 형편에 빠집니다. 하기야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런 점에 문학 특유의 재미와 뜻이 있는 것인데 그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이번에는 메시지의 발신자인 작가는 어떤 입장인지 잠시 살펴보기로 합시다.

 

 

작가의 의도와 작품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분명한 것이 한 가지 있죠. 그것은 작가가 소설을 쓰건 시를 쓰건 간에 자신의 여러 체험에 대해서 반성, 선택, 재구성의 작업을 가하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작품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그 행위는 이유 없는 순수한 행위는 아니겠죠. 그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미지, 인물, 사건 따위를 독자가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즉 독자에게 호소할 마음이 없고서야 무엇 때문에 작품을 쓰고 발표하겠습니까? 그러나 독자가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작가가 그의 구성물에 담아넣으려던 어떤 특정된 의미를 독자가 그대로 어김없이 파악한다는 것일 테죠. 그래서 어떤 작품의 내용이 난해하거나 모호하면 그 작가에게 직접 찾아가서 당신은 과거에 어떤 체험을 했었기에 이 작품을 썼고, 독자는 그것을 어떻게 읽으면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될까요?’ 하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신문에는 그런 기사가 많이 실립니다. 한데 작가에 따라서는 겸손에서이건 교만에서이건 간에, ‘작품의 이해와 해석은 나와는 상관없고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라고 잘라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반대로 어떤 작가는 누가 묻기도 전에 자신의 의도를 밝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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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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