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에게 가하는 망치: 마녀 개념의 발전

페이스북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블로그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링크 복사하기

29 회

중세 유럽에서 마녀 문제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그 결과 마녀 개념이 정교하게 형성되었던 것은 이단에 대한 대응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장구한 기독교의 역사에서 다른 선택을 한’(이것이 원래 이단heresy이라는 말의 의미다) 종파들이 생겨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 가운데 중세에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은 카타리파와 왈도파였다. 카타리파는 이 세계를 선악의 투쟁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마니교적인 세계관과 유사하며, 로마 가톨릭과는 다른 교리 체계를 만들어갔다. 로마와 갈등 관계에 들어선 카타리파는 당시의 교황청이 오히려 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고 나섰고, 이에 대해 정통 교단에서는 십자군을 동원하여 이들을 철저히 억눌렀다. 한편 카타리파와는 달리 왈도파는 교리상으로는 로마 교황청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교회의 조직을 부인하고 그들이 자유롭게 설교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했으며, 이것이 부인당하자 교회의 부패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을 가했다.*

카타리파와 왈도파 문제를 겪으면서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 이단을 보는 시각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이단의 무리는 단순히 종교적 해석에서 일부 다르다든지 부분적인 오류를 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톨릭 교리와는 전혀 무관한 사탄의 무리로 비난받았다. 그들은 무고한 아이들을 죽이고, 성적으로 방종하며, 무엇보다 사탄이 주관하는 연회에 참석한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런 주장은 9세기 그리스에서 이단을 공격할 때 처음 나온 것인데 이제 서구에서도 같은 내용이 적용되었다. 우리 성스러운 교회를 악으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자들이야말로 악의 화신이 아니겠는가. 이런 식으로 중세 이단은 시간이 갈수록 악마화되었다. 그런 신앙의 적을 무자비하게 처단하려는 것은 필연이었다. 13세기 초반부터 교황청에서는 이단을 세속 법정에 넘겨 적절한 처벌(animadversio debita, 이는 사형을 부드럽게 표현한 말이다)’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회가 직접 사형을 집행할 수는 없으므로, 교회로서는 이단 판정을 내리는 데에 주력하고, 실제 처형은 세속 당국으로 넘겼다.

1233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9(재위 : 1227-1241)가 발한 라마의 소리Vox in Rama’라는 교황 칙서는 마녀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문건이다. 교황이 일부 주교와 사제에게 보낸 이 서한은 교회에 들이닥친 슬픈 사태, 특히 이단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신참이 처음 이 집단에 들어오면 개구리 모양의 형상이 나타난다. 어떤 자들은 그의 뒷부분에, 또 어떤 자들은 그의 입에 키스를 한다. 그들은 이 짐승의 혀와 침을 자기 입에 받는다. 신참이 앞으로 나오면 안색이 놀라울 정도로 창백한 데다가 눈이 아주 까맣고 너무 수척하여 뼈 위에 가죽만 살짝 걸쳐 있는 듯한 인물이 그를 맞이한다. 신참은 그에게 키스하면서 얼음처럼 차갑다고 느끼는데, 그 후 곧바로 그의 마음에서 가톨릭 신앙이 사라지게 된다. 그 후 그들은 둘러앉아 식사를 한다. 이때 어떤 조각상에서 크기가 개만 한 검은 고양이가 꼬리를 올린 채 뒷걸음쳐서 온다. 그들은 이 고양이의 뒷부분에 키스한다. (……) 이것이 끝나면 그들은 촛불을 끄고 구역질 나는 음란 행위를 하는데, 이때에는 낯선 이들이든 친척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더구나 만일 남자의 수가 여자보다 많으면 그들은 수치스러운 열정에 굴복하여 욕정에 불타오른 나머지 남자들끼리 타락한 행위를 한다. 또한 여자들 역시 그들의 자연스러운 기능을 바꾸어 그들 간에 비난받아 마땅한 일들을 한다. 이런 가공할 죄악이 끝난 후 촛불을 다시 켜고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 이 집단의 한쪽 어두운 구석에서 한 사람이 나타나는데, 그의 사타구니에서 태양보다 더 강한 빛이 나온다.**

 

흔히 거론되는 사바트의 묘사가 그대로 반복된 이 문건이 정말 교황 칙서일까 싶을 정도로 황당무계한 내용이다. 이는 정형화되어가는 마녀 개념을 드디어 교황청마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흥미롭고 또 중요한 자료다.


 

* 왈도파는 각자 자기 윤리의 순수성을 좇아 설교하고 고백하고 심지어 빵과 포도주를 봉헌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주인이므로, 자신들 사이에 아무런 위계질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가난과 거지 생활을 순회 포교의 조건으로 채택했다. 그들은 사도를 본받아 재산, 아내, 일을 갖지 않았다.” 알랭 코르뱅, 역사 속의 기독교, 주명철 옮김, , 2008, p. 211.

** Alan Charles Kors and Edward Peters ed., Witchcraft in Europe 400-1700 : A Documentary History,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00, document no. 18.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