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에 찬 차르: 이반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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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회

이반이 만든 전통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러시아의 역사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서구에서는 이반 뇌제를 주로 피에 굶주린 광인의 이미지로 그리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의 잔인성이 분명 도를 넘었고, 그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러시아 내부에서 그리는 그의 이미지는 많이 다르다. 많은 러시아 역사가들은 그의 통치기에 영토가 확대되고 통치기구가 정비되어 모스크바국이 크게 강성해진 것을 강조한다. 민간 전승에서는 그의 이미지가 더 긍정적이다. 그는 엄격한 차르로서 귀족들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었지만 백성들에게는 친구였다는 식이다. 20세기에도 지식인들은 그를 싫어했지만 일반인들의 인식은 많이 달랐다. 러시아는 때로 그로즈니한 지도자 동무를 원하는 것 같다. 푸틴과 같은 강력한 마초 스타일의 카리스마를 내뿜는 인물이 인기를 누리는 것 역시 이런 전통에서 유래된 것이다.

테러와 감금, 살인 등 무자비한 조치를 구사하며 권력을 잡은 스탈린이 아마도 이반의 전통에 가장 근접한 인물로 보인다. 그는 자의적 폭력을 행사하며 능란하게 권력을 장악한 이반 뇌제의 방식에 감탄하여 영화감독 예이젠시테인에게 이반 뇌제에 대한 영화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이 영화를 만든 동기를 이해하려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 스탈린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독일군이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해 오는 국가 위기의 상황에서 스탈린은 강력한 지도력으로 외적을 막고 국가를 구한 이반 뇌제 같은 인물을 영화화하여 제시함으로써 자신을 같은 성격의 영웅으로 미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예이젠시테인은 폭군 이반3부작으로 구상했다.* 1부는 1942-1944년 사이에 촬영했고, 1944년 말에 개봉되었다. 민족 영웅으로 묘사된 영화 속 이반의 모습은 스탈린의 마음에 쏙 들어서 이 영화는 <스탈린상>을 수상했다. 2보야르의 음모1946년에 촬영이 완료되었다. 그러나 이 필름은 검열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다. 누가 봐도 이 필름 속 이반은 부당하게 국가 테러를 자행하는 흉악한 인물이다. 이 당시 예이젠시테인은 죽은 레닌의 동료로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전설적인 권위를 가진 인물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강제 수용소로 직행했을 것이다. 사형이나 수용소행은 면했지만, 더 이상 영화 제작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이미 찍은 2부 필름은 상영 불가 판정을 받았으며, 촬영 중이던 3부 필름도 압수되었다. 2부 필름은 스탈린의 사망 이후 흐루시초프 시대에 검열이 완화되었을 때 뒤늦게 개봉되었다. 예이젠시테인이 사망한 후 10년이 지난 뒤였다.

이 영화에서 예이젠시테인이 그리는 이반 뇌제의 모습은 당시 스탈린의 전제적 통치를 비난하는 메타포로 읽힐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실 예이젠시테인은 혁명 1세대의 정치가와 예술가들이 그러했듯 매우 지적이었고, 또 정치적 성향으로는 민중들의 자발성을 강조했다. 그가 만든 영화 전함 포템킨을 보라. 혁명적 거사를 시도하는 이 영화에서 특별한 주인공은 따로 없으며, 전함 그 자체, 달리 말하면 전함의 수병들 모두가 주인공인 셈이다. 그러나 이제 스탈린과 같은 혁명 2세대가 권력을 잡았을 때, 강력한 전제권력을 잡은 통치자들은 민중의 자발성보다는 지도자의 힘을 강조했다. 그리고 헤겔의 철학서적을 읽는 레닌과 같은 지식인 출신이 아닌 노동자·농민층에서 배태된 이 지도자들은 엘리트 예술가들이 만든 난해한달리 말하면 그들끼리만 알아먹고 고상한 척하지만 재미라고는 하나 없는작품들을 증오했다. 그래서 시골의 농민들이나 공장 근로자들이 봐도 재미있고 쉽게 이해되고, 또 그런 가운데 지도자 동무의 탁월한 능력이 노골적으로 강조되는 그런 작품을 만들라고 강요했다. 그런 작품은 할리우드 영화처럼 뛰어난 주인공이 등장하여 그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고, 선악 구분이 뚜렷한 상황에서 결국 주인공으로 대표되는 이데올로기가 장엄한 승리를 거두는 것이어야 한다. 스탈린이 예이젠시테인에게 만들라고 한 것도 그런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 2부에서는 감독의 삐딱한 시선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스탈린이 원한 것은 위대하고 현명한 인물인 이반이었다. 스탈린이 생각할 때 이반의 잔혹한 행동은 러시아의 구원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이반은 시커먼 수염을 단 마술사 같은 모습을 하고 복잡한 미로 속에 숨어서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하는 흉악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이반에 대한 비난은 곧 스탈린에 대한 비난으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이었고, 검열 당국이 이를 눈치 못 챌 리가 없었다. 오랫동안 이 영화가 개봉되지 못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세월이 흘러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인민의 아편이라 비난받던 러시아정교가 제자리를 찾은 것이 한 예다. 그러나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 대제국의 위엄을 잃어가는 러시아는 그동안 잊고 있던 전통을 회복하려 하는 것 같다. 러시아를 다시 일으켜 세울 강력하고 신적인 지도자가 필요하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폭력도 불사하며 거의 종교적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 나와야 한다. 시대의 싸움에는 다른 어떤 대의를 뛰어넘는 명료한 방향 지시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싸움에 중간이란 없는 법이다.

러시아 각지에 이반 뇌제의 동상이 다시 건립되고, 부분적으로나마 스탈린이 구국의 대장군으로 복권되는 현상도 보인다. 과거 제국의 찬란한 꿈을 되살리려는 러시아의 광활한 땅에 그로즈니한 이반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 Sergei Eizenshtein, Ivan Groznyi. 우리나라에는 폭군 이반이라는 제목으로 DVD가 출시(1999)되어 있다. (1, 1944, 99/2, 1958, 88) 7) 마르크 페로, 역사와 영화, 주경철 옮김, 까치, 1999.

** 마르크 페로, 역사와 영화, 주경철 옮김, 까치,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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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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