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한 단상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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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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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글자를 읽어보면 발음 속에 공간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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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없이 떠난다는 말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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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속에 살던 내가 집을 떠나면 집이 내 속에 들어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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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기우니까 처마 밑 제비집도 기운다는 손상렬 시인의 시구절을 읊조리며 처마 밑에 붙어 있는 제비집을 본다. 저 제비집 속엔 딱새 곯은 알이 있을 것이다. 작년에 비가 새는 처마 밑 외등 전구를 깔고 앉은 묵은 제비집에 딱새가 알을 품었다. 몇 번 차단기가 떨어져 제비집을 살펴보니 젖어 있었다. 나처럼 남이 살던 빈집을 터로 잡은 딱새의 노란 부리 새끼들 울음소리 끝내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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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양철 대문에 사자 머리 문고리 장식이 붙어 있다. 어느 날 손잡이인 코뚜레를 망치와 펜치로 끊어 던졌다. 문득 코뚜레한 사자를 잡귀들이 무서워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음 날 풀숲을 헤쳤다. 다시 코뚜레 손잡이를 찾아 사자 콧구멍을 뚫었다. 장식의 의미가, 이 집에는 사자도 코뚜레 뚫을 만큼 용감한 사람이 산다는 뜻일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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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방이 샌 빗물에 삭으며 내려앉아 미닫이 유리문을 여닫기 힘들었다. 사람들이 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고 하면, ‘허리살 빼는 다이어트 문이라고,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고, 특허를 낸다고 우스갯소리했다. 그런 날엔 집 안을 둘러보았다. 집아, 끼기익, 네가

아파 내는 소리 내 모르겠는감, 속말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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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유리창처럼 성격이 급하기도 하고 양철 지붕처럼 수다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집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주춧돌 같은 슬픔이다. 모든 집에서는 슬픈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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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집을 향해 기별이 온다. 집이 내 움직임에 합산점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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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대통령이 누가 될 것 같나? 마실 온 이웃집 할아버지가 또 정치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 반응이 시큰둥하자 화제를 바꾼다.

여보게, 나는 아직도 꿈을 꾸면 이 집 꿈을 꿔. 내가 이 집에서 환갑해 먹고 이사를 간 거잖아. 여기도 내가 늘렸고. 이 축대 쌓을 땐 힘깨나 썼지. 저도 이 집이 제일 오래 살아본 집이에요. 혼자 십 년을 넘게 집을 지키며 사니까요, 어두운 밤에 민감해져서인지 귀가 밝아져요. 뭐라고? 반문하며 귀가 어두운 이웃집 할아버지가 사랑채 기둥을 만져본다. “미래, 그리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오늘 그대의 존재 이유가 되길. 말하자면…… 나는 그대들에게 이웃 사랑을 권하지 않는다. 다만 그대들에게 가장 멀리 있는 자들을 사랑하라고 권한다라는 자라투스트라의 말은 실천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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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또 고장 났을까. 한겨울 보일러실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난다. 사십이 되자 들리기 시작하던 귀뚜라미 울음소리. 기계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놀라, 나는 또 한 살을 먹는구나 생각하며 반사적으로 내 나이를 만져본다. 내일 아침 나는 비누에서 살구 냄새를 맡으며 머리를 감지 못하리라. 집의 혈관이 식어가는지 방바닥이 차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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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집세는 보증금 없이 십만 원. 담뱃값은 십오만 원. 집아, 미안하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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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서 쥐가 뛰어간다. 소리를 들어보면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더 긴 것 같다. 쥐야, 너의 판단은 옳지 않았다. 혼자 사는 사람 집에 뭐 먹을 게 있다고 겨울에 찾아들었니. 너의 천국일 지상에서 한밤 김치찌개 냄새 풍기는 나만 미안하게. 아니 나만 잔인하게. ‘쥐싹을 놓았다. 비타민을 파괴하여 눈먼 쥐가 밝은 곳에 나와 죽게 만들었다는 쥐약. 쥐야, 그 비타민 파괴제 내가 마실 물에 풀어 내 눈을 멀게 해다오. 나는 이 집에 너와 같이 살 수 없는 겁쟁이다. 들쥐병을 무서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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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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