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 잡기 패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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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회

함씨는 몇 마리나 잡았어. 열아홉 마리요. 어떻게 실력이 작년보다 늘지 않고 줄어. 난 도통 이해가 안 가지만, 실력이 줄 수 있는 실력도 대단한 거여. 그러게 만날 꼴찌네요.

나갔던 물이 밀려들어와 갯고랑에서 몸에 묻은 뻘을 씻고 배에 올라 잡은 낙지 수를 헤아려보며 대화를 나눈다. 또 실패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낙지를 잘 잡을 수 없을까. 세 코, 네 코를 잡은 사람들 낙지 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다보며 나는 낙지 잡기 패인을 분석해본다.

첫 번째 패인은 봄 낙지와 달리 가을 낙지 구멍은 복잡하고 긴 것을 빨리 인정하지 않은 데 있다. 뻘에 앉은 봄 낙지는 알을 낳으러 왔기 때문에 구멍이 갈래를 치지 않아 삽으로 파 잡아도 쉽다. 그렇지만 가을 낙지는 게나 조개를 잡아먹으러 앉은 거라 주위의 먹이를 잡아먹으며 구멍을 연장해나가 구멍 구조가 복잡하고 길다. 그 긴 구멍을 삽으로 파고 손으로 쑤시며 추적해가다 보니 힘도 들고 도중에 잃어먹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다른 사람들처럼 구멍을 파지 말고 붙여 잡았어야 옳았다.

뻘에서 낙지 잡는 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원시적인 방법은 처음부터 구멍을 파들어가는 방법이고 고수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낙지를 구멍 입구로 유인하는 방법이다. 이 중 두 번째 방법은 낙지가 뚫어놓은 여러 개의 구멍 중 숨 구멍이 아닌 낙지가 처음 들어간 구멍, 즉 주 통로가 되는 구멍 입구로 낙지를 유인하는 것이다. 왼 손가락들을 움켜잡기 쉽게 적당히 벌리고 구멍 입구에 갖다가 대고 오른 손가락으로 물을 튕겨 게가 움직이는 것처럼 물결을 일으키거나 가만히 기다린다. 낙지가 발을 뻗어 왼손가락을 더듬고 있을 때 움켜쥐면서 재빨리 오른손으로 구멍을 쑤셔 낙지를 잡아내는 방법이 다른 한 방법이다. 나도 붙여 잡기를 하긴 하는데 문제는 낙지가 나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지 못한다. 어떤 놈은 일 분도 채 안 되어 나오기도 하지만 오 분 정도를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놈도 많다. 그러면 나는 무조건 파들어가는데 그 구멍 길이가 삼사 미터 넘는 것도 많다. 구멍을 십 분, 이십 분 파는 것보다, 한 이삼 분 더 기다리는 게 나은데 그게 잘 안 된다. 낙지를 움켜잡을 때도 발이 충분히 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하는데 너무 빨리 움켜잡아 미끄러운 발끝이 빠져나가거나 끊어지는 일이 많다.

두 번째 패인은 소라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낙지를 잡으려면 낙지만 잡아야 하는데 낙지도 잡고 소라도 잡으려고 하니까 낙지 구멍도 잘 보이지 않고 소라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죽도 밥도 안 된 격이다.

세 번째 패인은 처음 성적이 너무 좋아서였다. 열 마리를 예상보다 빠른 시간 내에 잡았다. 애초에 목표 수를 크게 잡지 않아서 금방 두 자릿수는 잡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낙지 몇 년 잡은 초보자가 이 정도면 되었다 하는 생각이 들며 긴장감이 느슨해졌다. 역설적으로 긴장감이 느슨해지니까 욕심이 생겼다. 작년에 삼십 마리까지는 잡아보았으니까 기록을 한번 깨보고 싶은 맘이 생겼다. 나는 작년에 낙지가 많았던 곳이 떠올랐다. 숨을 헐떡거리며 뒤돌아보니 어느새 배가 가물가물 보이는 곳까지 걸어 나왔다. 낙지도 없고 물렁물렁하던 뻘이 딱딱한 모래 뻘로 바뀌어 있었다. 조기성과에 기분이 들떠, 물이 들어올 시간을 감안해보았을 때, 더 많은 곳을 찾아 멀리 가는 게 더 효율적일까 그냥 잡던 곳에서 낙지를 잡는 게 더 나을까를 냉철하게 판단하지 못했다. 판단 실수를 인정하고 배 근처로 돌아왔을 땐 이미 나갔던 물이 거지반 다 들어왔고 힘도 빠지고 시간도 없었다.

네 번째 패인은 남을 너무 의식해서였다. 혹시 내가 잡다가 놓치고 포기하는 것을 남이 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뻘 빛깔만 봐도 낙지가 많은가 그렇지 않은가를 척 알아보는 경험 많은 고수들과 다른 방향으로 뻘을 선택했다. , 초보자가 낙지를 놓칠 수도 있는 것인데 그걸 너무 창피하게 여겨 남들과 반대 방향으로 뻘을 선택한 게 큰 잘못이었다. 좀 적극적으로, 놓치면 어찌어찌해서 놓쳤는데 방법 좀 가르쳐달라고 묻기도 하고 눈동냥으로 훔쳐보며 배우기도 하고 남들이 잡아내는 속도를 보며 자극도 받았어야 했었는데…….

옛날 같으면 선가船價로 열 마리당 한 마리씩 뱃삯 내는 건데……. 함씨 힘내. 내일 많이 잡으면 되잖아. 내일도 한 시간씩 걸어나오지 말고 이 배 타. 낙지 잡는 게 그렇게 쉽게 늘겠어. 이리와 도시락이나 먹자고. 아이, 그야 그렇지요. 저야 아직 초보자인데요. 낙지가 안 잡힐라고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으면 머리가 다 빠졌겠어요.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없네요. 형님들 위로의 말이 고마워 내 주특기인 농담을 던지자 검게 탄 사내들 웃음이 만선으로 쏟아졌다.

배를 타고 마을로 돌아오며, 낙지 잡는 일이 우리 인생살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 하나를 잡아, 잡아놓은 열아홉 마리 낙지에 보태니 한 코가 채워지고 내 낙지 통도 그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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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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