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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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회

농협 하나로 마트에 들렀다. 과일을 사 먹고 싶은데 가격이 너무 비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청량고추나 좀 살까 해서 야채 코너로 갔다. 청량고추도 열 개에 1,600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다. 두리번거리다가 나물 진열대로 갔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싼 게 다 있나. 눈이 번쩍 떠졌다. 돌나물 222그램 550. 생취나물 300그램 1,500. 냉이 300그램 1,600. 담배 두 갑 값으로 나물 한 보따리를 사니, 몸에 벌써 생기가 도는 듯했다.

 

고등학교에 강사로 나갔었다. 사 년간 문창과 학생들에게 시 창작 실습을 가르쳤다. 문창과 주임 선생도 시인이었는데 성격이 화통했고 교장선생은 자신도 예술을 사랑한다고 하며 강사들에게 자율권을 많이 줬다. 그래서 자주 야외수업을 할 수 있었다. 야외수업을 나가면 학생들은 신이 났다. 학생들이 신이 나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그때 내 학습목표 중 하나는 학생들에게 나무 이름 이십 개, 곡식 이름 이십 개, 풀이름 이십 개, 도합 육십 개를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산과 들판을 오가며 학생들에게 식물들 이름을 가르쳐주는 일은, 무엇보다도 즐거웠다. 네 시간 동안 시 한 편만 써서 제출하라고 하고 자유를 주었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웃고 생기발랄했다. 계곡에서 가재를 잡아보는 남학생도 있었고 낙엽을 줍는 여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마지막 수업을 나가던 해에는 교장선생님이 바뀌어 야외수업을 자주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창밖에 봄이 찾아왔는데 각진 교실에 학생들을 가둬놓고 시 창작 수업을 한다는 게 왠지 답답했다. 산이나 들판으로 나가 남학생들은 도롱뇽 알을 찾아보고 여학생들은 나물을 캐보라 하고 싶었다. 흙을 향해 몸을 낮추고 봄나물을 캐며 새싹들보다 더 수다스러워져보라고 숙제도 내보고 싶었다. 그게 교실에 앉아 원고지 칸에 갇혀 있는 것보다 백배 더 시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자연만 한 스승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취나물을 다듬자 작은 방에 취나물 향이 가득 찼다. 취나물은 향기로 내게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내 코는 의미 파악은 하지 않고 흠향에만 정신을 팔았다.

몇 주 전, 서울 삼겹살집에서 이름도 모르고 먹은 나물이 생각나고 그날 있었던 일이 떠올라 혼자 웃었다. 일행 중에는 미용사가 있었다. 내가 집게로 고기를 들고 가위로 자르는 것을 보고 있던 미용사가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 상 모퉁이에 앉아 자세가 불편한데도 고기를 자르는 미용사의 가위질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그 어느 식당 종업원들보다도 화려했다.

나는 미용실에서 미용사의 가위질 솜씨를 의식하지 못했었다. 직업이니까 뭐, 다 그렇지 하는 식으로 덤덤했었다. 그러던 내가 왜 고기 자르는 솜씨를 보고 놀란 것일까. 그것은 내가 머리카락은 안 잘라보았고 고기는 잘라보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고기를 잘라보았다는 사실이 기준점이 되자, 미용사가 고기 자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보다 내가 경험했던 일에 감각이 예민하게 작동했다고나 할까. 교대로 와 밥을 먹는 다른 미용사도 삼겹살 자르는 솜씨가 신의 경지였고 예술이었다.

 

돌나물을 다듬고 씻은 다음 초장으로 무치고 통깨를 뿌렸다. 맛을 보니 돌나물에서 약간 비릿한 냄새가 났다. 나에게 세상에서 표현하기 힘든 일들을 대보라면, 맛을 말로 표현하는 것과 통증을 말로 설명하는 것을 들 것이다. 한번은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약사에게 몸이 어떻게 아프다고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한 생각이다.

표현력이 좋은 사람이 예문을 만들어놓으면 어떨까. 그 예문을 유리 탁자 같은 곳에 비치해놓으면 미리 그것을 읽고 내가 아픈 상태를 쉽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결혼한 친구들에게 몇 번 사람 젖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대개 친구들은 그냥 그렇다고 하며, 뭐라고 표현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 알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 뭐 부탁이 있어 전화를 했습니다. 저를 이상하게, 변태나 그런 거로 보지 마시고요. , 저는 너무 어려서, 어머니 젖을 먹어봐 젖 맛을 모르겠어요. 어떻게 한 방울만, 냄새만이라도 맡아볼 수는 없나요. 왜냐하면요, 제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처음 맛본 게 어머니 젖 맛일 텐데요, 그 젖 맛도 모르면서 무슨 맛을 논한다는 게 웃기는 일 같아서요. 제가 결혼을 못해서, 아기 입에서 나는 젖 냄새도 모르거든요. 가능할까요.”

선배는 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전화를 걸고도 몇 해가 바뀌었지만 나는 선배를 찾아가지는 않았다.

인식론에 의하면,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인식하고자 하는 사물과 그 주위의 사물들 사이에 상이점과 유사점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 미각은 어머니 젖 맛을 출발로, 기준으로 삼아, 다른 음식들을 구분 지어온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지금 어머니 젖 맛을 모르고 있으므로 지금 내가 느끼는 맛은 모두 가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물들을 무쳐놓고 밥을 먹었다. 나물들은 향기로웠다. 나물을 씹다 멈췄다. 울컥 감정이 솟구쳤다.

기름과 깨소금. 고향 인근 어머니 방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음식을 싸주셨다. 나는 먹을 게 수두룩하다고 하며 안 가져간다고 했다.

소리를 버럭 지르며 가방에서 음식물들을 꺼내놓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맘이 아파, 가지고 오던 기름과 깨소금. 기름과 깨소금으로 무친 나물을 먹다가 어머니가 떠올라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상에 팔꿈치를 대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음식의 맛을 떠올리며 만드는 음식들. , 내가 음식의 맛을 분석해보는 기준에 어머니의 입맛이 이미 들어 있던 것이다.

맛에도 유전인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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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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