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목련꽃 피면 어쩌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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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회

신도시 계획이 현실화되며 철거가 시작되었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빈집이 늘어났다. 그러자 손에 빠루(못 뽑는 연장) 든 사내들이 동네에 제일 먼저 나타났다. 사내들은 이집 저집 빈집을 찾아다니며 대청마루를 뜯고 골동품을 찾았다. 다음 출연자들은 좁은 시골 골목 누비기 좋게 특수 제작된 손 구루마를 밀고 나타난 고물상들이었다. 이어 새끼줄 타래를 등에 메어 멀리서 보면 흡사 거북이 같은, 나무 캐 가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즈음 우리들 생활에도 변화가 왔는데 우리들은 더 이상 셋방을 사는 세입자가 아니었다. 보상 받은 주인들이 다 떠나 집을 한 채씩 소유하게 되었다. “, 재호방에 가서 김치 좀 가져와.” “재호 방이라뇨. 재호 집이지라고 여유 있게 농담도 즐기며 우리들은 어느새 집주인이 다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다. 구멍가게도 떠나고 길도 끊겨 보일러는 묵언정진 동안거에 들고 우리는 공동으로 모여 그날의 일용할 양식 라면에 수프를 몇 개 넣을까 갑론을박하며 기름진 편식을 즐겼다.

 

여기, 불 피우기 시작한 지 며칠이나 되남?”

글쎄요, 거지는 모닥불에 살찐다는데 다들 얼굴이 이리 좋은 것 보면 꽤 되었겠지요. 나무 걱정은 없어요. 나무가 집처럼 아니, 땔 집이 나무처럼 쌓였는걸요.”

나는 곧 떠날 건데 자네들은 언제 떠날 건가?”

떠나지도 못하고, 모닥불 불기운에, 이러다 목련꽃 피면 어쩌지요.”

 

날아가는 기러기를 먹고 싶은 목수 형님이 불을 쬐고 간 날이었다. 우리들 중 하나가 조그만 항아리를 하나 주워왔다. 항아리가 터질까 안 터질까 걱정하며 불씨를 담았다. 항아리를 멀찍이 두고 지켜보았다. 다행히도 항아리가 쩍 깨지지는 않았는데 살점이 툭툭 튀며 진물을 흘렸다. 소금을 담아놓았던 항아리 같았다. 날이 어두워질 때쯤 되자, 더 이상 살점이 튀지 않고 진물도 흘리지 않아 항아리를 조심조심 방에 옮겨놓았다. 훌륭한 화로였다. 우리는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하고 추운 잠을 잤는가, 통탄하며 오랜만에 따듯한 방에 모여 잠을 잤다.

잠결이었다.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연탄을 때는 윗집 친구가 가스를 마시고 구원을 청하러 왔다가 부엌에 쓰러진 건 아닐까. 눈을 뜨고 부엌으로 나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떠지지 않았다. 몸을 움직여보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머리가 빠개지는 것같이 아팠다. “머리가 아파죽겠어라는 말이 간신히 입에서 나왔다. 옆에서 자던 친구가 나도, 라고 목소리를 흘렸다. 그 순간 우리가 가스를 마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눈이 떠졌다. 부엌으로 난 방문이 열려 있었다. 다음 날이 신춘문예 마감 날이라고 글을 다 쓰고 잔다고 하던 남 형이 의자에서 떨어지며 문에 부딪혀 문이 열려져 있었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누운 상태에서 친구들을 발로 흔들어 깨우고, 집 없는 신혼부부가 모델하우스에 숨어들어 자기 집처럼 살아본다는 희곡을 쓰다가, 의자에서 쓰러지며 문을 열어 우리 생명을 구한 형을 흔들어 깨우고 엉금엉금 기어 마당으로 나왔다.

 

마두리 그 마을 입구에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시구절로 된 술집 간판이 있었지. 안개 속으로 타자기와 배낭을 멘 친구들이 떠나가던 그 철길, 그곳. 그해 신춘문예가 발표되기도 전에 소금 항아리에서 발생한 가스에 의한 집단 중독사로 신문을 장식할 뻔했던 일산, 마두리, 그해 겨울의 친구들이여. , 박 목수 형님은 어디서 그해의 식욕을 뉘우치며, 추억하며 기러기를 깎아 솟대라도 세우고 있지나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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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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