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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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회

석모도 보문사 가는 길에 민예총강화지부에서 전화가 왔다. ‘밴댕이축제를 하는데 시화전에 쓸 시를 한 편 보내달라는 전화였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외포리 선착장에서 석모도 가는 배를 기다리며 밴댕이 젓갈을 구경하고 있는데, 밴댕이도 양반 되기는 다 틀렸다고 농담하며 전화를 받았다. 머릿속에 밴댕이에 대해 쓴 짧은 시 한 편이 떠올랐다.

 

밴댕이

 

팥알만 한 속으로도

바다를 이해하고 사셨으니

 

, 인사 드려야지

 

이분이

우리 선생님이셔!

 

몇 년 전에 쓴 위의 시는 출판사에서 있었던 한 선배와 후배의 대화에 많이 영향을 받았다.

그래요, 난 밴댕이 소갈딱지예요.”

나이가 나보다 많이 든 여자 선배가 화가 나 토라졌다. 그러자 남자 후배가 바로 답했다.

역시 선배님은 선배님이십니다.”

뭐가요?”

저는 오늘 아침에도 어머니한테 소갈머리 없는 놈이라고 혼났는데, 선배님은 밴댕이 속만 한 속이라도 갖고 있으니 역시 선배님이십니다.”

후배 말에 웃음을 터뜨리던 선배 모습이 떠올라 실없이 혼자 웃었다.

차와 승객을 다 싣고 배가 머리를 돌렸다. 갈매기 떼가 배 꽁무니에 따라붙었다. 젊은 연인들이 준비한 새우깡을 뿌려주자 갈매기가 곤두박질치며 낚아챘다. 새우깡에 길든 갈매기와 길들이고 있는 연인들을 씁쓸한 마음으로 쳐다보다 시선이 멎었다. 연인들 반대편에서 배낭을 멘 할머니 한 분이 새우깡을 던져주고 주름이 쪼글쪼글한 손을 모아 갈매기들에게 합장을 했다. 기력이 쇠해 새우깡을 멀리 던지지 못하는 할머니가 서 있는 뱃전으로 갈매기들이 모여들어

공중 날갯짓을 했다. 할머니에겐 갈매기들도 부처로 보였나보다.

보문사 눈썹바위 마애불 보러 가는 사백여 계단은 가팔랐다. 동해 낙산사 홍련암,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삼대 관음도량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보문사는 평일인데도 신도들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거대한 바위산에 눈썹처럼 생긴 바위가 거짓말처럼 융기되어 있고 그 밑에 영험해 보이는 부처님이 계셨다. 공양미를 탁발하러 왔는가 산비둘기 몇 마리가 부처님 머리 위에 앉아 봄을 울고 있었다. 향 내음에 젖은 비둘기 울음소리를 듣다가 문득 머리를 스치는 깨달음에 눈을 감았다.

눈썹바위 밑은 눈동자바위일 것이다. 눈동자바위에 부처님을 조상해놓은 뜻을 알 듯싶어졌다. 눈부처가 아닐까. 상대방 눈동자에 상이 맺힌 내 모습이란 뜻의 눈부처. 내가 바라다보는 눈동자바위에 내가 아닌 부처님 상을 맺히게 해놓았다니! 사람이 바라다보아도 부처님 형상으로 상이 맺히는 눈동자바위는, 부처님을 바라다보고 있는 일체중생이, 허공을 지나는 새 울음소리가, 옅은 초록잎 토하는 잡목들이 다 부처로 비친다는, 부처라는 깊은 뜻이 아닐까.

밴댕이 소갈딱지만 한 속으로, 소갈딱지 없는 속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부처라는 말 없는 커다란 말씀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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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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