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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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회

유난히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울적했던 마음도 가벼워진다. 내 주위에는 말재주가 뛰어난 친구들이 많다. 나는 그들에게 늘 감사하며 산다.

친구 로부터 전화가 왔다.

너 유럽 쪽에 아는 사람 없냐?

, 갑자기 유럽이냐.

, 안 씨 같던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 얘기를 하더라고.

, ?

내가 요즘 단편소설 한 편 썼잖아. 그걸 어떻게 알고, 뭐래더라.

, , 안종이라고 하던가? , 그래, 안종문학상이라는 걸 나보고 받아 가래.

안종문학상?

번역하면 노벨문학상이라던가!

오랜만에 전화를 건 친구 최가 농담을 했다. 친구의 말장난에 된통 속았던 나는 그 일이 있은 후 친구 최를 안종이라 불렀다.

친구 안종과 대화하다 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많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은 재치를 담고 있어 늘 싱싱했다. 거기다가 그는 재미있는 상황을 포착하는 탁월한 안목과 말의 맛을 감별하는 능력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그의 말솜씨에 비하면 내 말 솜씨는 연필 아래 종잇장에 불과했다.

 

내가 들은 안종의 이야기 중 압권인 것은 DGM이란 문신 이야기다.

친구가 DGM을 만난 것은 동해 바닷가 포장마차에서다. 옆자리에 앉은 사내의 팔뚝에 새겨진 문신이 친구의 눈에 들어왔다. DMZ도 아니고 난데없는 DGM이라니. 혹 사내가 사랑한 여인의 이니셜은 아닐까. 아니면 어떤 비밀조직의 결연한 맹세라도 될까. 친구는 자꾸 사내에게 신경이 쓰였다. 사내는 일행과 말을 나누다가 떡봉산에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 , 술 들어를 외치곤 했다.

사내가 떡봉산을 힘주어 외칠 때마다 술이 거나하게 된 친구 일행도 낄낄대며 건배를 따라 했다. 친구 일행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사내는 힘이 나는지 더 크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친구는 용기를 내어 사내에게 DGM의 의미를 물어보았다. 순박해 보이던 사내의 얼굴에 잠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내는 문신이 새겨진 왼 팔뚝을 들여다보며 오른손으로 몇 번 쓸어내렸다. 포장마차 안은 고자누룩했다. 잠시 후 침묵을 깬 건 사내였다. 사내는 자신의 덩치에 비해 너무도 작아 보이는 소주잔을 소리 나게 털어 넣었다.

독거미, 독거미 약자유. 시골이라 독거미 그려줄 친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약자를 택했유. 조금 아쉬운 감이 있지유.”

사내 어투를 흉내 낸 안종이 목소리 낮추며 한마디 더 보탰다.

아마, 상대 조직이 호랑나비파라도 되었었나봐.”

 

나를 즐겁게 하는 또 한 명의 이빨꾼은 소설가 박성원이다.

어느 날 그는 장가가기 전 젊었을 때라는 단서를 달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재담꾼이다. 그가 낀 술자리는 늘 알코올 도수보다 그의 개그 도수가 높았다. 그래서 술보다 웃음에 취하기 십상이었다. 주벽에 앉아 술자리를 좌지우지하던 그가 어느 날 문득 고민에 든다.

나는 왜 여자친구가 없을까? 여자들은 웃기는 남자를 좋아한다는데 나는 왜 아직 혼자인가. 분명, 내 개그에 여자들이 자지러지며 웃지 않았던가. 도대체 무슨 문제란 말인가. 막상 술자리가 끝나고 나면 치솟았던 인기가 바닥을 치는 까닭은 뭘까. 한 친구 말마따나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일까.”

그는 자신이 너무 술을 많이 먹어서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술을 먹지 않아보기로 결심한다. 다른 때와 달리 핑계 대며 술을 사양한다. 그가 점찍어둔 여자가 술자리를 뜬다. 시계를 보고 무슨 일이 생각났다는 듯 그도 급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걸음을 재촉한다. 여자와 나란히 걷는다. 시간 있으면 커피라도 한 잔 더 하고 가자고 말을 건넨다. 여자는 손을 들어 사양한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으려고 한다. 그가 다가가 행선지를 묻는다. 그는 무조건 자기도 같은 곳이라고 말한다. 그때 마침 택시 한 대가 그들 앞에 와 선다.

그녀가 아무 말 없이 택시에 오르자 그는 몹시 당황해하며 같이 타고 가자고 한다. 그녀는 됐다고 짧게 답하며 문을 닫으려고 한다.

그는 문을 붙잡으며 그러면 로터리까지만 같이 가자고 한다. 그녀는 됐다며 다시 문을 닫으려고 하고 그는 문을 열려고 한다. 빈 택시가 많은 곳까지만이라도, . . 안 돼요. . 문을 잡고 실랑이질이 잠시 벌어진다. 그러다가 그녀 실은 택시는 떠나간다. 그는 멀어져 가는 택시를 보며, 자신은 술을 안 먹어도 별수 없다고 낙담한다.

기대에 들떴던 맘이 처참히 무너지자 그는 허탈감에 사로잡힌다.

그러자 잊고 있던 요의가 살아난다. 그는 천천히 걸어 어느 빌딩 화장실로 간다. 심각한 그를 비웃듯 소변 따라 방귀 한 방이 비움의 시간에 합승을 한다. 그가 화장실 벽면에 걸려 있는 거울로 다가간다. 그의 고향 왜관에서는 미남으로 통하던 얼굴을 들여다본다. 문이 없어 좋은 세상, 거울 속으로 들어간 그가 깜짝 놀란다.

이마에 무슨 글씨가 흐릿하게 있는 거 있죠. 내가 술도 안 먹었는데 미쳤나 싶데요.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정신 차려 들여다보니까, ‘문 살짝!’이란 글씨가 희미하게 박혀 있더라고요. 나는 문을 열려고 하고 그 여자는 안 열어주려고 하다가 택시 문에 이마를 몇 번 부딪혔잖아요. 그때 찍혔던 것 같아요.”

 

안종과 소설가 박성원은 내게 늘 웃음을 주는 친구다. 나는 그 친구들이 있어 행복하다.

그 친구들을 떠올리며 나는 웃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웃음. 웃음은 무엇인가? 무엇을알았다는 즉답인가? 피의 홀연한 휘발 순간인가? 간지러움, 그 강제의 웃음은 또 왜 필요한 것인가.

세월. 토라져 있는 나를 간지럼 태워 웃겨놓던 어린 누이들의 가녀린 손가락들은 어디로 떠나갔는가. 눈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내 옆구리에 새겨진 감각의 문신을 나는 천천히 만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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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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