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버스

페이스북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블로그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링크 복사하기

38 회

버스가 멈추고 아주머니 한 분이 밭둑길을 달려온다.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 시선이 일제히 그 아주머니를 향한다. 보따리를 머리에 인 아주머니가 한 손으로 가지 말라고 손짓을 하며 필사적으로 뛴다. 마음속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날짜를 계산해보니 이리 차이고 저리 차여 2, 7장이라는 강화읍 장날이다. 운전기사가 아주머니가 달려오고 있는 밭둑길 끝에 차를 천천히 몰아 갖다 댄다. 버스가 서 있는 곳까지 달려온 아주머니가 버스 앞으로 길을 건너와

차에 빨리 오르지 않고 버스 뒤로 돌아 뛴다.

앞으로 가로질러 타면 빠르지 않으꺄?

그래도 아침부터 여자가 길을 가로지르면 뭐 좋을 것 있겠쓰꺄.

지금이 옛날이꺄.

운전기사와 대화를 나누며 아주머니가 보따리를 뒤적이자 개두릅 삽싸롬한 냄새가 향긋하게 차 안에 번진다. 늦어진 시간을 감안해 버스가 속도를 낸다. 길은 물을 만나고 산자락을 만나며 휜다. 휜 만큼 길은 더 길이 된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굴곡지면 굴곡진 만큼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닐까. 휜 길을 버스가 구불텅구불텅 달린다. 산자락에 일렬로 매달려 있어, 골목이 없는 해안가 마을을 지난다. 골목길을 만들 수 없어 일렬로 좌정하고 바다와 면접하고 있는, 면벽하고 있는 해안가 마을을 버스가 수도자처럼 지난다.

아저씨는 연세가 어떻게 됐쓰꺄?

남에 나이 살고 있시다.

남의 나이가 뭐꺄?

평균 나이보다 더 살았으니까 일찍 죽은 사람들 나이를 대신 살고 있는 것 아니꺄.

햐아, 이 무슨 선문답이란 말인가. 운전기사와 촌부의 대화에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웃고 나는 이 버스 길에서 만났던 한 여학생을 떠올린다.

몇 해 전이었던가. 장어 낚시에 빠졌었다. 릴낚시 서너 대를 던져놓고 낚싯대 끝에 방울을 달아놓았다. 방울이 울리면 달려가 낚시를 잡아챘다. 장어가 아닌 작은 물고기들이 덤벼 방울이 자주 울었고 나는 방울 소리에 민감해져 이명 소리를 듣기도 했다. 급한 일이 생겨 낚시를 접고 읍내 가는 길에, 버스 안에서 방울 소리가 들렸다. 한 여고생이 등에 멘 가방에 방울을 달고 있었다. 그 여학생은 좌석에 앉을 때 치맛자락을 손바닥으로 쓸어 조신하게 앉았다. 작년 추석 때였다. 방울 소리를 울리던 여학생이 숙녀가 되어 커다란 선물 꾸러미를 들고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나도 모 고등학교에 강사로 나가고 있을 때라서 아침 첫 버스를 탔고 그때마다 그 여학생을 자주 만났었다. 그 여학생은 중학교를 가면서 집에서 멀어지고 고등학교를 가면서 집에서 더 멀어지더니 아예 고향을 떠났다가 명절이 되어서야 고향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버스에서 만난 여학생을 통해 어쩌면 인생은 부모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는 연습을 해가다가 부모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멀리 보이는 연둣빛 산에 산벚꽃이 얼룩얼룩 희게 피어 있다. 연푸른 버찌가 붉은 버찌가 되고 붉은 버찌가 검은 버찌가 되어 끝내는 나무를 떠나리라.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고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이 길을 지나리라.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