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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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회

아주 오래전에 부처님 복장식腹藏式을 취재한 적이 있다. 복장식은 부처님을 새로 모실 때 행하는 의식이다. 부처님 배 속은 비어 있지 않고 여러 가지 상징물들이 들어 있다. 그 상징물들을 모시는 의식이 복장식이다.

복장불사는 모시는 부처님에 대한 중생의 지극한 예경입니다. 가장 신성스럽고 귀한 물건들을 부처님 배 부분에 넣음으로서 그 부처님은 많은 중생들이 우러러 의지하는 색신불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엄격한 절차를 거쳐 부처님을 조성하는 경우가 드물어 안타깝습니다.”

태고종 복장 의식의 대를 잇고 있는 담양 용화사 수진 스님의 말이다. 태고종에서는 복장식에 들어가는 물품이 예순다섯 가지라고 한다. 그런데 태경 스님이 쓴 조상경에 보면 백여 가지가 넘는다.

느닷없이 복장식 이야기를 꺼낸 것은, 복장식 물품 중에 산초가 들어간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떠올라서다. 십수 년이 넘었지만 분명 기억에 있다. 취재시 스님이 오개자[시나개자(담쟁이넝쿨 씨), 적개자(?), 백개자(갓 씨), 만청개자(순무 씨), 황개자(?)] 중에 산초가 있다고 했던 것도 같고, 오보리수잎 중 어떤 나뭇잎 대용으로 들어간다고 했던 것도 같다. 혹 적개자나 황개자가 산초는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산초가 복장품에 들어가나 안 들어가나를 알기 위해, 산초에 관한 초고 원고를 써놓고 발표를 미루며 한 달간 공부를 했다. 조계사 포교원, 한의사, 약초 전문가, 한문에 조예 깊은 사람, 나무 전문가 등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각종 서적을 뒤져보았지만 산초가 들어간다는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복장식 절차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복장식을 주관하는 스님이 한 분 있고 다섯 스님 앞에 복장통(보배병)이 하나씩 놓인다. 주관하는 스님이 물품을 지칭하면 다섯 스님은 지칭된 물품을 복창하며 복장통에 넣고 주관 스님이 진언을 왼다. 진언은 물품에 따라 다 다르다. 복장식에 들어가는 물품은, 불종자·법종자·지종자·보종자·금강종자를 상징하는 오곡[보리(), 기장(), (), 녹두(), 삼씨(중앙)], 다섯 가지 번뇌를 막아준다는 오약, 오향, 오길상초, 오륜종자, 오개자, 오시화, 오산개 등이 있다. 이 물품들을 동····중앙 오방위에 맞춰 준비된 다섯 개의 복장통에 집어넣는다. 복장통에 물품 넣기가 끝나면 후령통에 복장통 다섯 개를 방위에 맞춰 집어넣는다. 몇 단계의 의식을 더 거치면 봉인된 후령통이 완성된다. 후령통을 부처님 배꼽 부위에 정확히 앉힌다. 이때 후령통의 균형을 잡기 위해 빈 공간에 경전이나 사경본 같은 것을 채워 넣는다. 복장식을 한 다음 날, 여러 스님이 거울을 들고 빛이 막히는 곳마다 서서 빛을 반사해 법당 안으로 끌어들여 빛을 부처님 눈에 비춰 점안식을 하면 부처님 모시기가 끝난다.

 

현대에 발견되는 문화재급 경전들은 후령통의 균형을 잡기 위해 넣었던 것이다. 문화재적 가치로 본다면, 중심이 아닌 보조가 중심이 되는, 본말전도가 된 셈이다.

위에 인용했던 민간요법과 현대의학도 주객전도가 된 것은 아닐는지. 또 계절을 지키려고 생긴 냉장고가 계절을 잃게 만들어, 싱싱한 것을 먹으려다가 오히려 싱싱한 것을 못 먹게 된 일도 같은 맥락으로 봐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산초기름 냄새의 추억, 이런 추억은 내 삶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이어서 잊혀지기도 한다. 그랬다가도 다시 떠오르는 것을 보면 보잘것없는 추억들이 내 삶을 튼튼하게 떠받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마치 후령통을 받치고 있던 경들이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는 것처럼. 나를 만들어온 유형무형의 것들이 모두 소중함을 깨닫는다.

오늘 산초 향이 내 몸에 또 하나의 길을 내준다.

먼 훗날 나는 이 길을 걸으며 지금의 내 삶을 추억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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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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