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에게 가하는 망치: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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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회

말레우스 말레피카룸(1950년 판본)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마녀 개념은 13세기부터 15세기 초엽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잡혀가다가 15세기 후반 완전히 자리 잡았다. 그 정점을 차지한 책은 헨리쿠스 인스티토리스Henricus Institoris와 야코부스 슈프렝어Jacobus Sprenger1486년에 출판한 말레우스 말레피카룸Malleus Maleficarum(‘마녀에게 가하는 망치라는 뜻)이다.* 이 책은 이때까지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이전의 논의를 엄정한 신학적 논증 안에 종합했으며, 또 이론으로부터 실무에 이르기까지 모든 내용을 망라했다. 쉽게 말해서 이 책은 교회가 악을 개념화하는 방식에서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의 정점이었다.

저자들이 밝힌 이 책의 목적은 첫째, 마녀 존재를 부정하고 마녀 처벌을 방해하는 자들을 논박한다, 둘째, 마녀 문제에 대응해야 하는 설교자들에게 논거, 사례, 충고를 제공한다, 셋째, 마녀재판의 재판관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과연 마법이란 무엇이며, 누가 마녀 혹은 이단인가를 정하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어떤 인간이 진짜 이단인가, 그가 내면에 정말로 신을 부정하는 그릇된 사고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는 오직 신만이 판단할 수 있다. 어떤 인간의 행위가 과연 신의 뜻을 거스르는 오류의 결과인지 아닌지 다른 인간이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 신학자의 견해이다. 그렇지만 이단 재판관으로서는 누군가가 이단인지 아닌지 합법적 판단에 의해 결정해야만 한다. 세상이 너무나도 큰 위험에 처해 있으므로 어떻게든 악의 세력을 발본색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쓰였다.

사실 현대의 우리로서는 이 책을 읽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중세 철학의 논증 및 서술 방식에도 익숙해야 하며, 동시에 그 시대의 철학 논의 내용을 많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서술 형식은 스콜라 철학의 표준적인 논증 방식을 따르고 있다. 우선 도입부에 간접 질문을 던진다(TT).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부정적인 답변, 즉 잘못된 답에 유리한 주장들을 먼저 제시한다(AG). 그다음 반대논증을 한다(SC). 이렇게 찬반 양쪽의 논증을 제시한 다음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CO). 그다음에 앞에서 제기되었던 잘못된 주장들을 하나씩 논파한다(RA). 이런 서술 방식을 잘 이용하면 신학적 내용을 아주 설득력 있게 전할 수 있다.

이런 형식에 담아 이 책에서 전개하는 주장은 현재 우리에게는 기묘하거나 심지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악마는 진짜 눈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다, 그려 붙였다). 악마는 인간의 정액을 훔쳐다가 여성들을 임신시킬 수 있는가(: 가능하다, 악마의 동작이 대단히 빨라서 정액이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사실 이런 내용이 왜 그토록 중요했는지 의아하지만, 그 당시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면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현재 우리는 악마가 마녀를 홀려 사악한 일을 하게 한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지만, 그런 일들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과연 악마와 마녀가 어떤 존재냐 하는 것은 아주 세밀하게 논구해야 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저자들은 모든 상황에서 만족스러운 새로운 카테고리로서 마녀를 창안했다. 이 책은 단순히 그 이전부터 전해오는 자료들을 편찬한 게 아니라 기존의 경험과 권위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시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이 책의 지나친 반여성적 성향이다. 이 책은 악마의 하수인이 여성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정당화시켰다. 이에 따르면 여성은 잘 속고, 충동적이며, 감정적으로 극단적 반응을 보이기 십상이므로 남성보다 약한 존재다. 그렇게 심신이 미약하기 때문에 더 쉽게 악마의 덫에 빠진다는 것이다. 악마는 특히 성적인 문제와 관련될 때 가장 힘이 센데, 바로 이 지점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천성적으로 더 취약하다. 이 책 전반에 걸쳐 여성은 육체적 욕망과 동의어로 취급되며, 이런 육체적 욕망이 마술의 근원이라고 해석된다. 마술을 이용해서 연인을 획득하고 또 이전 연인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여성의 욕구가 악마와의 성적 교접을 가져오며, 그로 인해 더 흉악한 죄들을 짓는다. 마녀는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방해해서 자신과 사랑에 빠지도록 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에게 낙태와 불임, 성적 무능력impotence을 유발시키며, 심지어 남자들의 성기를 공중으로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 후일 이 책의 개념을 근거로 마녀재판이 이루어질 때 성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된 것도 이런 논리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마녀의 개념은 이 책에서 정립되었으며, 후대의 모든 텍스트들은 이 책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인쇄술의 발달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책은 1500년까지 8, 1520년까지 다시 5쇄가 추가로 출간되었다. 1576-1670년 동안 이 책의 출판이 다시 붐을 일으켜 3-5만 권이 더 보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580년대에 유행한 마녀 및 마술에 관한 총서들을 보면 대개 제1권의 자리는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이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마녀에 관해서는 누구든지 준거로 삼아야 하는 고전이 된 것이다. 누구든 마녀재판에 관한 저서를 쓸 때면 이 책을 주요 전거로 내세웠다. 예컨대 피코 델라 미란돌라도 마녀에 관해 논할 때 이 책을 길게 인용하면서, 저자를 아우구스티누스 및 그레고리우스와 동렬의 인물로 거론했다. 16세기 후반이 되면 작가들은 더 이상 마술이 무엇이냐에 대해 고민할 필요 없이 이 책 내용을 전제로 했다. 마녀의 존재에 대한 반대론을 펼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이 책 내용을 공격했고, 이에 대해 재반론하는 사람도 이 책 내용을 옹호하는 논지를 펼쳤다. 이렇게 이 책은 마녀 문제에 관한 한 가장 영향력 있는 악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 헨리쿠스 인스티토리스의 원래 이름은 하인리히 크라머Heinrich Kramer이지만 라틴어로 책을 출판하면서 자신의 이름도 라틴어 식으로 바꾸어 표기했다.

** 지나치게 형식 논리에 매달리고 그런 형식을 통해 거의 의미 없어 보이는 세세한 일들을 논증하여 자신의 박학을 과시하려는 스콜라 철학의 메마른 풍토에 대해 후대 학자들은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예수는 똥을 누지 않았다는 아퀴나스의 주장 같은 것은 에라스무스가 볼 때는 신에 대한 모욕적인 주장이었다.

*** Hans Peter Broedel, The Malleus Maleficarum and the Construc-tion of Wichcraft : Theology and Popular Belief, Manchester University Press, 2003, pp.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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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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