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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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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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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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내 비밀을 알고 있다. 한밤 화장실을 가며 갑자기 밭둑에 쓰러지면 어쩌지 싶어 핸드폰을 챙겨드는 나약한 나의 심리를. 염치없고 창피해 불 끄고 이불 푹 뒤집어쓰고 수음하는 사십 대 사내의 성생활을. 눈물에 게을러 배 나온 시인의 새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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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떨어진 화장실. 하루만 외박을 하고 와도 못 박아 걸어둔 화장지에 새가 앉아 잠을 청한다. 집 뒤 느티나무에서 울고 있는 소쩍새한테 잡혀 먹을까 걱정되어 참다 새벽에 어쩔 수 없이 새를 날린다.
집에서 내가 부재했었음을 직방으로 증명해주는 새야, 빨리 집을 구하렴. 나 변비에 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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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앞두고 고욤나무 아래서 사랑방 굴뚝 쪽으로 개미들이 새까맣게 줄지어 이사를 갔다. 그걸 보고 ‘개미들이 새까맣게 줄지어 이사를 간다./거기서는 잘 살아라!’라고 짧은 시를 쓰려다가 원고 마감시간에 쫓겨 산문 한 줄로 쓰고 후회막급하여 굵은 소금으로 이빨을 닦으며 소금 한 움큼을 몸에 뿌렸었다. 시詩에 대한 편애가 내게 아직 남아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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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에 오랫동안 불을 넣지 않으니까 구들장이 내려앉는다. 기다림에 지친 것이냐.
오랫동안 비운 적이 있다.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사료 한 포를 쏟아놓고 개 멱살이를 풀어주었다.
발바리라 대문 아래로 출입이 가능하니까 굶어 죽지는 않겠지. 달포가 지나서야 돼지고기 두 근, 우유 일 리터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개가 나를 기다리다가 죽어 있으면, 내 그 곁에서 죽어버리리라 맘 다짐하며. 개는 집을 떠나고 없었다. 안마당에 수북이 쌓인 느티나무 낙엽 위에 뼈다귀들이 보였다. 다행히, 아니 불행하게도 커다란 소뼈들이었다. 개를 수소문했다. 다들 모른다고 했다. 발바리만 보면 다 그 개 같았다. 나의 잔인함에 대한 집의 노여움은 오래갔다. 집은 가위눌리는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나는 고맙게 많이 아팠다. 나는 언젠가 나의 반성문을 써 그 개의 영혼 앞에 올릴 것을 집에 맹세했다. 그해 나는 집 주위에 꽃을 많이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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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이란 시를 한 편 써봐야지. 우선 거미를 잘 관찰하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에서 끙끙 앓는 내게 집은 거미집 기둥 하나가 되어주며 나를 깨우쳤다. 내가 교만한 마음으로, 거미를 관찰한다고 발버둥 친 생각 전체가 담긴 집이 거미집 기둥 하나로 쓰이다니. 기겁하여 쓴 시가 거미이다. 아니 집이 내 손을 잡고 써준 시가 거미다.
거미
불빛 나가는 창가에 줄을 쳐놓았다
새소리와 꽃향기를 가로막고
내 집을 기둥 하나로 삼아
농부가 논두렁에 쪼그려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