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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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회

불꽃은 위쪽을 향해서 흐르는 모래시계다.

가스통 바슐라르

 

촛불집회. 불들이 모여 집회를 연다니.

광화문에 가봐야겠다는 맘은 있었으나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인터넷방송을 통해 시위 생중계를 듣게 되었다. 그날은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처음으로 물대포를 쏜 날이다. 방송은 어린 학생들이 물에 젖은 옷을 입고 추위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 현장에서 방송국으로 연락이 와 현장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되기도 했다. 진행자는 울음을 삼키며 젖은 옷을 오래 입고 있으면 체온 급강하로 큰일이 날 수 있다고 했다. 명동성당에 여러 명이 입을 수 있는 구호용 옷이 있을지 모르니까 그리 가보라고도 했다. 시민들한테 마른 옷을 가지고 가 학생들을 보살펴줄 것도 호소했다. 반복되는 급보를 들으며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어린 학생들이 저리 당하고 있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괴지심이 들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아니 나를 위해서만이라도 당당히 나설 수 있는, 그들의 실천적 용기에 무량 부끄러워졌다. 방송을 듣다가 끝내는 서러워져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었다.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여론조사를 감안) 왜 안 들어주는가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그날 저녁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사람들이 들고 있는 촛불은 크기와 밝기가 같았다. 촛불은 사람들이 꺼내 들고 있는 심장 같았다. 무수한 촛불은 사람들 마음이 피어난 꽃밭이었다. 촛불은 눈물의 불이었고, 불의 눈물이었다. 희고 곧은 뼈들이 뿜어내는 빛의 글씨였다. 촛불은 혼자서는 나약하다는 점을 인정해 종이컵으로 바람막이를 두르고 있었다. 촛불은 공격적이지 않고 방어적이었으며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처럼 겸손했다. 촛불은 촛불의 불꽃을 빌려 번졌다. 그것은 불꽃을 잔에 따라 나누는 성스런 의식처럼 진행되었다. 아무리 봐도 촛불의 배후는 어둠뿐이었다.

촛불들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참 권력을 노래 부르며 거리로 흘렀다. 불의 강이었다. 저마다의 가슴에 품은 불은 잔잔했으나 무리를 이룬 불결은 너울이 크고 힘이 가득 차 있었다. 촛불의 숲엔 어둠이 빠져나갈 틈이, 가을철에 가늘어진 짐승의 털만큼도 보이지 았다. 촛불은 어둠을 빗질하고 나가는 참빗 혹은 어둠을 긁어내는 거대한 갈퀴였다. 그 동작은 유려할 뿐 거칠거나 맨망하지 않았다.

불결을 경찰차가 가로막았다. 경고방송이 쏟아졌다. 일출 전이나 일몰 후 야간 옥외집회는 불법이란 여경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대기를 갈랐다. 그렇다면 촛불집회를 한낮에 하란 말인가. 한낮에 어둠을 제공해준다면 촛불집회가 주간에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촛불집회는 빛과 어둠의 만남이란 상징성을 전제로 출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야간을 택할 수밖에 없다. 불꽃이 불꽃을 만나 더 활활 타오르듯 촛불은 촛불을 만나 더 견고하게 마음의 어깨를 걸었다. 일인一人이 한 코로 짜인 불꽃 양탄자는 일렁일렁 앞으로 나갔다. 마치 그 빛들은 어둠을 다독거려주기도 하고, 타일러주기도 하는 것 같았다. 어둠을 빛의 세계로 끌어들여 어둠도 구원할 것 같았다. 그러기 전엔 절대 꺼지지 않을 기세였다. 꺼지는 한이 있어도 끝끝내, 드러눕지 않는 불꽃의 속성으로 뚜벅뚜벅 전진하는 마음들의 뜨거운 행진이었다. 호흡이었다. 발자국이었다. 눈물이었다.

 

모자를 자주 쓰고 다니면서 머리에 비듬이 생겼다.

한의사가 날씨 추운 날은 모자를 꼭 쓰고 다니라고 했다. 머리에 몰린 어혈을 아래로 끌어내려야 한다며 걷기 운동을 권했다. 혹 사고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 험한 산이나 차가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닌 평지를 택해 걸으라고 했다. 양의사도 젊은 사람은 후유증이 반년 정도 지난 다음에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다. 서울에 있는 병원을 계속 다닐 형편이 못 되어 집 근처 한방병원과 의원을 다녔다.

그날 다친 머리는 차도를 보이지 았다. 늘 머리가 띵했고 기억력이 심하게 떨어졌다. 아주 쉬운 단어도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몸이라도 피곤한 날엔 증세가 더 심해져 글자가 생각나지 않기도 했다. 내가 갑자기 죽으면 어찌어찌 해달라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한방병원에서 침을 맞고 어혈 푸는 약을 지어다 먹는다고 완치될 병이 아닌 것 같아서였다.

2008629. 한겨레신문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보고 크게 놀랐다. 무방비로 넘어져 있는 사람을 어떻게 그리 무자비하게 방패로 내리찍을 수가 있을까. 나는 이미 그들이 던진 헬멧에 코를 정면으로 맞아, 피가 낭자하게 번져 있는 옷을 입고 있지 않았던가. 그 상태를 보고도, 어깨와 관자놀이를 가격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그 일로 팔 한쪽을 제대로 못 쓰며 살아갈 일도 그렇고, 머리를 다쳐 평생 고생하며 살아가야 할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나는 촛불집회에 나가 경찰이나 시위자 양쪽 다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시위대에 포위된 경찰들의 안전을 위해 비폭력을 외치기도 했고, 땀 흘리고 있는 그들을 위해 몇 번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기도 했다. 비싸, 나도 못 먹어본, 여러 명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엑설런트란 것도 사다 주었었다. 이성을 지켜 서로 다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전하며. , 그런 결과가 이런 부상으로 돌아왔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언어로 이미지를 검색할 수 있는 것처럼, 이미지로 이미지를 검색할 수는 없을까. 아니면 이미지로 언어를 검색할 수는 없을까.’

나는 내가 방패에 가격당하는 장면을 보며, 처음엔 분한 맘이 들어 방패를 휘두른 경찰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 맘에 컴퓨터 검색창에 사진을 넣고 검색하면 그 사람의 이미지가 떠올랐으면 좋겠다는 발상을 했다. 이미지로 이미지를 검색할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인터넷에 노출된 검색 대상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나를 가격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이디어에서였다. 또 이미지를 넣고 검색해 언어로 그 검색 대상에 대한 정보만이라도 확인할 수는 없을까도 생각했다.

위와 같은 프로그램이 개발된다면 범인들을 검거하는 데도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폐쇄회로에 찍힌 이미지(사진)를 검색창에 넣고 검색하면 그 사람의 주민등록 사진이 떠오르거나 그 사람이 인터넷 세상에 남긴 이미지가 떠올라 범인 검거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이미지로 이미지를 검색할 수 있게 된다면, 미아 찾기, 동식물의 이름 찾기 등 유용한 것이 많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되었다. 이를 악용한다면 개인의 사생활이 얼마나 적나라하게 노출될 것인가.

 

나를 구타한 경찰을 미워해서 무엇하겠는가. 명령 내린 자들은 이미 빠져나갈 구멍을 다 만들어놓고 있을 텐데. 애먼 하급끼리 싸워서 무엇하겠는가.

한 개인에게 치명상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고 시위 시, 서로 폭력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폭력. 유치하고 미개하지 않은가, 우린 그래도 21세기 인간들인데. 평화적 시위를 위해서는 시위자들도 폭력을 쓰지 말아야 하겠지만, 먼저 힘 있는 집단인 경찰이 폭력을 유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양심을 지펴 켜 든 촛불은 막는다고 될 불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막아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고, 사람들 가슴으로만 흐르다가 강이 되면, 그 불은 더 큰 힘이 되어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촛불을 끄려면 촛불보다 더 밝은 세계를 열어 보이는 수밖에 없다. 밝음은 더 밝음으로만이 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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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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