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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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회

꽃들에게 부끄러운 밤이었다.

꽃들에게 용서 받는 밤이었다.

봄은 색들의 잔치다. 붉은 진달래, 노란 민들레, 연분홍 살구, 흰 벚꽃……. 흙 속에, 풀 속에, 나무 속에 이리 아름다운 색들이 숨어 있었다니. 색깔의 방천이 터져, 온 누리 만화방창. 색깔 손님 맞기에 바쁜 눈동자의 날들. 알베르 카뮈의 색은 희망이다는 글귀를 빌려, ‘봄은 희망이다라고 말해보고 싶어 입술이 가벼워진 봄.

 

어제 강화읍 북문에서 시 낭송의 밤 행사가 있었다. 작년부터 강화문학회에 들어간 나도 낭송요원으로 참가했다. 길이 경사져 밑으로 몰렸는지 들목 쪽은 꽃향기 밀도가 높아 진입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진즉 이런 상황에 맞부딪칠 것을 예측했었더라면 벌 선생을 모시거나 나비를 벗 삼아놓아 조언을 들었어도 좋았으련만.

북문까지 이어지는 벚꽃 터널을 오르며, ‘사쿠라 꽃 피면 계집 생각난다는 소설가 김훈의 문장을 떠올렸다. 또 호흡을 가쁘게 만들어놓아 꽃향기를 콧구멍으로 빨리 내왕시켜주는 쇠약해진 몸에 감사했다.

풍물패들의 길놀이가 끝나고 시 낭송이 시작되었다. 내빈들이 축사를 하며 민망스럽게 다음 포털에도 산문을 연재한다고 내 칭찬을 했다. 쑥스러워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분들이 내 이름을 틀리게 소개해줘, 꽃들에게 덜 부끄러웠다. 꽃 속에서 시를 낭송하는 일은 시 속에서 시를 낭송하는 일과 같아, 꽃 구경꾼들에게 빈축을 살 만도 했다. 그러나 시의 자궁인 꽃이, 옹알이 수준의 시를 쓰는 우리들을 용서해주는 것도 같았고, 꽃 본 구경꾼들도 마음이 고와져 귓바퀴를 꽃송이처럼 열어주기도 하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함씨.

나는 동네 형님들이 나를 부르는 칭호 중에함씨가 제일 좋다.

형들이 더러함 시인이라고 부를 때도 있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 나는 얼른 그냥 함씨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나를 부르는 칭호 중에 제일 난감한 것이선생이다. 강사 생활 몇 년 한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동네 할머니들은 나를 꼭 선생이라 부른다. 동네 할머니들에게는 무슨 말을 하기도 그렇고 해서 머리를 긁적거리며 어색한 웃음으로 격에 맞지 않는 선생이란 칭호를 견뎠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함씨는 남을 높이어 그의조카를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내가 성에 좀 집착을 하는 것은 아마 함씨가 희귀 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 국사책을 읽으며 우리 조상들에게 실망했다. 반만년 역사에 한 번도 등장을 못하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싶었다.

급기야 어린 마음에 화랑 사다함함다사를 잘못 기록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기도 했다. 그러던 내게 반가움으로 다가선 것은 체육책이었다. 54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자로 함기용 선수가 실려 있었다. 그때의 반가움이 후에 내가 마라톤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된 동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체육책에서 희망을 얻은 나는 세계사책에서 함무라비 대왕을 만나 외국에는 유명한 함씨가 있구나 하고 맘이 고무되기도 했었다.

 

나는 함씨가 좋은 일로 매스컴에 나오면 마치 내가 좋은 일을 해낸 것처럼 기분이 좋다. 반대로 범죄를 저질러 나올 때는 내가 죄를 지은 양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아마 종씨가 많은 사람들은 이런 기분을 느끼기 힘들 것이다.

직장에서 외국인들과 같이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 외국인들은 나를 미스터 햄Mr. Ham이라고 불러놓고 난감해했다. 그들은 웃음을 참고 있는 게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이 ham, 돼지 허벅다리 부위의 고기라니. 그들 중에 웃음을 참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 이름은 리 쿡(?)이었다.

어디 가서 내 이름을 불러주면 한씨로 성을 잘못 받아 적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나는 한이 아니라 함임을 강조하며 발음에 신경을 썼다. 한번은 함박꽃 할 때 함, 민들레꽃 할 때 민, 복숭아꽃 할 때 복이라고 내 이름을 소개하기도 했다. 성을 잘못 불려본 적이 많은 나는, 채충석 시인의 시구‘5학년 1학기도 한 달을 더 끌다/끝났다, , 가야지 내일은/경제학사 학위를 받으러/성이 최씨로 바뀐 무거운 앨범도 찾고를 읽으며 지독한 리얼리티를 느끼기도 했다.

 

성이 희귀 성이라 살며 유리한 점도 있다. 사람들이 성이 특이한 내 이름을 쉽게 기억해준다.

또 나는 내 성을 팔기도 했다. 나는 술을 먹으면 말을 잘하는 축에 속한다. 친구들 결혼식 때 함을 팔러 가면 나는 말잡이를 했다.

부여와 논산 중간쯤으로 친구 함을 팔러 갔을 때다. 그날 우리는 좀 세게 놀기로 하고 공수부대 출신 친구에게 함을 짊어지라고 했다.

내가 말잡이로 나섰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산골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기마전 놀이 할 때처럼 기마를 만들어 함진아비를 태웠다. 그리고 공수부대 노래를 부르며 신부네 집을 향했다. 신부 측 대표가 술상을 들고 나와 협상을 청했다. 나는 주민등록증을 까 보이며 말했다.

오죽하면 성마저 함씨겠유. 우선 동네 스피커로 우리가 걸어 들어가기 편하게 백 음악 먼저 틀어주시유. 음악은 요새 인기 상한가 연속극인 <모래시계> 주제가가 좋겠시유.”

나는 자신만만하게 회심의 일타를 날렸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찬물 끼얹는 소리가 들렸다.

“<모래시계>가 뭔데유?”

“?”

아차 싶었다. 서울방송을 지방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을 동시에 깨달은 우리는 웃다가 싱겁게 끌려 들어가고 말았다. 함씨 성을 가진 말잡이로서 친구들 앞에서 체면을 구긴 일전이었다.

 

시 낭송을 마치고 북문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다. 나는 함을 팔러 다니던 한때의 내 청춘을 떠올리며 나직이 읊조려보았다.

꽃들의 함을 지고 달빛 속을 가는 향기들아.

침묵으로 침묵으로 함 사라고 외치는 꽃향기들아.

너희들은 함씨냐? 향씨냐?

농심弄心도 얇게 나풀거리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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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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